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이스트는 新직업, 문신시술은 불법이라니

이소연 기자 , 김재희 기자

입력 2019-07-06 03:00 수정 2019-07-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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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기웃거려본 타투숍, 전국 2만여명 활동 중이지만…
네일숍-미용실로 위장해 시술, 영업장 옮겨가며 불시단속 피해
美는 정부서 관리 日은 무죄판결… 국내선 의료행위로 규정해 단속


오후 1시 50분경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 이곳의 한 건물 입구에 입간판이 있었다. 입간판에는 입술 반영구 문신을 하기 전과 후를 비교하는 사진과 함께 문신 시술별 가격대가 쓰여 있었다. 기자는 이 건물 5층에 있는 문신숍으로 올라가봤다. “오늘 문신 시술을 받을 수 있나요?” 직원에게 물었다. “오늘은 안 된다”고 했다. 직원은 달력을 보더니 “내일(5일) 오후 7∼8시가 유일하게 비어 있고 그 뒤로는 9일까지 예약이 다 찼다”고 말했다. “8일에는 중국인 여행객 3명이 예약돼 있다”고도 했다. 가게 내 한 방에서는 손님이 문신 시술을 받고 있었다. 대기실에선 예약 손님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가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문신숍이 또 있었다. 여기도 들어가 봤다. 한 여성 손님이 문신 시술을 받기 위해 간이침대에 앉아 있었다. 가게 주인은 “인터넷에 따로 광고를 하지 않는데도 지나다가 들르는 손님만 하루에 10명 정도 된다. 지금 와 있는 손님도 예약 없이 찾아온 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주인은 손님이 기다리는 간이침대 쪽으로 향했다.


○ 의사 외 문신 시술은 불법

기자가 찾아갔던 두 가게 주인들(문신사)의 영리목적 문신 시술은 불법이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문신 시술이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례를 유지하고 있다. 수사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비의료인들의 문신 시술을 단속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문신사들은 불안감 속에 영업하고 있다. 언제 단속에 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서울 구로구에서 17년간 반영구 문신 시술을 해 온 김모 씨(51·여)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1년마다 가게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 한자리에서 오래 영업하는 문신사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에서 반영구 문신 시술을 하는 양모 씨(31·여)는 올해 1월 손님에게 돈을 뜯겼다. 시술을 다 받은 손님이 계산할 때가 되자 갑자기 돌변해 돈을 주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했다. 손님은 “신고당하면 벌금 물고 가게 문도 닫아야 한다”며 겁을 줬다. 결국 양 씨는 300만 원을 건넸다. 양 씨는 손님을 공갈범으로 신고할 수도 없었다. 신고를 하면 자신의 불법 문신 시술도 단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속을 피하려고 포털사이트에 엉뚱한 주소를 올려놓는 곳도 있다. 4일 기자는 포털사이트에 등록돼 있는 주소를 보고 서울 강남의 한 타투숍을 찾아갔다. 그런데 해당 주소지에는 타투숍이 없었다. 가게로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곧바로 ‘○○건물이 보이면 다시 전화하세요’라는 문자와 함께 약도 한 장을 보내줬다. 약도에 나와 있는 ○○건물 앞에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타투숍 주인은 “거기서 좀 더 직진하면 나오는 △△건물 지하 1층으로 오세요”라고 안내했다.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 병원에서 시술하는 문신사도 있다. 병원이 고용한 이들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문신 시술을 하더라도 의사가 아닌 문신사의 시술은 불법이다. 지난해 중반부터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성형외과에서 일하고 있는 문신사 박모 씨(38·여)는 “의대까지 나와서 주사 놓고 수술하는 사람들이 뭐 하러 손기술 익혀서 문신 시술을 하겠느냐”며 “강남에 있는 성형외과에서 반영구 문신 시술을 하는 건 거의 100% 문신사가 하는 걸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 배우고 가르치는 건 합법

의사가 아닌 사람이 문신 시술을 하는 건 불법이지만 문신 시술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미용학원에서는 네일, 헤어, 메이크업 관련 수업뿐 아니라 문신 시술 관련 수업을 함께 진행하는 곳도 많다. 고용노동부가 2015년 발표한 ‘신직업 추진 현황 및 육성계획’을 보면 17개 신직업 중에는 ‘타투이스트(문신사)’가 포함되기도 했다.

대구의 한 미용학원에서는 한 달에 20명이 넘는 수강생이 ‘반영구 문신술’ 수업을 듣는다. 이 학원 운영자는 “의사가 아니어도 문신 시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건 합법이고 시술은 불법이라 수강생들에게 편법을 알려줄 수밖에 없다”며 “메이크업 자격증을 따서 가게를 차려 미용업으로 신고한 뒤 ‘숍인숍(Shop In Shop·매장 안에 매장을 여는 것)’ 형태로 반영구 문신 시술 영업을 하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하자 ‘문신사법’을 만들어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도 합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달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문신사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대한문신사중앙회 회원 등 500여 명이 집회에 참가했다. 문신사중앙회 경기성남지회 이향민 위원은 “단속과 신고 때문에 하루하루 가슴 졸이며 일하는 문신사가 전국에 2만 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 영국 미국 등은 자격·면허제

해외에서는 의사가 아니어도 위생이나 안전, 감염 관련 교육을 받으면 문신사 자격을 주고 이들의 시술행위를 합법화한 나라들이 있다.

영국은 정부가 정한 위생·안전 관련 교육과정을 거치면 문신사 자격을 준다. 미국도 일부 주에서는 위생교육과 혈액매개 감염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 문신시술 면허를 발급해준다. 미국에서는 뉴욕시가 1997년에 처음으로 유효기간 2년짜리의 타투 면허증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처럼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불법으로 봐왔던 일본에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오사카 고등법원은 지난해 5월 의사 면허증 없이 문신 시술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문신사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18, 19대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김춘진 의원이 문신사 면허와 교육, 위생관리 의무 등을 담은 문신사법을 대표 발의했지만 입법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의사들은 시술 과정에서의 감염 우려 등을 이유로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측은 “문신 시술은 피부 손상을 유발할 수 있고 감염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비의료인의 시술은 위험하다”며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인데 비의료인인 문신사에게 국가자격증까지 주면서 이들의 시술을 합법화하는 것은 우려스럽고 위험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소연 always99@donga.com·김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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