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블록체인 사업, 헛돈 쓰는 씨앗 되나

박세준 기자

입력 2019-09-29 07:10:00 수정 2019-09-29 0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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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모르는데 사업은 일단 벌여
●보상체계 없는 사업, 굳이 블록체인 없어도 할 수 있는 일
●암호화폐 없는 ‘정의로운’ 블록체인 사실상 무용


[GettyImages]
“암호화폐거래소를 폐쇄할 수 있다.”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1월 남긴 말이다. 그의 생각은 최근에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장관은 올해 1월 기자간담회에서 “블록체인은 필요한 기술이지만 그걸 개발하기 위해 가상화폐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대한 관점도 박 전 장관의 발언과 비슷하다. 금융위원회가 6월 발표한 ‘핀테크 금융혁신을 위한 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 결과’에 따르면 규제혁신 과제 188건 가운데 38건이 불수용(不受容) 및 재검토로 분류됐다. 불수용은 전부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였다. 하지만 암호화폐가 없는 블록체인 관련 내용은 전부 통과됐다.

이미 정부와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다양한 분야에 블록체인을 도입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기술 이해도가 낮아 굳이 블록체인이 필요 없는 분야에 예산과 시간을 들여 헛수고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블록체인 외사랑

정부는 블록체인 산업에 한없이 관대한 모습을 보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가 8월 밝힌 2020년 예산안에 따르면 블록체인 융합기술개발 예산이 올해 117억 원에서 2020년 161억 원으로 약 38% 증가했다. 이와 함께 과기부는 2020년부터 2026년까지 총 7년간 자체 블록체인 기술개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예산 규모만 총 5600억 원에 달한다.

앞서 과기부는 △식품 안전 유통용 생육환경인증 및 공급 사슬관리 서비스(유통체인) △전자문서 신뢰 이용 환경 조성 서비스(문서체인) △대국민 투명 국가 투표 서비스(투표체인) △병원 의료정보 안전 공유 서비스(의료체인) △투명한 국고 보조금 및 기부금 관리 서비스(기금체인) △데이터의 안전 및 투명 관리 서비스(데이터 거래체인) △블록체인 스마트 팩토리 서비스(팩토리체인) 등 7개의 실증 서비스를 연구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올해 초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정책적 타당성은 비교적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지만, 경제적·기술적 타당성 평가 성적은 시행 불가 수준이었다. 올해 3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공개한 과기부의 ‘블록체인 중장기 기술개발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각 부문에서 0.5점이 넘어야 평가를 통과할 수 있으나 정책적 타당성 평가가 0.433인 반면, 과학기술적 타당성 평가는 0.253점. 경제적 타당성 평가는 0.190에 그쳤다. 보고서는 ‘산학연 전문가의 균형 있는 참여를 통해 기술개발 현황을 정확히 분석하고 정부 주도의 중장기 연구개발 추진이 필요한 분야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블록체인 환경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이용자가 일부 부담하고, 그 대가로 받는 것이 암호화폐다. 정부의 생각은 대가 없이 블록체인 환경을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라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과학기술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이상민 의원도 블록체인 정보 포털 ‘블록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키우고 암호화폐는 퇴장하라는 식인 행정부의 이분법적 정책 때문에 국회와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은 지 1년이 됐다. 블록체인 생태계를 키워나가면 그 과정에서 암호화폐 보상체계 같은 시스템은 당연히 파생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정부의 사업은 화폐와 블록체인을 갈라놓아 구상 수준에만 머물러 있지만,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화폐를 이미 내놓았다. 대표적 사례가 서울 노원구와 경기 김포시의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다. 노원구 지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의 이름은 ‘노원(NW)’. 블록체인을 사용한 암호화폐라 노원구 내에서 자원봉사나 기부 등의 활동으로 모을 수 있다. 김포시 지역화폐는 기존 지역화폐의 맹점으로 꼽히던 ‘현금깡’(지역화폐 액면을 할인해 현금으로 바꾸는 일)을 막고자 KT의 지역화폐 플랫폼을 사용한 ‘김포페이’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도 결제가 가능하다.

두 화폐의 성격이 약간 다르지만 공통된 특성이 두 가지 있다. 둘 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했고,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했지만 암호화폐는 아니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노원구와 김포시의 지역화폐 사업 담당자에게 “지역화폐를 암호화폐로 볼 수 없느냐”고 묻자 똑같이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지역화폐이지 암호화폐와는 관련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유도 같았다. ‘퍼블릭 블록체인’(퍼블릭 체인)이 아닌 ‘프라이빗 체인’을 사용하기 때문에 암호화폐가 아니라는 해명이었다.


블록체인 사용한 화폐지만 암호화폐 아니다?

하지만 프라이빗 체인을 기반으로 했다고 암호화폐가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 현존 암호화폐 가운데 프라이빗 체인을 기반으로 개발된 암호화폐도 많기 때문. 사실 퍼블릭 체인과 프라이빗 체인은 각각 블록체인을 구성하는 방식일 뿐이다. 퍼블릭 체인은 각 암호화폐에 분산 장부를 심는다. 데이터 이동이 각 장부에 모두 기록되기에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다. 비트코인(BTC)이 대표적인 퍼블릭 체인 기반의 암호화폐다.

프라이빗 체인은 퍼블릭 체인의 속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온 일종의 대안으로, 서비스 관련자끼리만 장부를 나눠 갖는다. 각 화폐에 있던 장부를 중개인을 설정해 그들에게만 주는 방식이다. 장부 수가 현저히 적어지므로 데이터 처리 속도는 더 빨라진다. 암호화폐 시장 규모 3위인 리플(XRP)이 대표적인 프라이빗 체인 기반의 암호화폐다.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프로젝트인 리브라도 프라이빗 체인을 기반으로 개발된다고 알려져 있다.

퍼블릭 체인은 사실상 조작이 불가능하다. 조작하려면 해당 암호화폐를 소지한 사람들이 전부 조작에 가담해야 한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정부나 관련 기관이 없어도 신뢰성이 보장된다. 하지만 프라이빗 체인은 장부를 가진 중개인들만 동의한다면 데이터 조작이 가능하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자 보통 프라이빗 체인은 충분히 많은 중개인에게 장부를 나눠주거나, 장부를 정부 등 비교적 신뢰성 높은 곳에 부여하는 식으로 보안 문제를 해결한다.

노원구와 김포시가 지역화폐에 블록체인을 도입한 이유도 보안 문제 때문이다. 노원구 관계자는 “지역화폐도 이용자의 금융 및 개인정보가 오갈 수 있어 보안 유지와 추후 블록체인 기술 발전에 따른 기술 적용 등을 이유로 지금과 방식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김포시 담당자도 “보안 문제를 해결하고 현금깡 등을 막고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김포페이 운영을 담당하는 KT는 “블록체인 도입을 통해 보안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스마트컨트랙트 등 다양한 기술을 지역화폐에 도입함으로써 화폐의 신뢰성과 적용 범위를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쓰는 격
경기 김포시에서 지역화폐로 도입한 김포페이. [사진 제공 · 김포시]

그렇다면 노원구와 김포시의 지역화폐는 얼마나 많은 노드(네트워크에서 연결 포인트 혹은 데이터 전송의 종점이나 재분배점)를 보유하고 있을까. 일단 노원구에 확인한 결과 노드는 총 4개. 김포페이를 운영하는 KT는 “관련 내용을 밝힐 수 없지만 담당 서버만큼의 노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소규모 사업이라면 굳이 프라이빗 체인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해 열린 ‘제24회 정보통신망 정보보호 콘퍼런스’ 주제 강연에서 양대헌 인하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최근 도입된 프라이빗 체인 프로젝트는 대부분 분산 데이터베이스 공유로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이라고 주장했다.

양 교수는 “(대부분의) 프라이빗 체인은 비잔틴 장애 허용(BFT)이라는 합의 방식을 사용한다. 오류 노드가 전체의 3분의 1 이내면 신뢰성을 얻을 수 있다. (이 같은 합의 방식이) 전통적인 분산 데이터베이스 공유와 비교해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 세상에 오류가 3분의 1이나 발생한다거나 악의를 가진 블록체인 참여자가 전체의 3분의 1 정도가 되는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최근 대다수 프로젝트는 이처럼 굳이 안 해도 될 것을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터베이스 공유 등을 이용하면 더 빠르고 저렴하게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블록체인을 사용해 어렵게 간다는 설명이다.

KT 측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BFT 방식이 아닌 CFT(Crash Fault Tolerance)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맞섰다. 두 방식의 차이를 간추려 설명하자면 BFT는 장부를 가진 사람 중 3분의 1이 악의를 품고 조작을 꾀하는 것까지 막을 수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CFT는 이 기능을 없애고 속도를 높였다.

데이터베이스 공유가 아니라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현재 IT 보안 수준에서는 각종 방화벽, 보안 프로그램, 정책 등으로 내부 시스템 침입이 어렵다. 하지만 개발자나 네트워크 운영자 등 내부 시스템에 접근이 용이한 내부자는 방화벽이나 보안 프로그램이 동작하는 않는 환경에서 얼마든지 데이터를 조작할 수 있다. 블록체인 대신 데이터베이스 공유를 이용하면 이 같은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예 프라이빗 체인의 효용성을 의심하는 의견도 적잖았다. 사이페딘 아모스 레바논 아메리카대 경제학 교수는 책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에서 비트코인 등 퍼블릭 체인 기반이 아닌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무용하다는 주장을 폈다. 이 책에서 아모스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은 온라인 거래를 효율적이고 저렴하고 빠르게 하는 방식이 아니다. 사실은 중앙화 방식(기존 화폐나 전자결제시스템)에 비하여 매우 더디고 효율이 낮다. 유일하게 우월한 부분은 제3자의 중개를 신뢰할 필요를 없앤다는 데 있다. 제3자가 중개할 필요를 제거해 최종 사용자가 얻는 가치가 엄청나기 때문에 비용 상승과 효율 감소를 감내할 분야가 아니라면 이 기술을 적용할 의미도 없다’고 진단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07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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