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도 등정한 신장내과 교수가 악성 방광암이라니…

김상훈기자

입력 2019-09-20 15:53 수정 2019-09-2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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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배 서울아산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하루도 운동을 안 하면 몸이 쑤신다”고 할 정도로 운동을 많이 한다. 김 교수는 “방광암을 극복한 것도 어쩌면 평소에 운동을 많이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김재명기자 base@donga.com

김순배 서울아산병원 신장내과 교수(59)는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의학·과학저널에 게재된 논문 51편에 대표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학회 및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우수 논문상도 받았다. 이런 논문 중에 특이하게도 고산병 치료에 관한 게 있다. 신장을 다루는 전공과는 다소 무관해 보이는 병이다. 김 교수가 고산병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뭘까. 알고 보면 김 교수는 프로 산악인에 가깝다. 히말라야의 여러 봉우리를 다녀왔다. 그러니 고산병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김 교수는 산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유별나게 좋아하지도 않았다. 대학 시절에도 친구들과 가끔 산을 찾아 야영하는 수준이었다. 그랬던 김 교수가 전문 산악인으로 변신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 히말라야에 오르다

2009년 당시 김 교수는 ‘기러기 아빠’였다. 휴가를 맞아 미국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홀로 돌아오는 길은 무척 쓸쓸했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기내 영화를 봤다. 잭 니컬슨과 모건 프리먼 주연의 ‘버킷리스트’였다. 가족에 대한 사랑 혹은 화해라는 영화 주제와 상관없이 잠깐 등장한 히말라야에 반해 버렸다. 히말라야의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마지막 장면에서 결심했다. ‘나도 히말라야에 가야겠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했던가. 이듬해 1월 바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산에 갔다. 해발 4130m에 세워진 베이스캠프까지 올랐다. 상쾌했고 만족스러웠다. 자신감이 넘쳐났다. 1년 후 곧바로 난도를 높여 해발 5550m 높이의 에베레스트 전망대 칼라파타르에 도전했다. 이번엔 달랐다. 고산증과 체력 저하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결국 부축을 받고 산을 내려와야 했다.

얕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김 교수가 본격적으로 체력 훈련을 한 게 이때부터다.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이유에서다. 암벽 등반도 이때부터 시작했다. 철인3종 경기에도 도전해봤다.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한 의학적 방법도 모색했다. 김 교수는 신장병 환자에게 처방되는 조혈 호르몬에 주목했다. 이 호르몬은 산소 공급을 증가시켜 운동 능력을 향상시킨다. 고산 지대에 가기 2, 3주 전에 조혈 호르몬 주사를 맞으면 고산병 증세가 덜하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세웠다. 2012년 8월 김 교수는 조혈 호르몬 주사를 맞은 뒤 직접 해발 5900m 높이의 킬리만자로에 도전했다.

가설은 입증됐다.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대규모 실험을 시행했다. 40여 명의 지원자를 모집해 2013년 2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갔다. 최종 결과는 같았다. 미리 조혈 호르몬 주사를 맞은 20명 중 단 한 명도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연구 결과는 SCI급 저널인 영문판 대한의학회지에 게재됐다.

● 악성 암을 극복하다

눈만 감아도 안나푸르나가 어른거릴 정도로 산에 푹 빠져 있던 2014년 4월의 어느 날 새벽이었다.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깼다. 화장실에 갔는데, 웬일로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아랫배에 한참을 힘줬더니 소변이 나왔다. 그런데 소변 색깔이 붉었다. 혈뇨에, 핏덩이까지 섞여 있었다.

50대 이후의 남자에게 별다른 증세가 없는 혈뇨는 상당히 나쁜 건강 적신호다. 특히 방광암이나 신장암에 걸렸을 확률이 높다. 결석이 있을 경우에 혈뇨가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는 통증과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김 교수는 이런 의학 지식을 그동안 숱하게 학생들에게 가르쳐왔다.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암이구나.’

예감이 틀리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달랐다. 방광암이었다. 그래도 다들 천운이라 했다. 혈뇨에 핏덩어리까지 섞였다면 상당히 암이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지만 다행히 방광암 1기였다. 아주 일찍 암이 발견된 드문 사례다. 김 교수는 “의학적으로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다. 다만 운동량이 많아 혈액 순환이 잘된 덕분에 핏덩어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배출된 게 아닐까 하고 추정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초기에 암을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지만 악성 중의 악성이란 점은 불운이었다. 긴 항암치료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3개월마다, 나중에는 6개월마다 집중치료를 했다. 집중 항암치료 기간에는 방광에 소변 줄을 연결해야 했다. 치료가 끝나도 1주일 정도는 진통제를 먹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그렇게 5년의 치료가 끝났다. 더 이상 암 세포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의학적으로는 5년 이상 암이 재발하지 않으면 완치로 규정한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일단 암에 걸리면 다시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김 교수는 6개월마다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받는다. 조기 발견이 정답이기 때문.

김 교수의 가족 중에 암 환자는 없다. 가족력으로 인해 생긴 암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원인을 추정해 봤다. 김 교수는 잘못된 습관에서 원인을 찾았다. “외래에서 환자를 보다 보면 화장실에 갈 여유가 없어요. 소변이 마려우면 참았죠. 그러다 보니 소변 속 유해 물질들이 오랜 시간 방광을 자극했던 것 같습니다. 절대로 소변을 오래 참지 마세요.”

● 일상에서 산악훈련을 하다

김 교수는 암 투병 와중에도 체력 훈련을 빠뜨리지 않았다. 집중 항암치료를 받고 나면 한 달 정도는 격한 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럴 때는 가볍게 상체 운동이라도 했다. 빨리 회복해서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김 교수는 “산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서 등산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처럼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게 암 투병에도 도움을 줬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내년 1월에 안나푸르나에 또 갈 작정이란다. 그 때문에 요즘도 ‘몸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김 교수는 일상의 모든 것이 체력 단련 그 자체다. 우선 병원에서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주로 이용한다. 김 교수는 하루에 8회 정도 병원 꼭대기인 18층까지 걸어 올라간다. 이것만으로도 힘에 부칠 것 같은데, 김 교수는 양쪽 발목에 각각 5㎏짜리 주머니를 찬다. 김 교수는 “산에 오를 때 메는 배낭이 얼추 10㎏ 이상은 된다. 그러니 실제와 같은 조건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 헬스클럽에서도 수시로 체력 단련을 한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적절히 배합한다. 고산 지대에 오르려면 폐활량이 좋아야 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주말에는 수영장에 간다. 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을 모두 한 뒤에는 꼭 잠영을 한다. 폐활량을 늘리기 위해서다. 한 번 잠영하면 40~50m 정도 간다.

김 교수는 몸에 군살이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말랐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물론 김 교수가 체중을 관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김 교수는 “운동만으로는 체중 관리가 불가능하다. 식사량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김 교수는 허기를 면하는 수준에서 식사를 끝낸다. 저녁에도 떡과 우유만 먹고 다른 식사는 하지 않는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회식도 양해를 구하고 빠진다. 이토록 체중을 관리하는 이유가 뭘까. “체중이 조금만 불어도 등산이 힘들어져요. 1㎏만 늘어도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니 등산을 계속하려면 체중 관리가 필요한 거죠.”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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