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양자컴퓨터’가 슈퍼컴을 능가했다고?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19-09-30 03:00 수정 2019-09-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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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주장 “1만 년 걸릴 슈퍼컴 계산… 양자컴이 3분 만에 끝냈다”
과학계 반신반의 “큐비트 수 50개 넘어가면 가능성 있지만 더 지켜봐야”


구글이 개발한 최신 양자컴퓨터 칩 ‘시커모어’.
구글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로 1만 년 계산해야 풀 수 있는 수학 문제를 단 3분 20초(200초) 만에 해결하는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전 세계 과학계가 동요하고 있다.

양자컴퓨팅 전문가들과 관련 기업들은 사실의 진위 파악에 나섰지만 구글이 아직까지 사실 확인을 해주지 않아 온갖 추측만 떠돌고 있다. 대중적인 관심도 커서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로 출마한 앤드루 양 의원은 21일 “기존의 암호가 다 무용지물이 되게 됐다”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양자컴퓨터가 과학기술 분야를 넘어 큰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논란은 지난 20일(현지 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구글이 양자컴퓨터로 기존 디지털 컴퓨터를 성능 면에서 압도한 ‘양자우월성’에 도달했다고 밝혔다는 기사를 게재하면서 시작됐다. FT는 지금은 사라진 미국항공우주국(NASA) 홈페이지 문서를 인용해 구글이 ‘시커모어’(플라타너스라는 뜻)라는 이름의 새 양자컴퓨터 칩을 만들었으며, 특정 수학 문제에서 기존 슈퍼컴을 압도하는 성능을 보였다고 전했다. 구글은 지난해에 NASA와 함께 양자컴퓨터가 정말 기존 컴퓨터보다 뛰어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공동연구를 하기로 합의했다.

양자컴퓨터는 정보단위(비트) 하나에 0 또는 1의 한정된 정보만 담을 수 있는 현재의 디지털 컴퓨터와 달리 정보단위(양자비트 또는 큐비트) 하나에 0과 1을 동시에 담고 있는 차세대 컴퓨터다. 여러 개의 큐비트를 이용해 계산하면 수많은 연산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해 지금과 차원이 다른 빠른 계산 성능을 보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다만 아직은 양자를 자유자재로 다뤄서 큐비트를 구현하는 일 자체가 어려워 현재의 일반 PC 성능을 넘는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갑자기 구글이 일반 PC도 아닌 그보다 훨씬 계산 속도가 빠른 슈퍼컴퓨터보다 빠른 양자컴퓨터를 만들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구글과 함께 양자컴퓨터 개발을 선도해 오던 라이벌인 IBM이 먼저 발끈했다. 다리오 질 IBM 연구소장은 지난달 23일 FT와의 인터뷰에서 “구글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수 없을 것”이라며 사실이 아닐 것으로 봤다. 구글과 IBM은 지난해와 올해 각각 72큐비트와 53큐비트로 구성된 양자컴퓨터 칩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결과를 낸 구글의 시커모어는 53개 큐비트로 구성된 새 양자컴퓨터 칩으로 알려졌다.

현존 세계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의 슈퍼컴퓨터 ‘서미트’.
국내 전문가 역시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조영욱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양자정보연구단 선임연구원은 “양자컴퓨터의 큐비트 수가 50개가 넘어가면 양자우월성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전부터 있었다”며 “다만 이런 큐비트를 이용해 간단한 시스템을 구성하고 계산을 수행해 가능성을 확인하는 수준의 연구 결과가 최근 막 나오는 중이었다. 구글의 결과도 이런 결과 중 하나일지, 정말 주장처럼 중대한 도약을 이뤘는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구글의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현재의 컴퓨터처럼 범용 컴퓨터는 아닐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재완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는 “특정 문제를 풀 때에 한정된 성능 비교”라며 “양자컴퓨터로 이 문제를 풀어 속도가 디지털 컴퓨터의 제곱 배가 나오게 하는 게 최근 10여 년간 양자컴퓨터 분야의 목표 중 하나였는데 이번 연구가 사실이라면 이것을 달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컴퓨터과학자인 스콧 에런슨 미국 텍사스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도 23일 자신의 블로그에서 “구글이 삭제한 문건 사본을 본 결과 특정한 과제를 수행한 결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과학계가 반신반의하는 것은 아직 많은 양자컴퓨터 연구가 기초연구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가 만들어지려면 전자나 이온 등의 입자를 하나씩 분리해 조절할 수 있는 큐비트를 수십 개로 늘려야 성능이 향상된다. 원자를 전기적 성질을 지닌 이온으로 만든 뒤 자기장으로 가두는 ‘이온트랩(덫)’ 방식과 극저온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 물질로 회로를 만들어 그 안의 전자쌍을 쓰는 초전도 소자 방식이 대표적이다. 다이아몬드 안의 결함을 이용해 양자 정보를 제어하는 다이아몬드 방식, 반도체 양자점(퀀텀닷)을 이용해 전자를 가두는 방식도 있다. 수십 개 큐비트를 성공한 기업과 달리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개발하고 있는 양자컴퓨터 큐비트는 10여 개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양자컴퓨터 성능의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인 오류 수정 기능도 아직 초보 단계다. 어쩌다 실험실에서 좋은 성능을 낼 수는 있지만, 모든 환경에서 안정적이고 신뢰성 높은 성능을 보이려면 끊임없이 계산 오류를 점검하고 수정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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