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산업의 현대화 이끈 선구자… 종근당 창업주 이종근 회장

황효진 기자

입력 2019-09-11 03:00 수정 2019-09-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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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촌 탄생 100주년 기념식서 경영철학과 업적 기려

9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종근당 창업주 고 고촌 이종근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종근당 이장한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종근당 제공

우리나라 기술산업의 효시가 돼 제약산업의 현대화에 큰 족적을 남긴 종근당 창업주 고(故) 고촌(高村) 이종근(李鍾根) 회장의 생애는 고촌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현재까지도 제약업계는 물론 우리나라 경제계에 커다란 귀감이 되고 있다.

이 회장은 종근당 창업 이후 한평생을 제약업에 몸담아 불가능에 도전해 새로운 성과를 이뤄냈다.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던 때 자체 생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원료에서 완제품까지 생산 공장의 계열화를 이뤘다. 1968년 정부에서조차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국내 최초로 획득함으로써 한국 제약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을 바꿔 놓은 일 등이 대표적이다.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종근당은 9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종근당 창업주 고 고촌 이종근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기념식은 이장한 회장을 비롯해 종근당과 가족사 임직원 350여 명이 참석했다. 기원 영상 상영을 시작으로 추도예배, 회고, 헌정 영상 상영과 축하 공연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의 집례로 추도예배가 진행된 후 종근당 전직 임직원과 종근당고촌재단 장학생 등 10명이 이 회장과 관련된 일화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회고영상이 상영됐다.

태전약품 오수웅 회장은 회고영상에서 “1960년대 항생제를 수입에 의존하던 시대에 종근당이 클로람페니콜 생산을 시작해 많은 이들이 병을 고칠 수 있었다”며 “이종근 회장님은 해외 출장 때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손수 엽서를 보내주시며 후배들에게 선진문화를 소개하고 큰 꿈을 갖게 해주셨다”고 회고했다.

마지막으로 생전 모습과 음성을 복원한 이 회장이 홀로그램으로 구현돼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참석자들은 이 회장의 메시지를 통해 창업 당시의 초심을 다지고 종근당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이장한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종근 회장은 도전과 열정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불우한 이웃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던 참 제약인”이라며 “오늘 기념식에 담긴 이종근 회장의 철학과 경영이념, 업적 등을 찾아서 공감하고 그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장 로비에는 종근당이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신진 작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종근당 예술지상’ 작가 10명이 이 회장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헌정한 그림 10점이 전시돼 참석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끝없이 울리는 종소리’라는 작품을 헌정한 유창창 작가는 “사람들의 병과 아픔을 치료하기 위해 제약업에 평생을 헌신한 이종근 회장 발자취를 되짚어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이종근 회장의 뜻이 종소리가 돼 세상에 울려퍼지길 바라는 염원을 그림에 담았다”고 의미를 전했다.

앞서 종근당은 27일 ‘고촌 이종근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 신약개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의약계 전문가와 종근당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평생 약업보국을 실천한 이 회장의 업적과 도전정신을 기리고 신약 개발을 향한 의지를 계승해 글로벌 혁신신약 개발을 다짐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종근당의 전신은 1941년 세워진 궁본약방이다. 궁본약방은 이후 종근당약방, ㈜종근당제약사를 거쳐 1969년 ㈜종근당이 됐다.
▼ 故이종근 회장 “우리 국민 건강, 우리 손으로 지킨다” ▼

고 고촌 이종근 회장
1919년 9월 9일 충남 당진시 고대면 성산리 작동마을에서 태어난 고촌 이종근 회장은 “우리 국민들의 건강은 우리 손으로 지키고 싶다”는 신념으로 1941년 종근당을 창업했다.

1961년 97일간의 해외시찰에서 국내 의약품 제조기술의 현대화와 원료의약품 국산화의 시급함을 깨닫고 1960, 70년대 국내 최대 규모의 합성공장과 발효공장을 설립해 100% 수입에 의존하던 의약품 원료의 국산화를 이뤄냈다. 1968년 국내 최초로 미국 FDA 승인을 획득한 항생제 ‘클로람페니콜’을 일본, 미국 등에 수출해 한국 제약산업의 현대화와 국제화에 큰 업적을 남겼고 이후 항결핵제 리팜피신을 국산화해 결핵 퇴치에 기여했다.

의약품 시장에 대한 경험 축적과 제조기술의 현대화, 원료의약품 자체 생산까지 성공적으로 이뤄낸 이종근 회장은 신약 개발에 대한 도전과 열정으로 1972년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중앙연구소를 설립했다.

당시 중앙연구소의 개념은 제네릭을 넘어 신약개발 연구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중앙연구소에서 축적된 연구개발 노하우는 2003년 항암제 신약 캄토벨, 2013년 당뇨병 신약 듀비에의 개발로 이어졌다.

이종근 회장은 평소 겸손과 절제, 검소함을 생활 신조로 삼았고 불우한 이웃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인재들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잇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1973년 사재를 출연하여 장학사업을 위한 종근당고촌재단을 설립했으며 남다른 인재사랑으로 1987년 종근당고촌학원을 설립해 육영사업에도 헌신했다.

1986년에는 헌신적으로 장학사업을 펼쳐온 공로로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결핵퇴치에 앞장선 업적을 기려 종근당고촌재단과 유엔 산하 결핵퇴치 국제협력사업단이 공동으로 국제적인 ‘고촌상(Kochon Prize)’을 제정한 바 있다. 2010년 한국조폐공사는 한국 제약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한 고인의 업적을 기려 ‘한국의 인물 시리즈 메달’의 52번째 인물로 고촌 이종근 회장을 선정하고 기념메달을 발행했다.

황효진 기자 herald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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