[DBR/Special Report]명란, 반찬 아닌 식재료로 리브랜딩… 2030 입맛 잡다

부산=배미정 기자

입력 2019-10-02 03:00 수정 2019-10-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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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위 명란 제조업체 덕화푸드, 수출위기 넘긴 비결은

2대째 덕화푸드를 이끌고 있는 장종수 대표가 덕화명란이 생산되는 제조공장을 소개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셀프 쿠킹 키친에서 만든 명란을 활용한 요리들. 덕화푸드 제공
부산 동구 초량동. 경사진 산복도로의 어느 깊숙한 골목에 덕화명란의 명란 브랜드 쇼룸 ‘데어더하우스(therethehouse)’가 2018년 문을 열었다.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이는, 해석하자면 ‘거기 그 집’인 이곳에는 덕화푸드가 1993년 창업 이래 26년간 오로지 명란을 고집하면서 추구한 음식에 대한 태도와 비전이 오롯이 담겨 있다. 방문객은 이곳에서 명란을 활용한 다채로운 레시피의 셀프쿠킹, 덕화푸드가 추구하는 국내산 친환경 식재료와 슬로푸드의 음식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창업주인 장석준 선대 회장에 이어 2대째 덕화푸드를 이끌고 있는 장종수 대표는 덕화푸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브랜드 쇼룸을 만들기로 결심하면서 초량을 낙점했다. 남포동이나 서면 같은 번화가가 아닌 초량을 선택한 이유는 이 지역이 부산과 더불어 부산의 대표 음식인 명란의 역사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출발한 명란의 고유한 지역색과 역사성은 덕화푸드가 명란 단일 제품에만 올인하면서 지속적으로 비즈니스를 혁신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국내 1위 명란 제조업체인 덕화푸드가 걸어온 길과 혁신 비결을 DBR(동아비즈니스리뷰)가 281호(2019년 9월 15일자)에서 분석했다.


○ 명란 단일 제품에 올인


장 대표는 “명란 시장은 일본이 압도적으로 크지만 명란의 원조는 사실 한국이다. 일제 강점기, 부산 초량 등지에 머물던 일본인이 일본에 돌아가 부산에서 먹던 명란 제법을 재현, 확산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덕화푸드는 한국식 전통 제법을 계승해 발전시키는 것을 중요한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명란 단일 식품을 취급하는 덕화푸드의 경쟁력은 독보적인 명란 제조 기술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덕화푸드는 염도 7∼10%의 재래식 명란과 차별화된 4% 저염도의 명란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또 명란 제조 과정에 국내 최초로 컨베이어벨트를 도입해 철저한 위생 조건을 갖추면서 생산성도 높이는 공정 시스템을 구축했다.

덕화푸드의 우수한 기술력은 일본이 먼저 인정했다. 2009년 세븐일레븐의 모회사이자 일본의 대형 유통 그룹인 세븐앤드아이홀딩스가 덕화푸드와 독점 자체브랜드(PB) 계약을 체결했다.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장 회장은 2011년 대한민국 최초로 수산 제조 분야 명장으로 선정됐다.

일본은 라이벌이자 롤 모델로서, 덕화푸드가 20년 이상 흔들리지 않고 명란에 집중하게 만드는 자극제 역할을 했다. 당장 생존이 시급한 중소기업임에도 불구하고 2009년 사내 부설 연구소를 별도 설치해 연구개발(R&D)에 대한 선제적 투자를 강화한 것도 일본 기업처럼 탄탄한 기술력을 갖춰야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우수한 품질을 경쟁력으로 삼은 덕화푸드는 자사 명란의 80% 이상을 일본에 수출해 왔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닥친 아베노믹스가 덕화푸드의 수출 중심 비즈니스 모델에 큰 타격을 입혔다. 2013년부터 엔화 약세가 본격화하면서 10년 이상 거래하던 일본 업체들이 물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7년여간 거래하던 세븐일레븐마저 2015년 납품을 중단시켰다. 덕화푸드는 단기간에 내수 시장을 확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우선 국내 소비자들에게 명란이란 식품을 널리 알리는 작업이 시급했다. 상품군부터 재정비에 돌입했다. 당시 덕화푸드의 상품은 장 명장이 개발한 저염 명란 ‘장석준 명란’밖에 없었다. 창업 이래 덕화푸드의 상품 브랜딩은 ‘명장’이 만든 최고급 제품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명장 마케팅은 20, 30대 젊은 주부들에게 더 이상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2017년 덕화푸드는 덕화명란을 3가지 상품군으로 분리했다. 기존 시그니처 제품인 장 명장이 만든 ‘그때 그대로 명란’(순한 맛)에다, 새롭게 개발한 ‘덕화 백명란’(담백한 맛), ‘숙성고에서 갓 꺼내 먹는 명란’(매운맛)을 추가해 새롭게 구성했다. 젊은 소비자들이 각자 취향에 따라 명란 맛을 고를 수 있도록 리모델링한 것이다. 특히 덕화푸드는 명란이 단일 반찬이 아니라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식재료라는 점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장 대표는 “명란이 다양한 요리에 식재료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누구나 친숙하게 명란을 접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 식품에서 라이프스타일로 확장


덕화푸드의 브랜드 쇼룸 ‘데어더하우스’는 독특하게 운영된다. 브랜드 쇼룸이지만 제품을 판매하지 않으며 공간 규모도 10명 남짓밖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아담하다. 이곳의 핵심 프로그램은 예약제로 운영되는 ‘셀프 쿠킹’인데, 셀프 쿠킹이 진행되는 2시간은 참가자들만 공간을 오롯이 이용할 수 있도록 쇼룸 공간 전체를 내준다. 이런 체험은 기업의 수익성 관점에서 보면 효율이 떨어지는 운영 방식이다. 하지만 명란 요리가 쉽고 재미있다는 경험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식재료인 명란에 대한 관심도 커질 것이라는 게 회사 측의 전략이었다. 전략은 적중했다. 셀프 쿠킹을 체험한 방문객들은 덕화명란의 팬임을 자처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덕화명란을 자발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덕화푸드는 지역성을 활용해 제품을 혁신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이어 나가고 있다. 예컨대 지역 명인이 제조한 재료를 활용해 명란을 제조하거나, 지역의 명물을 활용한 명란 레시피를 개발하는 식이다. 부산의 지역성과 역사성을 활용한 제품의 혁신을 통해 명란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업그레이드하고, 그럼으로써 지역과 상생하는 미식의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장 대표와 덕화푸드가 꿈꾸는 미래다.

부산=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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