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발길 멈추는 거리의 예술과 낭만적인 나이트 트램투어”

김재범 전문기자

입력 2019-07-22 15:24 수정 2019-07-2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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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잉푼 역 B3출구 앞의 벽화. 화초에 물을 주는 소녀의 모습이 건물 에어콘 실외기와 배관과 어우러져 인상적이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 올여름 홍콩, 딥(deep)하게 다녀볼까 - (2) 사이잉푼과 타이퀀


사이잉푼, 거리와 지하역사 화려한 벽화 압권
불밝힌 네온사인숲, 트램으로 지나는 낭만투어
아트홍콩의 저력, 예술공간으로 변신한 경찰청사

홍콩은 한국사람이 즐겨찾는 해외여행지 톱5에 들어가는 도시다. 그런데 홍콩을 1~2회 갔다 오면 “센트럴과 코즈웨이베이의 쇼핑가도 돌아다녔고, 빅토리아 피크 야경도 보고 딤섬 맛집도 갔는데 더 볼게 있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 정도면 홍콩관광 핵심은 어느 정도 맛 본 것이다. 하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세련되고 화려한 도심이 홍콩의 모든 것은 아니다. 검색에 약간의 시간만 투자하고 다리품도 조금 팔 각오를 하면 홍콩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여름휴가철을 맞아 홍콩을 조금 더 깊게(deep) 알아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오늘은 두 번째로 평범하던 거리와 건물에 예술적 감성을 더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사이잉푼(Sai Ying Pun·西瑩盤)과 타이퀀(Tai Kwun·大館)을 소개한다.

홍콩섬을 가로지르는 지하철(MTR) 아일랜드선은 현지인은 물론이고 여행객도 많이 이용하는 노선이다. 셩완, 센트럴, 애드미럴티, 완차이, 코스웨이베이 등 홍콩 여행객이 좋아하는 명소들이 이 노선에 있다. 사이잉푼은 쇼핑투어의 명소인 셩완(Sheung Wan 上環) 다음 정거장이다.

사실 사이잉푼이 여행객에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4~5년 전이다. 2014년 말까지만 해도 아일랜드선은 셩완까지만 연결됐다. 그해 12월 28일부터 셩완에 이어 사이잉푼, 홍콩대학 케네디타운 등 세 정거장이 추가 연장됐다.

지하철이 늦게 개통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이잉푼은 관광객이 매력을 느낄 요소가 많지 않은 평범한 지역이었다. 이곳은 현지인의 주거지역이자, 각종 약재상과 해산물 가공품 판매점이 모여 있는 로컬 상업구역이었다.

하지만 MTR 개통 이후 홍콩서 근무하는 외국인들이 하나 둘 옮겨오면서 지역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재래시장과 생필품 중심으 가게, 소박한 차찬탱이 있던 지역에 감각적인 분위기의 레스토랑이나 카페, 바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특히 언덕에 위치한 하이 스트리트(High Street)는 요즘 홍콩에서 주목받는 ‘힙’(Hip)한 공간이 되었다.

사이잉푼 벽화지역은 넓지 않다. MTR역 B3출구와 충칭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돌아보면 쉽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 거리에 새로운 생명을, 사이잉푼 벽화

하이 스트리트가 인기를 얻으면서 신구가 공존하는, 어찌보면 조금은 어정쩡한 분위기이던 사이잉푼은 최근 MRT역을 중심으로 조성한 거리벽화로 인해 동네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거리벽화는 2016년부터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예술가들과 손잡고 진행한 어반 캔버스(Urban Canvas)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오래된 건물이나 낡은 시멘트 계단에 여러 아티스트들이 각자 개성 넘친 예술관을 담은 작품을 그려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사이잉푼의 벽화 지역은 생각보다 넓지는 않다. 대략 사이잉푼 역의 B3출구 근처 충칭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계단과 골목을 돌아다니면 만날 수 있다. 벽화 테마는 무척 다양하다. 동네 역사를 담은 그림부터 익살스런 팝아트,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트릭아트, 이국적 정취의 풍경, 지역 정서를 담은 인물화까지 감상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사이잉푼 벽화는 다른 지역의 거리 벽화에 비해 규모가 비교적 큰 것도 특징이다. 건물 벽면 전체를 그림으로 장식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홍콩에는 셩완의 탱크 레인, 센트럴의 스타운턴 거리, 그라함 스트리트 등에도 이런 거리 벽화가 있다. 하지만 사이잉푼에는 그곳들에선 볼 수 없는 이곳만 있는 또 다른 멋진 예술존이 있다. 바로 역사 내부다. 벽화지역과 가까운 B3나 B1, B2출구로 들어가면 홍콩의 지나온 자취와 서민들의 일상을 담은 멋진 예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홍콩 지하철(MTR) 사이잉푼역 B3출구 엘레베이터 부근에 조성한 실내 부조물. 홍콩 서민들의 일상을 화려한 색채로 담았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역사 통로에 그림이나 사진으로 묘사한 것도 인상적이지만 최고 장관은 B3출구 엘리베이터 입구 쪽 부조물들이다. 시장에서 흥정을 하는 상인과 시민, 홍콩의 옛 거리 등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정감넘치는 모습을 선명한 색감의 부조로 만들었다. 홍콩 인증샷의 새로운 명소로 각광받는 포인트다.

# 주의사항: 사이잉푼 역은 출구에 따라 이동하는 거리가 무척 길다. 전철을 이동해 찾아갈 경우는 꼭 가는 곳의 출구번호를 확인해야 더운 날씨에 길에서 헤매는 고생을 덜할 수 있다.

홍콩 도심을 오가는 트램 2층에서 내려다본 거리 모습. 트램 종점에서 가까운 사이잉푼은 나이트 트램투어의 출발지로 좋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 정겨운 아침 풍경, 화려한 트램투어의 거점

MTR 아일랜드선이 개통되기 전부터 사이잉푼을 좋아했던 홍콩여행 고수들이 꽤 있다. 사이잉푼 역에서 트램으로 5분 거리에 마카오페리 터미널이 있기 때문이다. 셩완과 사이잉푼 사이에는 방값 비싸기로 악명높은 홍콩에서 그나마 실속있는 가격에 묵을 수 있는 호텔들도 제법 많았다. 홍콩+마카오 일정을 계획할 경우 사이잉푼은 가성비 넘친 선택지였다.

만약 이곳에 숙소를 잡았다면 아침 나절에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을 권한다. 해외여행에서 꿈꾸는 활기찬 현지들의 아침을 만날 수 있다. 사이잉푼에 즐비한 약재상마다 가게 앞에 나와 장사준비를 위해 약재를 썰거나 다듬느라 분주하고, 골목 재래시장에서는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과 상인들의 대화 소리가 떠들썩하다. 넥타이를 맨 단정한 수트 차림으로 분주하게 빌딩가를 걸어가는 센트럴의 아침과는 사뭇 다르다.

트램 2층에서 보는 풍경. 2층 앞좌석의 강점은 이렇게 앞에 가는 트램 모습과 거리를 실감나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는 점이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사이잉푼의 또 다른 강점은 나이트 트램투어의 최적지라는 점이다. 도심을 오가는 트램은 홍콩여행의 낭만을 상징하는 교통수단이다. 대개는 호기심에 가볍게 몇 정거장 타는 것으로 만족하는데, 만약 시간여유가 있다면 해질 무렵에 종점에서 트램을 타고 네온사인에 하나 둘 불이 켜지는 도심을 통과하는 나이트 투어가 좋다.

트램 투어의 최고 명당이라 할 수 있는 2층 맨 앞좌석.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매력적이고 사진도 편하게 찍을 수 있어 좌석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사이잉푼은 트램 노선의 거의 서쪽 끝에 위치해 이곳에서 타고 반대편의 노스포인트나 해피밸리까지 가면 1시간 정도 걸린다. 일단 종점이다 보니 좌석이 여유롭다. 특히 트램투어의 최고 황금좌석인 2층 맨 앞자리를 확보할 확률이 높다. 트램 2층의 맨 앞좌석은 거리 풍경이나 정거장 모습, 반대편 트램과 마주치는 모습 등을 바라보며 여행사진 찍기가 좋은데, 그만큼 자리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오후 6시쯤 트램을 타고 2층 앞자리에 앉아 느릿느릿 도심을 지나가는 트램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화려한 대형 네온사인이 머리위로 스칠 듯이 지나간다. 언젠가 봤던 이름모를 홍콩 영화의 장면이 절로 떠오른다. 올때는 반대편 역에서 다시 트램을 타면 된다. 트램 역시 요금을 낼 때 잔돈을 주지 않기 때문에 홍콩의 ‘티머니’로 불리는 옥토퍼스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편하다.

도심 고층 건물과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타이퀀 메인동의 모습. 미술 전시장과 함께 위층에는 분위기있는 레스토랑이 자리잡고 있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교도소에서 아트 핫 플레이스로, 타이퀀

센트럴 할리우드 로드에 있는 타이퀀(大館)은 원래 경찰서와 교도소로 쓰던 옛 중앙경찰청사 건물이다. 도심이 빠르게 현대화되면서 자칫 시내 복판의 빛바랜 근대유물로 머물러 있을 수 있던 건물들을 2018년 5월 복합문화 공간으로 멋지게 변신시켰다. 공식명칭은 타이퀀 문화예술센터(Tai Kwun Centre for Heritage and Arts).

타이퀀의 건물들을 연결하는 구름다리. 다이퀀 관래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렇게 경찰서와 교도소로 사용했던 예전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고풍스런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전시, 행사, 공연 등 다양한 문화 예술 이벤트가 열리고 매력적인 맛집들도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건물 자체가 지닌 역사적 의미까지 더해지면서 홍콩을 대표하는 잇 플레이스로 자리잡고 있다. 교도소와 경찰서로 쓰였던 흔적을 볼 수 있는 건물투어도 꽤 재미있고, 아시아 미술마켓의 중심지가 된 홍콩의 위상을 보여주는 전시회도 재미있다.

이번 여름에는 ‘아시아의 앤디워홀’이라 불리우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다. 회화, 조각, 패션 등 캔버스를 넘나드는 다양한 60여점의 작업물을 만날 수 있다.

최근 서울 진출도 준비중인 홍콩 커피 브랜드 Noc의 그라함 스트리트 매장. 홍콩 특유의 언덕길 골목에 다소곳히 자리잡아 잘못하면 지나치기 쉽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최근 뜨는 로컬 커피 Noc, 컨템포러리 차이니즈 다이닝 셰

홍콩에는 예쁜 인테리어와 맛있는 커피를 자랑하는 카페들이 무수히 많다. 그라함 스트리트에 있는 Noc도 요즘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부쩍 유명세가 높아진 로컬 브랜드다. 2011년 그랜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라테 아트 부문을 우승한 두 사람이 세웠는데, 홍콩 시내에만 7개의 매장이 있다. 해외진출도 준비해 중국 상하이와 서울에도 매장을 곧 열 예정이다.

그라함 스트리트 매장은 Noc가 가장 먼저 문을 연 1호점이다. 차찬탱 란퐁유엔이 있는 언덕길 골목 다음 블록인데, 간판이 작고 단순해 지나치기 쉽다. 야외석 포함해 10석을 조금 넘는 조그만 매장이다. 별다른 장식없이 심플하게 꾸민 내부가 오히려 편안함을 준다. 커피와 함께 아보카도 토스트도 인기가 높다.

센트럴 IFC몰에 있는 컨템포러리 차이니즈 다이닝 레스토랑 셰의 딤섬.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센트럴 IFC몰 3층의 셰(SHE)는 미식 격전지 홍콩에서 빠르게 입지를 굳힌 레스토랑이다. 이곳은 컨템포러리 차이니즈 다이닝을 추구하는데, 딤섬부터 버섯스프까지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요리들이 재기발랄하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고 하지만, 음식의 맛은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무난한 수준이어서 도전해볼 만하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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