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면허 의료 처벌걱정 끝”… 족쇄 풀린 119 보름새 57명 구조했다

조건희 기자 , 이화영 인턴기자 중앙대 사회복지·심리학과 졸업

입력 2019-07-17 03:00 수정 2019-07-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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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처치 7종 늘린 ‘특별구급대’ 이달부터 시범 도입 호평

11일 오전 10시경 서울 성북구 삼선동의 한 건물에서 도배 작업을 하던 A 씨(51)가 가슴을 움켜쥔 채 주저앉았다. 119구급대원이 신고를 받은 지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으로는 급성 심근경색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지난달까지 이런 환자는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옮기는 게 최선이었다. 만약 처음 간 병원에 심장혈관을 넓혀줄 의료진과 장비가 없으면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느라 골든타임을 허비해야 했다.

하지만 A 씨의 경우는 달랐다. 구급대원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환자의 몸에 12개의 전극을 붙이고 심전도를 측정했다. 본래 응급구조사인 구급대원이 이런 ‘12유도’ 심전도 측정을 하는 건 불법이지만, 다행히 A 씨를 구하러 달려간 것은 이달 1일부터 심전도 측정이 시범적으로 허용된 ‘특별구급대’였다. 서울종합방재센터 상황실에서 대기 중이던 의사는 영상전화로 A 씨의 심전도 결과를 판독하고 구급대에 “심근경색이 의심된다”고 알렸다. A 씨는 곧장 심장혈관 확장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소방청은 이달 1일부터 서울 내 소방서 24곳에서 특별구급대를 1개씩 시범운영한 결과 15일까지 보름간 총 117차례 출동해 57명의 환자에게 기존엔 불가능했던 응급처치를 할 수 있었다고 16일 밝혔다. 이 중 급성 심근경색 환자는 28명이었고 심정지 환자는 24명, 급성 알레르기 반응(아나필락시스)으로 쇼크를 일으킨 환자는 5명이었다. 모두 경각을 다투는 환자였다.

응급구조사인 일반 119구급대원은 현행 응급의료법상 인공호흡과 수액 투여 등 14가지의 응급처치만 할 수 있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런 불합리한 규제에 대한 지적(본보 지난해 11월 19일자 A1면)이 이어지자 정부가 구급대원의 업무 범위에 △12유도 심전도 측정 △탯줄 절단 △에피네프린(심정지 및 쇼크 치료제) 투약 △아세트아미노펜(진통제) 투약 등 7가지를 추가하기로 하고 시범사업에 나선 것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15일 강북소방서 특별구급대의 출동 현장에 동행했을 때도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오후 4시 50분경 미아동의 한 요양원에 입원해 있던 80대 노인의 심장이 멎은 것. 현장에 도착한 특별구급대 소속 한수명 소방교(30)가 심정지 치료제 투약을 준비하는 데에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일반 구급대원이었다면 에피네프린을 투약할 수 없어 환자를 병원으로 옮기느라 또다시 시간을 지체했을 상황이었다.

구급대원들은 “드디어 처벌될까 마음 졸이지 않고 환자를 살릴 수 있게 됐다”며 반겼다. 강북소방서 나정 소방사(37·여)는 “지난해 아나필락시스 쇼크에 빠져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여성 환자가 발생했을 땐 병원으로 옮기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이젠 곧장 치료제를 투약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소방청은 현재 24개에 불과한 특별구급대가 보름 만에 이 같은 실적을 낸 것에 비춰 강화된 응급처치 권한을 전국 구급대 1444개로 확대하면 응급환자의 예방가능 사망률(응급 사망자 중 적정 진료를 받았을 경우 생존할 것으로 판단되는 비율)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응급의학계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 대책이 여전히 법령에 열거된 응급처치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규제이기 때문에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구급 현장과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부정맥 환자에게 심장충격기에 버금가는 효과를 주는 치료제 아미오다론은 여전히 구급대원의 투약이 금지돼 있다. 김건남 병원응급구조사회장은 “이번 대책은 119구급대가 아닌 일반 병원에서 근무하는 응급구조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반쪽짜리’ 규제 완화”라고 꼬집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이화영 인턴기자 중앙대 사회복지·심리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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