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현금복지’ 경쟁에… 취약계층 예산은 되레 줄었다

조건희 기자 , 김소영 기자 , 한성희 기자

입력 2019-09-26 03:00:00 수정 2019-09-26 10:3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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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안따지는 지자체 현금복지, 올해 예산 1637억… 5년만에 14배
경기, 청년기본소득 1227억 투입… 공공병원 지원액은 130여억 삭감
지방세 93억 봉화, 현금복지에 26억
“총선 앞두고 퍼주기 극심 우려”



부산시는 지방선거를 한 해 앞둔 2017년 12억 원을 들여 ‘택시운수종사자 희망키움’ 사업을 신설했다. 열악한 업계 사정을 감안해 택시운전사 1명당 월 5만 원을 준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같은 해 한부모 가족 자녀와 장애인 교육에 배정된 부산시 예산은 오히려 전년보다 11억5071만 원이 줄었다. 이 때문에 일선 수화통역센터에선 청각장애인에게 나눠줄 영상전화 장비를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부산에 사는 청각장애인 A 씨(53)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 같아 이 사회에서 소외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 현금복지에 밀린 취약계층 지원


부산시처럼 지방자치단체가 대상자의 가정 형편을 따지지 않는 보편적 현금복지 사업을 앞다퉈 신설하면서 그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전국 17개 시도와 226개 시군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각 지자체가 신설한 보편적 현금복지 사업은 2014년 30건에서 2015년 29건, 2016년 18건 등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하지만 현 정부가 들어선 2017년에 다시 30건이 신설되더니 지난해 55건, 올해 60건(6월 30일 현재) 등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들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 규모는 2014년 114억7700만 원에서 올해 1637억3400만 원으로 증가했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기존 복지 예산을 오히려 줄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올해 1226억9600만 원을 들여 만 24세라면 취업 여부도 따지지 않고 연간 최대 100만 원을 주는 ‘청년기본소득’을 도입한 경기도가 대표적이다. 경기도가 경기도의료원 산하 공공병원에 지급하던 공익적 운영비 지원액은 지난해 353억1600만 원에서 올해 216억5200만 원으로 줄었다. 한 공공병원 관계자는 “적자를 감당할 수 없어 노숙인 대상 무료 진료를 줄일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정신장애인 지원 예산이 1억2725만 원 줄어든 한 장애인가족지원센터 관계자는 “지난해 30차례 진행했던 장애아동 가족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올해는 25차례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충북 제천시는 올해 ‘출산 축하금’을 도입하면서 소외계층에게 필요한 복지제도를 안내해 주던 ‘희망나눔콜센터’를 없앴다. 지난해 만 0세 아동에게 월 10만 원을 지급하는 ‘아기수당’을 신설한 충남도는 성폭력 및 가정폭력 상담소에 주던 운영비 지원금을 깎았다. 강원도는 올해 생후 48개월까지 월 30만 원을 주는 ‘육아 기본수당’을 도입하며 재해 사전대비 능력강화 예산을 42억5130만 원 줄였다. 올 4월 큰 산불을 겪기 전의 일이다.


○ “‘표몰이’ 현금복지 전면 재검토해야”


더 큰 문제는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지자체들도 현금복지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전국 지자체의 지방세 수입 대비 현금복지 지출 비율은 평균 1.3%다. 하지만 경북 봉화군은 지방세 수입 92억7300만 원 가운데 현금복지에 25억9300만 원을 쓰는 것으로 나타나 그 비율이 28%나 됐다. 그 뒤를 강원 인제군(25%)과 서울 도봉구(24.5%) 등이 이었다. 이처럼 지방세 수입 대비 현금복지 지출 비율이 10%가 넘는 시군구는 26곳이나 됐다. 광역자치단체별로는 강원도(5.7%)와 경북도(3.4%), 대구시(2.6%), 경기도(2.3%) 등의 현금복지 지출 비율이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

전문가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자체들의 보편적 현금복지 사업이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표몰이’에 도움이 되는 보편적 현금복지만 늘어나는 ‘복지사업의 정치 종속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승희 의원은 “정작 도움이 절실한 취약계층이 받아야 할 지원 규모가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전국에서 시행하는 현금복지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소영·한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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