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짝퉁 사용때 생기는 무의식적 반감, 진품 이미지까지 훼손

동아일보

입력 2019-09-11 03:00 수정 2019-09-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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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 만년필 사용 두 그룹 실험
짝퉁이라고 안내받고 쓴 그룹이 ‘혐오’ 연관 단어 더 많이 적어내
짝퉁제품 시장에 많이 떠돌수록 진품 효용성-가치 깎아먹을 우려


온갖 모조품이 판을 치는 ‘짝퉁’ 시장은 해마다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급기야 2020년이 되면 그 규모가 5000조 원을 넘길 것이란 전망도 있다. 짝퉁 상품은 의류, 전자제품, 음료수, 식품, 약품, 담배, 자동차, 비행기 부품에 이르기까지 종류를 불문한다. 모방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짝퉁과 진품을 구별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가격은 진품보다 현저히 낮은데 성능 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짝퉁도 있다 보니 그 인기는 종종 진품을 앞서기도 한다.

하지만 짝퉁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태도는 복합적이다. 진품에 비해 내구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불신이 저변에 깔려 있어 짝퉁을 구입해 사용해도 어딘가 불안하고 남들 앞에 내세우는 것도 꺼려진다. 진품을 만드는 기업에 대한 미안함, 떳떳하지 못한 행위라는 도덕적 찔림 등으로 인해 마음도 편치 않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 오노대 연구팀은 짝퉁에 대한 심리적 반감이 진품 본연의 사용 목적과 효과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을 수행했다. 우선 대학생 참가자들을 두 개의 그룹으로 구분했다. 파커 만년필을 하나씩 나눠주며 1그룹엔 해당 상품이 짝퉁이라고 안내했고 2그룹에는 만년필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제시하지 않았다. 이후 실험 참가자들에게 빈칸을 채워 단어를 완성하라는 과제를 준 후 실제로 참가자들이 어떤 단어들을 써 냈는지 비교했다. 분석 결과 1그룹 참가자들이 완성시킨 단어들이 2그룹 참가자들이 써 낸 단어들에 비해 ‘혐오(disgust)’라는 부정적 의미를 더 쉽게 연상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빈칸 채우기 과업에 사용했던 파커 만년필을 자신의 이마에 올려놓고 떨어뜨리지 않도록 최대한 오랫동안 중심을 잡아보도록 요청했다. 이때 참가자들의 옆에 만년필을 닦을 수 있는 화장지와 소독제를 비치해 두고 이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1그룹이 사용한 화장지와 소독제의 양이 2그룹이 사용한 양의 두 배에 달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짝퉁에 대한 무의식적 반감이 화장지나 소독제의 소비를 증가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마우스를 가지고 컴퓨터 탁구 게임을 하도록 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사용하는 마우스를 짝퉁으로 알고 게임에 임한 1그룹의 성적이 2그룹에 비해 현저히 낮게 나타났다. 심지어 게임 직후 참가자들에게 ‘마우스가 도덕적 혐오를 유발했는가?’를 묻자 “그렇다”고 답한 참가자 수가 1그룹에 훨씬 많았다.

이런 실험 결과들은 짝퉁에 대한 심리적 반감이 짝퉁뿐 아니라 진품의 상품 효용성을 저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짝퉁이 많이 떠돌수록 진품의 이미지는 훼손된다. 진품이 가진 본연의 기능과 성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진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기업의 수익성과 지속 가능성도 저하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짝퉁은 진품을 구축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상품 시장의 생태계를 위협한다.

곽승욱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정리=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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