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마저 금지당한 예술가, 마광수의 진심을 만나다

김민 기자

입력 2019-09-10 03:00 수정 2019-09-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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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박물관서 2주기 추모전… 모교에 기증한 그림 30여 점 전시

“마 교수가 생전 가장 힘들어했던 건 일어나지도 않은 사건을 상상했다는 이유만으로 단죄를 당했다는 점이었죠. 지금이라도 그의 예술 세계가 제대로 평가받길 바랍니다.”

마광수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1951∼2017)의 유품 정리·기증을 맡았던 박혜진 북리뷰 편집장은 5일 이렇게 말했다. 그날은 마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된 날이었다. 같은 날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박물관에서는 전시 ‘마광수가 그리고 쓰다’가 개막했다. 고인이 남긴 그림 100여 점 가운데 30여 점을 선보였다.

이에 앞서 유족은 고인의 책 1만여 권과 유품, 그림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그가 사용했던 책상, 안경, 육필 원고는 물론이고 마지막으로 태운 담배와 재떨이도 포함됐다.

박 편집장은 “생전 마 교수가 강단에 서는 일을 사랑했기에 학교로 돌아가 작품세계를 알리는 게 그의 정신을 추모하는 길이라 봤다”며 “학술정보원에 만들어진 ‘마광수 개인 서고’는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 교수는 생전에 예술에 있어서 글과 그림은 큰 차이가 없다고 자주 얘기해왔다. 본인이 예술에서 상징의 의미를 공부했기에, 시건 에세이건 소설이건 그림이건 표현의 출발점은 같다고 봤다. 전시된 그림의 다수는 책에 삽화로 실렸던 작품이다.

1994년 첫 개인전 도록에선 “자유분방하고 관능적인 이미지를 꿈꾸는 나의 미술가적 기질이 문학작품에도 반영돼 탐미적 묘사를 가능하게 한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1989년 첫 신문 연재 칼럼에 삽화를 그리던 고인은 1992년 말 벌어진 ‘즐거운 사라’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두 달 동안 구치소 신세를 지고 나서, 강의까지 쉬게 되어 갑자기 많은 시간을 갖게 됐다. 재판에도 신경 써야 하고, 표현의 자유가 어이없게 유린된 데 대한 울화도 삭여가며 하루하루를 때워 나갔기에 글을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러다 다도화랑 대표로부터 초대전 제의를 받아 용기 내 화필을 잡았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활자공포증’으로 글을 읽을 수 없었던 그는 동화책에 의지했다. 발가벗고 뛰어놀아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동심의 세계를 좋아했던 고인의 그림은 동화책을 닮았다. 그러나 ‘어려운 책은 못 쓴 책’ ‘거꾸로 본 세상은 아름다워’ 같은 그림에선 촌철살인의 철학적 메시지가 돋보인다.

“한국에서 유명한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시와 소설일수록 더럽게 어렵게 읽힌다. 유식한 체하고 싶어 하는 ‘현학 취미’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려운 글은 심오한 글이 아니라 ‘못 쓴 글’이다.”(소년 광수의 발상)

이번 전시에는 그의 육필 원고도 처음으로 공개한다. 유족과 지인들은 “고인이 남긴 글과 그림을 통해, 윤동주와 상징 시학을 연구했던 학자이자 예술가였던 마 교수의 세계가 제대로 평가받길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 12월 31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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