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코 “수출 ‘규제’ 대신 ‘관리’ 라고 써야” 언론보도까지 문제삼아

도쿄=김범석 특파원 , 도쿄=박형준 특파원

입력 2019-08-13 03:00 수정 2019-08-13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한일관계 리셋하는 일본]<6> 언론 압박하는 아베정권

8일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일본 경제산업상이 포토레지스트(감광액)의 수출 승인을 발표하던 기자회견실. 또 다른 규제 가능성을 시사하던 브리핑 말미에 ‘추가 수출 규제 대상으로 어떤 품목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세코 경산상은 “상세한 것은 답을 삼가겠다”며 추가로 이런 말을 했다. “‘수출 규제’가 아닙니다. ‘무역 관리상 조치’입니다.”

브리핑 보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세코 경산상은 지난달 24일 트위터에 일본 주요 언론사들의 표현 방식을 리스트로 올렸다.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 NHK가 ‘수출 규제’로 보도하고, 요미우리신문이 ‘수출 관리’, 산케이신문이 ‘수출 엄격화’라고 각각 표기했다. 경산성을 담당하는 한 일본 기자는 “정부가 ‘수출 관리’라고 쓰지 않는 언론사를 압박하기 위한 글처럼 여겨졌다”고 말했다. 5시간 뒤 세코 경산상은 NHK를 공개적으로 저격하는 글을 추가로 게시했다. 경산성 현관에서 NHK 기자를 만났던 그는 트위터에 “NHK는 수출 규제라는 말 대신 전문가 세계에서도 쓰이는 ‘수출 관리’라고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는 글을 남겼다. 그동안 ‘수출 규제’라고 표현했던 NHK는 세코 경산상의 트위터 글 게시 이후 ‘수출 관리’로 표현을 바꿨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1강(强) 체제 속에서 일본 언론도 관리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강화,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등 최근 한국 때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내각 관료들은 언론사의 기사 제목이나 표현 등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기도 한다.

아베 내각의 언론 압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년 전 아베 총리 관여 의혹이 제기된 가케(加計)학원 수의학부 신설 특혜 논란을 두고 총리 관저 브리핑에서 모치즈키 이소코(望月衣塑子) 도쿄신문 기자가 40분간 23차례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이후 스가 장관은 도쿄신문에 공식 항의한 것은 물론이고 총리 관저 출입 기자단에도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해 모치즈키 기자가 질문하지 못하도록 전방위로 압박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5일 ‘일본에서 질문이 많은 기자는 특이하게 여겨진다’란 제목으로 이를 전하며 “일본 정부는 종종 독재정권을 떠올리게 한다”고 비판했다.

국제 언론감시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최근 발표한 세계 180개국의 국제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일본은 67위로 한국(41위)보다 낮게 나타났다. 2011년 32위였던 일본은 2016년 72위로 하락한 뒤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중요한 일을 앞두곤 소위 ‘친정부’ 성향이라 불리는 특정 언론사만 상대하고 있다. 올해 5월 3일 새 연호 레이와(令和) 시대의 첫 헌법기념일에는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개헌 의지를 밝혔다. 7월 2일에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미일 동맹 관련 사항과 자신의 공약을 밝히는 인터뷰를 요미우리신문과 했다. 진보 또는 중도적 성향의 매체인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등과는 최근 인터뷰를 한 적이 거의 없다. 이 매체들은 여전히 ‘수출 규제’라고 표현하고 있다.

일본 외교 소식통은 12일 “아베 정권의 메시지를 한발 앞서 대변하는 방송도 늘고 있다”며 “한국 때리기 콘텐츠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보수 성향인 후지TV의 케이블 채널 BS-후지가 이달 1∼9일 저녁 시사 프로그램에서 방송한 주제는 한국 관련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한 외교 안보’ 같은 주제도 있었지만 ‘반일 문재인 정권의 실정’ 등 부정적인 내용도 적지 않았다.

이런 기류에서 일본 기업들도 정부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에 극도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교도통신이 지난달 일본 주요 기업 112곳을 대상으로 실시해 12일 전한 설문조사에선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평가’ 질문에 절반이 넘는 54%가 “모르겠다,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교도통신은 이를 신중한 태도로 풀이했지만 정부 눈치를 보는 기업들이 솔직한 견해를 밝히지 못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도쿄=김범석 bsism@donga.com·도쿄=박형준 특파원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