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개인전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

양형모 기자

입력 2019-08-30 16:57 수정 2019-08-3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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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 피로타’.

9월2일~14일 서울 종로구 금보성 아트센터

‘내숭시리즈’로 사회를 향해 유쾌한 표창을 던지는 ‘한국화의 아이콘’ 김현정 작가가 ‘결혼’이라는 테마로 돌아왔다. 9월2일부터 9월14일까지 서울 종로구 금보성 아트센터에서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 개인전을 연다. 벌써 23번째 개인전이다. 생산력이 왕성하다.

이전까지 김 작가의 ‘내숭시리즈’가 내면에 대한 탐구와 외적 아름다움의 추구 등 ‘나’에 초점이 맞혀졌다면 이번 전시회 작품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나(我)’와 나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될 잠재적 타인을 포함한 ‘나를 둘러싼 세계’로 시야를 넓혔다. 특히 명작의 패러디라는 도구로 ‘결혼’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위트 있게 파고들었다.

다음은 김현정 작가와의 일문일답.


-김현정 작가하면 2016년 내숭놀이공원 전시가 기억이 난다. 그 후 오랜만의 전시인 것 같다.

“2013년부터 활동을 시작해서, 그간 크고 작은 전시를 정말 많이 했다. 벌써 23번째 개인전이다. ‘내숭놀이공원’ 전시 이후로는 3년 만이다. 그간 기업과의 컬레버레이션도 많이 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그사이 중·고등학교 교과서 8종에도 제 작업이 소개되기도 했다.”

‘결혼 : 육아전쟁’.

-이번 전시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들었다.

“2018년 12월에 한국미술협회가 주최한 ‘제12회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행사에서 대한민국 미술인상 청년작가상을 수상했다. 이번 전시는 그 수상을 기념한 초대전이다. 나도 1988년생이니 어느덧 서른 살이다. 여성으로서 서른이라는 나이는 결혼이라는 말이 붙어 다닌다. 나를 비롯한 내 또래 세대들이 겪는 결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고민들을 전시에 풀어내려 했다.”


-전시 제목이 특이하다.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의 의미는 무엇인가.

“‘계란 한 판’은 계란 한 판이 30개란 것에 착안해 나이 30살을 비유해 표현한 말이다. ‘결혼할 나이’는 사회적으로 결혼을 요구 받는 나이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여성의 나이가 30이 되는 것에 대해 특히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 살이 되던 해부터 ‘올해는 우리 딸이 시집 가는 것이 소원’이라는 어머니의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런데 그런 말을 계속 듣다 보니 오히려 반발심이 들었다. 아직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결혼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 마치 덮어놓고 결혼부터 하라는 말씀들이 무책임하게 들렸다. 결혼에 대한 생각을 스스로 정립하고 싶어서 결혼을 주제로 잡게 됐다.”


-이번 전시에서 다루는 내용을 소개해 달라.

“전시의 전반부에서는 결혼에 대한 판타지를 표현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결혼의 현실적인 문제들과 그것에 대한 저의 불안 요소들을 표현했다. 예를 들어 ‘육아전쟁’은 고된 육아에 대한 두려움이, 그리고 ‘피로타’는 가사노동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다. 막상 결혼을 하고 나면 이런 것들이 부질없고 근거 없는 불안이었다고 느껴지게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전시의 키워드는 결혼에 대한 서른 살의 ‘불안정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결혼 : 천지차이’ - ‘결혼 : 생각하는 예비신부’ - ‘결혼 : 웰컴 투 시월드’(위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작가의 새로운 시도가 있다고 들었다.

“단적으로 ‘시리즈’의 변화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마도 ‘내숭 시리즈’로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전까지는 20대 여성으로서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에서 생기는 고민들과 취미 등과 같은 제 관심사들을 다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몇 년 새 최대 관심사는 결혼으로 바뀌었다. 결혼에 대한 상념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확장되었고, 그렇게 등장한 시리즈가 ‘결혼 시리즈’다. 20대의 내 자화상과 30대의 자화상의 차이가 ‘내숭’과 ‘결혼’을 통해 나타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는 명화의 구도와 이미지를 재해석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한다. 결혼에 대한 생각들을 어떻게 하면 위트 있고 압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새롭게 해 본 시도다. 예를 들어 ‘결혼 : 천지차이’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결혼 : 생각하는 예비신부’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결혼 : 웰컴 투 시월드’는 뭉크의 ‘절규’의 구도와 이미지를 빌려 온 것이다. 단순한 차용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디테일에 많은 신경을 썼다.”


-작가의 역대 전시의 모객 신기록은 기획력에서 온다. 이번 전시의 기획 포인트는?


“이번 기획의 핵심 키워드는 결혼이다. 이번 전시도 하나의 결혼식처럼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청첩장의 경우 모바일 청첩장이 대중화됐다. 이 모바일 청첩장이라는 아이템에 영감을 얻어, 전시 초대장도 모바일 청첩장의 형태로 제작했다. 모바일 청첩장에 신랑 신부의 아름다운 웨딩 사진이 없는 대신 직접 사진을 찍도록 전시장에 포토존을 설치했다. 전시장은 마치 60-70년대 결혼식장 컨셉트다. 이를 연상시키는 포인트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전통 봉황 무늬를 재해석한 디자인 컨셉트의 작품 캡션이나 아트 상품 안내표지판, 도록부터 구석구석 재미있는 포인트들로 구성했다.”


-소셜드로잉이라는 말이 익숙하면서도 생소하다.

“소셜드로잉은 사실 내가 창작한 용어다. 나는 SNS를 활발히 활용하는 편이다. SNS는 ‘Social Network Service’의 약자다. 이 단어를 듣고 추론할 수 있듯, 소셜드로잉(Social drawing) 이란 ‘사회의’, ‘사회적인’이라는 의미를 뜻하는 ‘Social’ 과 ‘drawing’이 합쳐진 용어다. 즉, 온라인 집단지성을 활용하여 네티즌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이것은 네티즌들의 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창작활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소셜드로잉의 방식은, 먼저 내가 집중하는 화두를 SNS에 올린다. 그러면 이것을 바탕으로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데, 이를 통해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만들어지고 이는 작품의 소재가 된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재료 삼아 작품으로 재창조한다. 이러한 과정을 작업화 시키는 과정 역시 소셜 드로잉에 해당된다. 소셜드로잉은 단순히 네티즌들의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작된 작품을 다시 SNS에 올림으로서 새로 발생된 아이디어로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고, 여기서 파생된 다른 아이디어를 재생산시키는 모든 활동과 현상을 일컫는 것이다.”

김현정 작가.

● 김현정 작가는?


“한국화의 대중화와 부흥를 이끄는 한국화의 아이돌…내숭시리즈로 찬사”

김현정 작가는 선화예술학교와 선화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동양화과와 경영학과를 총동창회장상을 받으며 졸업했다. 또한 서울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 석사학위 취득 후, 동대학원 박사를 수료했다. 현재 서울시 홍보대사를 맡고 있으며, 여러 대학교와 기업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내숭’이라는 주제로 22번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전시 그림이 완판되는 등 다양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참신한 발상과 주제, 표현 기법은 ‘당돌하다’라는 평가와 함께 정통 동양화의 이론과 기법에 기초해변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 화단의 유망주이다.

김현정 작가의 2013년 개인전 ‘내숭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며 큰 화제가 됐고, 이어진 개인전 ‘내숭올림픽’(2014)과 ‘내숭 놀이공원’(2016년) 역시 수많은 관객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특히 2016년 전시는 국내 작가 개인전 최다 관람객인 6만7,402명의 누적 관객 기록을 세웠다. 김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최연소 작가로 초청됐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독일문화원에서 초대 개인전을 여는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2017년 4월에는 세계적인 경제전문지인 포브스에서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선정됐으며, 2018년 9월에는 사단법인 한국마케팅협회에서 주관하는 2018 대한민국 브랜드 대상, 개인부문 The Prize of Entrepreneurship을, 2018년 12월에는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 미술인상 대한민국 청년작가상을 수상했다.

김현정 작가는 연륜과 경력을 중시하는 미술계에서 ‘한국화의 아이돌’로 불리고 SNS를 적극 활용해 20여 만명의 대중과 꾸준히 소통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녀는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동양화를 생활 속에 접목시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는 다양한 아트 콜라보레이션, 강연, SNS 활동 등을 통해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고 한국화의 대중화와 부흥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혼 : 함 들어오는 날’.

● 김종근 평론가가 본 김현정 작가의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


“세 번의 기도가 필요한 그녀의 고백록”

김현정은 이제 서른 살의 촉망 받는 여류 한국화가이다. 대중이나 미술애호가로부터 심각하게 홀대 받는 한국화 분야에서 유독 김현정 작가의 작품에 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예외로 반응이 뜨겁다. 그녀는 전시할 때마다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으고, 수많은 관람객이 그녀의 그림에 열광한다. 심지어 그녀는 이미 미술계의 아이돌, 그리고 셀럽으로 떠오르며 실제 그런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에는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란 테마로 돌아왔다. 이번 전시는 금보성아트센터와 한국미술협회가 우수한 청년 작가에게 상금과 함께 수여하는 대한민국 청년 작가상 수상 기념 특별전이기도 하다. 이 전시에 그녀는 특유의 재치처럼 위트 있게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展으로 타이틀을 붙였다. 제목에서 이미 결혼! 이제 서른 살의 그녀에게 흔하게 명절이 아니어도 쏟아지는 흔해 빠진 “결혼 안 하니?” 같은 질문에 대한 화답이거나 솔직한 고백록으로 그림이 읽혀진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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