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 도는 중고차 시장… ‘생계형 적합업종’은 외면, 틈 노리는 대기업

동아닷컴 박상재 기자

입력 2019-09-23 14:05 수정 2019-09-2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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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중고 자동차 시장에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영세한 여건 속에서 ‘제도적 공백’ 탓에 몇몇 완성차 및 수입차 업체들의 참전이 예고돼서다.

영세 소상공인인 수많은 중고차 매매업체는 시장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고 입을 모았다. 일각에선 제조업체가 유통 권력을 장악, 차값이 오르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는 최근 동반성장위원회(동반위)에 중고차 매매업을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냈다.

이들은 “정부가 중고차 매매업을 적합업종에 지정, 대기업 진출을 규제하면 국제 통상마찰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수입차가 자사의 브랜드 외에도 판매할 수 있도록 제한을 풀거나 영역을 확대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일부 국내 완성차 업체도 매매시장에 뛰어드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렌터카 사업부문을 지닌 한 유통업체는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등 주도권을 쥐기 위해 뛰어들었다.

대기업 진출을 제한했던 중고차 매매업이 ‘폭풍’에 휩싸이게 된 것은 지난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세 소상공인의 사업 영역을 보호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일몰됐다. 그동안 중소기업 지위를 인정 받아온 중고차 매매업체에 대한 보호장치가 사라진 셈이다.

대신 지난해 말 같은 내용을 담은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가 시행에 들어갔다. 이에 중고차 매매업계는 지난 2월 동반위에 적합업종 지정 추천을 요청했다.

동반위는 실태조사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이르면 연말께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에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추천 여부를 결정지을 계획이다.

대기업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산업 상황이 급변하는 가운데 손대지 않았던 ‘새 먹거리’이기 때문이다.

중고차 업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서는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소상공인은 직원 5명 미만의 유통 등 서비스 업자를 말한다.

업계에 따르면 중고차 판매업의 경우 소상공인 비중이 95%대에 달한다. 수수료 외에 각종 비용 등을 빼면 판매 직원들의 연수입은 1816만 원 정도다. 사실상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뜻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중고차 매매업 종사자 수는 3만7467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대기업이 나설 경우 중고차에 대한 소비자 불신을 지우고 시장을 키울 것이란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우려도 있다. ‘대기업 진출은 곧 투명성 강화’란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특히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유통 시장까지 장악하면 판매 가격을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경쟁력과 독점적 환경을 기반으로 인위적인 ‘가격 통제’에 나서면 중고차 매매업체들은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뿐 아니라 추후 신차와 중고차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악순환을 초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통계자료를 보면 국산 승용차의 지난해 국내 판매량은 129만7937대였다. 같은 해 이전등록 건수(중고차 거래)는 377만107건으로 나타났다. 약 3배에 달하는 규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 등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 ‘생산-판매-거래’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쥐락펴락 할 수 있게 된다”면서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펴면 중고차 매매업체의 연쇄 폐업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도권을 확보한 대기업이 판매 가격을 올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며 “신차와 중고차 가격은 관계가 밀접하게 엮여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중고차 매매업체도 과거 시장에 쌓인 불신을 지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뢰도를 높여 ‘믿고 살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동아닷컴 박상재 기자 sangja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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