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성과 아닌 미래비전 보여야 투자”

변종국 기자

입력 2019-07-12 03:00 수정 2019-07-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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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서 20년간 벤처투자 최정윤 포레스트벤처 대표

최정윤 미국 포레스트벤처 대표는 “한국 자동차 업체들이 업계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10년 뒤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는 한국 스타트업은 마치 월급쟁이처럼 6∼7년째 스타트업만 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에서는 3∼4년 안에 성과를 내고 엑시트(exit·투자회수)를 하지 못하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목숨 걸고 일한다.”

최근 만난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국계 투자자인 최정윤 포레스트벤처 대표(50)는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했다. 올초 한국 정부는 ‘제2의 벤처붐’을 내걸고 2022년까지 벤처기업에 12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투자가 자칫 실패를 피해가는 방식으로 한국의 스타트업계를 잘못 길들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대표는 미 실리콘밸리에서 20여 년간 벤처캐피털(VC) 업계에서 활동한 스타트업 투자 전문가다. 1990년대 후반부터 투자 업무를 해온 최 대표는 삼성전자의 벤처투자회사인 삼성벤처투자의 미국법인(삼성벤처스 아메리카)과 반도체와 자동차, 모바일 분야의 솔루션 업체인 맥심인터그레이티드, 중국 상하이모터스그룹 등에서 투자 업무를 맡으면서 수십 개의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해 왔다.

지난해 가을 한국의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실리콘밸리 진출도 돕기 위해 VC 업체인 ‘포레스트벤처’를 창업했다. 올해 초 한국에 들어와 미래차 등의 모빌리티 분야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다녔지만 미국과는 다른 한국의 창업자들과 투자 환경에 충격을 받았다.

최 대표는 “오토바이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스타트업에 갔더니 계속 매출이 얼마라는 걸 이야기했다. 비전을 보여 달라고 하니 ‘수익을 보여줘야 투자를 받는 것 아니냐’고 오히려 창업자가 반문하더라”고 말했다. 한국 스타트업이 투자자에게 장기적인 비전을 설득하기보다 투자해도 손해나지 않는 걸 설득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투자자들은 ‘하고 싶은 걸 해봐’라고 말한다면 한국 투자자들은 ‘대박 나면 좋은데 실패는 하지 마’라는 생각이 강하다 보니 스타트업들도 이런 생각에 길들여져 있다는 게 최 대표의 분석이다.

최 대표는 특히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이 사실상 ‘될성부른 나무’를 키운다고 강조했다. 당장의 성과가 없더라도 대학생 때부터 인재를 발굴하고 이들의 성장을 과감히 돕는다는 것이다. 그는 2016년에 미국 GM이 인수한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크루즈’를 사례로 들었다.

최 대표는 “크루즈에 처음 갔을 때 자동차 2대에 직원 5명이 전부였다. 테이블도 없어 서서 미팅을 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최 대표가 속해 있던 중국계 투자회사의 결정권자는 “성과를 낼 수 있느냐”며 머뭇거렸다. 결국 6개월 뒤 GM이 크루즈를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에 인수하면서 당초 최 대표 측이 평가한 것보다 100배가 뛰었다.

그는 현재 실리콘밸리에 투자처를 찾고 있는 한국 기업들도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한국 대기업들은 미국의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투자 협상을 하면서 여전히 본인들이 ‘갑’이라고 생각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자들이 갑이라는 미국의 투자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여기에 실리콘밸리에는 미국 백인 중심의 투자 이너서클 사이에 역량 있는 스타트업에 대한 정보와 투자 트렌드 등이 공유되고 있다. 정기모임과 파티 등을 통해 정보를 나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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