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기적인 치매 완화법’으로 주목… 獨드레스덴 알렉사 요양원 가보니

드레스덴=위은지 기자

입력 2019-08-31 03:00 수정 2019-08-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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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시니어’ 시대]
옛 물건 가득한 ‘기억의 방’에선 불안증 줄고 대화의 문 열려


6월 말 찾은 독일 동부 드레스덴 요양원 ‘알렉사’. ‘기억의 방’이라 불리는 공간 한쪽 벽장엔 옛 동독의 자랑이던 흰 도자기 그릇과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 등이 장식돼 있었다. 오전 8시경 노인 8명이 이 방으로 ‘출근’했다. 이들은 방 한가운데 사각 식탁에 둘러앉았지만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모두 중증 치매를 앓고 있었다. 빈티지 라디오에서 1960년대 방송이 흘러나왔다.

“여러분, 이 물건이 어디에 쓰는 건지 아세요?” 요양원장인 군터 볼프람 씨(51)가 노란색 플라스틱 도시락통을 들고 오자 노인들의 눈이 반짝였다. 한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어릴 때 버터를 바른 빵을 넣고 다녔어요.” 옆에 있던 할아버지도 거들었다. “나도 저것과 똑같이 생긴 철 도시락통이 있었는데.” 노인들이 입을 열자 볼프람 씨는 “맞다. 철 도시락통도 있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노인 약 250명이 사는 알렉사 요양원은 치료를 위한 ‘기억의 방’ 3곳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 방에는 노인들이 청춘 시절이던 1960, 70년대 옛 동독 시절의 물건이 가득하다. 볼프람 씨는 “옛날에 자신들이 많이 썼던 물건을 접하면서 그 물건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건은 골동품 시장에서 사거나 드레스덴 동독박물관에서 일정 기간 빌린다. “옛날 화로를 구해 갖다놨어요. 어르신들이 오히려 젊은 직원들에게 화로 사용법을 설명해주더군요.”

볼프람 씨가 ‘기억의 방’을 생각해 낸 건 2014년이었다. 그는 “2007년 이 요양원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땐 일상 보조만 해주면 됐지만 갈수록 노인들의 인지능력이 떨어져 새로운 돌봄법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먼저 떠올린 건 영화관이었다. 노인들에게 젊은 시절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고 싶어 1960, 70년대 영화를 보여주기로 했다. 여기에 ‘특별한 소품’을 구해왔다. 1960년대 초 동독에서 유행하던 오토바이를 인터넷 경매사이트에서 찾아낸 것. 그는 “1000유로(약 130만 원)에 구매한 오토바이를 영화관 구석에 전시했는데, 영화보다 오토바이가 더 관심을 받았다”고 말했다.

기억을 잃은 듯했던 노인들이 오토바이 앞에 모여서 ‘이거 정말 갖고 싶었던 건데’ ‘젊을 때 여자친구랑 함께 탔었지’라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볼프람 씨는 “중증 이상 치매노인이 대화를 나누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라고 했다. 그는 옛 물건을 더 구해왔고, 노인들은 가정을 꾸리고 직장을 다니던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기억의 방은 출근해야 한다거나 아이를 보러 가야 한다며 요양원을 벗어나려는 노인들에게 큰 효과가 있었다. 직원들은 이런 증상을 보이는 이들을 마치 회사에 출근시키듯 아침마다 기억의 방으로 데려온다. 이 방에서 노인들은 과거 이웃과 함께했던 잼 만들기를 하거나, 옛 동독 지폐로 물건을 사는 활동을 한다. 볼프람 씨는 “불안 행동을 보였던 노인의 증상이 완화돼 더 이상 문을 잠글 필요가 없어졌다”며 “노인들도 이 방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지속적으로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억의 방은 현지 언론에서 ‘획기적인 치매 완화법’으로 주목받았다. 함부르크 등 다른 도시뿐만 아니라 영국 등 해외에도 비슷한 시설이 생겼다. 하지만 ‘동독 사회주의를 미화한다’는 정치 논란도 일었다. 그는 “정치는 중요한 게 아니라서 배제했다”며 “로큰롤처럼 노인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것만 되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드레스덴=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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