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 누가 제일 예뻐?” “요술거울은 ‘백설공주’라 하던데요”

유근형 기자

입력 2019-08-31 03:00 수정 2019-08-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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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방통 AI 스피커, 요즘은 귀에 꽂고 다닌다

“BTS(방탄소년단) 노래 틀어줘.”

집을 나서면 습관처럼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는 30대 직장인 조보람 씨. 이어폰의 터치패드에 잠시 손가락을 댄 뒤 요즘 즐겨듣는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부탁해본다. 몇 초가 지났을까. 무선 이어폰에선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조 씨의 음성을 인식한 기기가 스마트폰에 저장된 음악 파일을 재생한 것이다. “이퀄라이저(음향조정기능) ‘풍부한’ 톤으로 바꿔줘.” 또 한번 명령을 내리자 음악의 베이스 톤이 더 강조됐다.

음악 몇 곡을 들은 조 씨는 조금 심심해졌다. “무서운 이야기 해줘.” 조 씨가 요청하자 기기는 “본 이야기는 공포물로 놀랄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라는 안내 음성과 함께 스마트폰에 저장돼 있는 주유소에서 벌어진 무서운 사건 이야기를 들려줬다.

스마트폰과 연동된 무선 이어폰의 기능에 조금 놀란 조 씨는 다소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기기는 주저함 없이 답했다. “요술 거울은 ‘백설공주’라고 말했죠.” 우문현답(愚問賢答)이 돌아왔다.

“랩 해줘.” 더 강한 요청을 던졌다. 하지만 “제가 랩을 한다니 상상이 되세요?”라는 멘트와 함께 능숙하진 않지만 스마트폰의 기능을 주제로 한 랩이 흘러나왔다. 삼성전자 무선 이어폰 갤럭시버즈 사용자인 조 씨의 출근길 풍경이다.


○ 급성장하는 무선 이어폰 시장

지하철과 버스를 타면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지난해만 해도 얼리어답터(새 제품을 먼저 경험하려는 고객들) 사이에서 유행했지만, 최근 유선 이어폰을 끼고 지하철을 타면 “나만 유선인가?”라며 머쓱해질 때도 적지 않다.

실제로 무선 이어폰 시장은 급성장세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분기 무선 이어폰의 전 세계 판매량은 2700만 대로 1분기(1750만 대)보다 54%가량 성장했다. 온라인 가격비교업체 다나와에 따르면 지난해 이어폰 판매 중 무선 이어폰의 비중이 61%에 달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무선 이어폰 매출 신장률은 올해 1∼7월을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대비해 55.1% 증가했다.

시장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시장점유율 50%를 넘기며 시장을 주도하는 애플 에어팟에 이어 삼성 갤럭시버즈(2위)가 10%대 안팎으로 시장을 공략 중이다. QCY, 샤오미 등 중국산 저가형 제품이 가성비를 앞세워 시장에 진입했고, 뱅앤올룹슨, 닥터드레 등 프리미엄 음향 브랜드들도 앞다퉈 무선 이어폰을 출시하고 있다. 애플과 삼성 제품은 약 15만∼20만 원대지만 3만∼5만 원대 저가 제품도 있다.

유선에서 무선 이어폰으로의 전환은 스마트폰 제조방식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애플은 2016년 아이폰7부터 이어폰용 단자를 없앴고, 삼성전자도 8월 출시한 갤럭시노트10에서 이어폰 단자를 제거했다.

무선 이어폰 열풍은 한국에서 유독 거세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글로벌 음향기기업체의 한 관계자는 “미국, 일본, 브라질 등 다른 국가들에 비해 한국에서 애플 에어팟 등의 판매량 증가세가 유독 크다”고 말했다. 이에 애플은 자사 제품 광고 중 최초로 한국의 고유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 에어팟 광고를 제작하는 등 한국 맞춤형 마케팅에 착수하기도 했다.


○ 진화하는 편의성

무선 이어폰의 인기 요인은 일단 편의성에 있다. 애플 에어팟, 삼성의 버즈 등은 모두 스마트폰에 한 번 연결하면, 그 다음부터는 이어폰 케이스를 열자마자 자동으로 연결된다. 스마트폰 화면을 보지 않고도 문자, 카카오톡, 이메일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음악을 듣는 중간에도 알람을 받기에 메시지를 놓치지 않을 수 있고, 알람 설정을 통해 필요한 메시지만 골라 받을 수도 있다.

무선 이어폰 출시 초기에는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 통화음이 자주 끊기는 현상이 있었지만, 최신 제품들의 통신 연결은 대폭 개선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배터리 성능도 진화 중이다. 애플의 에어팟 2세대는 H1칩을 탑재하면서 한 번 충전으로 음악 재생 최대 5시간, 통화 최대 3시간까지 가능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은 1세대보다 2세대의 배터리 성능이 50%가량 진화했다. 15분만 충전해도 음악 최대 3시간 재생, 통화는 2시간까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버즈도 6시간 연속 재생, 5시간 연속 통화가 가능하고, 15분 충전으로 100분 동안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 삼성 등 주요 제품이 모두 무선 충전 거치대에서 충전이 가능하다.

분실을 걱정하는 무선 이어폰 사용자들의 걱정도 다소 줄었다. 애플 제품은 ‘나의 에어팟(AirPods) 찾기’, 삼성 버즈는 ‘내 이어버드 찾기’ 기능을 이용하면 현재 제품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어폰을 분실한 사용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무선 이어폰을 한 쪽씩도 판매하고 있다.


○ 음향 전문 브랜드 못지않은 음질

스마트폰 회사의 무선 이어폰이 음향전문 브랜드보다 떨어진다는 인식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미국 소비자전문지 컨슈머리포트에 따르면 갤럭시버즈는 최신 무선 이어폰 평가에서 평점 86점으로 1위를 기록했고, 특히 음질 분야 평가에서 음향전문 브랜드를 제치고 유일하게 ‘엑설런트’ 등급을 받았다. 뱅앤올룹슨 베어플레이 E6(80점) 등 세계적 브랜드의 무선 이어폰을 제친 것이다. 삼성전자는 세계적 사운드 브랜드 하만 AKG를 인수해 음질 개선 혁신에 매진해왔다.

또 갤럭시버즈는 ‘주변소리 듣기’ 기능을 통해 안내방송, 차 소리 등을 놓치지 않게 조절할 수 있다. 듀얼마이크가 도입돼 통화 시 음질도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AI와 결합, 디지털 메디컬 기기로도 발전

무선 이어폰은 인공지능(AI) 기술과 함께 더 진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스마트폰과 연동된 무선 이어폰이 지능을 갖춘 동료, 친구의 역할을 해줄 날도 머지않았다는 것이다. 2014년 영화 그녀(HER)의 남자 주인공처럼 무선 이어폰에 탑재된 AI 운영체계와 마음을 나누는 일도 실제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무선 이어폰이 바이오 헬스케어 산업과 융합하면 다양한 부가가치가 생성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예를 들어 무선 이어폰에 난청 치료, 불면증 우울증에 대한 심리 치료 기능이 탑재될 수 있다는 것.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BT)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는 에임메드(AIMMED)의 신재원 대표이사는 “미래에 보청 난청 치료기가 무선 이어폰과 결합한다면,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질 수 있다”며 “AI 기술이 접목된다면 자동으로 환자 상태에 맞게 볼륨이 조절되고, 디자인적으로도 이어폰 안으로 보청기가 들어가면 환자들의 편의성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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