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보복, 삼성 해결 능력 있다…믿고 판 깔아줘야”

뉴스1

입력 2019-07-15 07:06 수정 2019-07-15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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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섭 동진쎄미켐 회장이 11일 서울 상암동 동진쎄미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일본의 반도체 재료 수출 규제 이후 주목받는 한 중견기업이 있다. 언론에 매일 등장하는 건 물론이고, 주가도 훌쩍 뛰어 보름 만에 50% 가까이 상승했다. 지난 12일에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 등이 총출동해 이 회사 공장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기도 했다. 현재 산업계에서 가진 무게감은 평범한 중견기업이 아니다.

반도체 재료 사업을 하는 중견기업 동진쎄미켐은 감광재로도 불리는 ‘포토레지스트(photoresist)’를 생산한다. 최근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으로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밝힌 품목 3개 중 하나다.

업계에선 3개 규제 대상 중 포토레지스트가 가장 민감하다고 본다. 나머지 두 품목인 고순도 불화수소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지만, 일본 기업이 세계 시장의 90%를 점유하는 포토레지스트는 마땅한 조달처가 없어서다. 아직 일본 제품의 수준을 100% 따라잡진 못했지만, 포토레지스트 생산 능력이 있는 국내의 몇 안 되는 기업이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부섭 동진쎄미켐 회장(82)은 국내 반도체 산업이 활성화되기 전인 1980년대부터 이 분야에 투자해 국산화를 이끈 인물이다.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세계 화학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과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노벨화학상 수상자 등 세계적인 과학자 46명만 받은 학위다.

지난 11일 뉴스1과 만난 이 회장은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정치적 문제로 촉발된 사안이기에 곧바로 문제가 풀리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외교적으로 합의된 과거사를 한국이 건드린 것이기에 반격에 나섰다는 이야기다. 이 경우 국내 여론을 살펴야 하는 일본 정부는 수출 규제를 쉽게 풀 수 없다.

하지만 결국 화(禍)를 키운 건 한국이라고 본다. 이 회장은 “저희 같은 조그만 회사도 원료 수입은 다원화하고 있다”며 “아무리 일본 부품이 좋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팔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다른 거래처를 확보하든 자체 개발을 하든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혼란은 과거에 이런 리스크에 대비하지 못한 결과인 셈이다.

다만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선 긍정적인 견해를 내놨다. 현재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는 한국 기업들이 자사의 생명이 달린 문제에 그냥 손 놓고 있진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이 회장은 “지금 상황보다 더 어려운 일도 과거에 지나왔다”며 “한국에는 핵심 기술을 국산화할 수 있는 능력과 시장이 다 있다”고 설명했다.

이부섭 동진쎄미켐 회장. © News1
이 회장은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가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믿고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삼성이 그렇게 만만한 회사는 아니다”라며 “알아서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은 필요하지만, 결국은 민간 기업의 투자로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회장은 “정부는 삼성이 원하는 걸 들어주면 된다”며 “자유롭게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생산업체와의 부품을 생산하는 중견기업의 협력에 대한 조언도 내놨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기업인 간담회에서 “부품·소재를 국산화하는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더욱 확대해 달라”며 대기업의 협력을 당부했다. 일각에선 부품을 공급받는 대기업이 그동안 협력사의 육성에 소극적이고 투자에 인색해 핵심 부품의 국산화율이 오르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회사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범위 내에서 활동하기에 정부가 (대기업의 협력에 대해) 일일이 관여하기가 힘들 것”이라며 “서로 주고받는 게 비등해야 협력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부품의 국산화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하려면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대기업 측 구매 부문에서) 부품의 국산화를 정책적으로 이어가야 호혜적 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인 대책은 화학분야 인재 양성 등이라고 강조했다. 공대 대신 의대에 이공계 인재가 몰리는 지금 상황에선 정부 지원과 기업의 투자가 이어지더라도 화학분야의 기초 체력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지금까지 8명의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한국은 하나도 없다. 이번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에 대한 정부 대응이 산업적 측면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기초 과학분야의 지원 방안도 그만큼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요청이다.

이와 관련해 이 회장은 최근 국방부가 이공계 전문연구요원(병역특례제도)의 정원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를 언급하며 “치명적인 정책”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는 “현재 우리 회사 중역의 상당수는 병역특례 출신으로 입사해 박사 학위까지 받은 사람들”이라며 “아무리 정부 지원이 있어도 그걸 실행할 인재가 없다면 우리 반도체 산업에 희망은 없다”고 말했다.


▲이부섭 동진쎄미켐 회장
Δ1956년 경기고 졸업
Δ1960년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 학사
Δ1962년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 석사
Δ1967년 동진쎄미켐 설립
Δ1998년 제31회 과학의 날 대통령상 기술상 수상
Δ1999년 제3회 한국공학기술상 수상
Δ2002년 한국공업화학회 회장
Δ2006년 산업자원부 ‘금탑산업훈장’ 수훈
Δ2009년 한국엔지니어클럽 회장
Δ2012년 한국벤처창업대전 대통령 표창
Δ2014년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회장
Δ2019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과대학 명예박사 학위 수위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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