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현장 비운 감리자’ 철거업체 추천받아 선정했다

구특교 기자 , 윤다빈 기자 , 박종민 인턴기자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입력 2019-07-09 03:00:00 수정 2019-07-09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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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원동 붕괴 건물’ 철거업체, 건축사무소 요청따라 지인 소개
“4층이상 공사 감리 맡은건 처음”
철거업체가 계획안대로 안해도 감리자가 지적하기 어려운 상황
전문가 “구청이 직접 선정해야”


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잠원동 철거 건물’ 붕괴사고 당시 감리(監理)자가 공사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감리자를 철거업체가 직접 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잠원동 철거건물 감리를 맡은 업체는 4층 이상 높이 건물에 대한 감리가 이번이 처음이었던 사실도 확인됐다.

8일 서울 서초경찰서와 잠원동 건물 철거업체 등에 따르면 공사 감리자 정모 씨(87)는 철거업체 관계자 A 씨의 부탁을 받고 감리 업무를 맡았다. 정 씨와 A 씨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건물주 임모 씨(59)는 계약 관계를 포함해 철거 과정 전반에 관한 사항을 B건축사무소에 맡겼다. B사무소는 철거업체를 선정했고, 철거업체에 감리자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 B사무소의 부탁을 받은 철거업체는 정 씨를 추천했다. 감리자 선임비용은 350만 원이었다. A 씨는 본보에 “B사무소 측에서 감리자를 추천해 달라고 해 지인인 정 씨를 추천했다”고 밝혔다. 정 씨는 “지인(A 씨)이 한 번만 감리를 맡아 달라고 부탁해 일당도 안 나오는 돈 350만 원을 받고 일했다. 아는 사람이니까 하는 수 없이 맡아줬다”고 말했다.

정 씨가 대표로 있는 감리업체는 4층 이상 건물 공사에 대한 감리를 맡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철거업체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감리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감리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주로 2층짜리 작은 건물들 위주로 업무를 한다. 4, 5층 건물은 이번이 처음이다. (감리를) 안 했으면 했는데 (철거업체가) 알아서 다 한다고 해서 맡았는데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건물을 철거할 때 감리자 선정은 건물주가 결정한다. 하지만 건물주가 감리 분야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현장을 잘 아는 철거업체가 추천하는 감리자를 선정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철거업체가 안전 준수 의무 등을 담아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한 철거계획대로 공사가 진행되지 않더라도 감리자가 이 문제를 지적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잠원동 붕괴 건물 합동감식에 참여한 안형준 공학박사는 “감리자가 철거과정을 냉정하게 관리하고 감독해야 하는데 자기한테 일을 준 사람이 아는 사람이면 제대로 지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건축업계 전문가들은 감리자가 독립적인 지위를 보장받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울시건축사회 차재엽 팀장은 “건축주와 철거업체 등 관계자와 감리자가 이해관계 속에 엮여 있다면 관행적인 위법 행위 등을 지적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시·구청 등 허가권자가 감리자를 직접 지정하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10일 서초구 건축과장 등 구 관계자들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다. 경찰은 구의 철거공사 승인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확인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서초구가 철거업체의 허가 조건 미이행 사실을 알면서도 방관한 정황에 대해서도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특교 kootg@donga.com·윤다빈 기자·박종민 인턴기자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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