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잠원동 붕괴건물 ‘人災’… 꼭 설치해야 할 지지대, 계획서와 달리 없었다

구특교 기자 , 박상준 기자 , 홍석호 기자

입력 2019-07-06 03:00 수정 2020-05-0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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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20대 여성을 숨지게 한 4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철거 건물 붕괴’ 사고는 잭서포트(지지대)를 설치하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잭서포트는 건물을 철거할 때 하중이 한쪽으로 쏠려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각 층 사이에 설치하는 버팀목이다.

서초구의 의뢰를 받아 사고 현장을 검증한 건축·토목시공업체 A사는 “철거가 진행 중이던 건물에 설치됐어야 하는 잭서포트가 하나도 없었던 게 붕괴의 주원인으로 보인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5일 서초구에 제출했다. A사는 사고가 난 4일 오후부터 5일 낮까지 건물 붕괴 현장을 점검한 뒤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5일 오후 진행된 경찰과 소방, 한국전기안전공사 등 관계기관의 합동 감식에 참여한 전문가들도 잭서포트 미설치가 붕괴의 주원인이라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문가는 “이번 정도의 붕괴면 건물이 무너질 때 잭서포트가 여기저기로 튀었을 텐데 붕괴 당시 상황이 찍힌 동영상에서 그런 장면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철거업체는 공사 시작에 앞서 ‘잭서포트를 설치하고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철거공사 계획서를 서초구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초구는 건축주, 시공업체, 감리업체를 건축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 철거업체 계획서엔 “각층에 잭서포트 10개 설치” ▼

잠원동 철거건물 붕괴 ‘人災’
구청에 이행계획 제출하고 미설치, 구청은 확인도 않고 공사허가 승인
각층 계단 한꺼번에 없앤 것도 문제… 서초구 “건물주-시공업체 고발”


한 건설현장에 설치된 잭서포트(철제 지지대)의 모습. 철거 현장에도 건물 붕괴를 막기 위해 잭서포트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시공업체 홈페이지 캡처
“잭서포트만 제대로 설치돼 있었어도 이번처럼 건물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철거 건물 붕괴’ 사고 현장 감식에 참여한 안형준 공학박사는 “건물 내부에 잭서포트가 전혀 설치돼 있지 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안 박사뿐 아니라 이날 현장 감식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이번 붕괴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잭서포트를 설치하지 않은 것’을 꼽았다. 철거 과정을 전반적으로 관리한 건축기술사도 “지지 부분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일 크다”며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잭서포트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철거 공사에서 잭서포트 설치는 기본에 속하는 사항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2017년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낙원동 공사 현장 붕괴도 안전기준에 턱없이 모자라게 설치된 잭서포트가 사고 원인이었다.

붕괴건물 합동 감식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철거 건물 붕괴’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한국전기안전공사 등 관계기관이 합동 감식을 했다. 전날 오후 2시 23분경 철거 작업을 하던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건물이 차로 쪽으로 붕괴되면서 신호대기 중이던 차량 4대를 덮쳐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붕괴된 잠원동 건물 철거업체는 잭서포트를 설치하고 철거공사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서를 서초구에 제출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본보가 입수한 ‘서초구 잠원동 철거공사 철거심의’ 계획서에 따르면 철거업체는 ‘건물 천장과 바닥 사이에 건물을 지탱하는 잭서포트를 설치하겠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지난달 서초구는 16가지 보완 사항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철거공사를 허락했다. 철거업체가 서초구에 제출한 계획서는 보완을 요청한 16가지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겠다는 계획을 담은 것이다. 철거업체는 앞서 5월에 철거계획서를 서초구에 제출했다가 한 차례 반려된 적이 있다.

서초구는 16가지 보완 사항 중 하나로 ‘철거공사장 상부 과하중을 고려해 동바리(기둥 밑에 움직임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하는 받침대)를 설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한 조치 사항으로 철거업체 측은 ‘잭서포트를 설치하겠다’고 명시했다. 또 ‘계획서에 작성한 잭서포트 배치도에 따라 모두 설치하겠다’며 10쪽에 걸쳐 잭서포트 설치 작업 과정 등을 상세하게 적었다. 철거업체는 각 층에 10개의 잭서포트를 설치하는 것으로 계획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서와 달리 철거업체는 잭서포트를 설치하지 않고 공사를 진행했다.

이처럼 철거업체가 계획서대로 철거를 진행하지 않았는데도 서초구는 계획서 내용만 보고 공사 허가를 승인한 것이다. 서초구 관계자는 “철거공사라는 게 사실 특별한 관리 기준이 없는 신고제라 보강사항 이행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서초구의 의뢰를 받아 붕괴 사고 현장을 검증하고 보고서를 제출한 건축·토목시공업체 A사는 또 건물의 뼈대나 마찬가지인 각 층 계단을 한꺼번에 싹둑 잘라내 버린 것도 건물 붕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철거공사를 할 때는 위층부터 아래로 철거해 나가면서 철거하는 층의 계단을 그때그때 없애야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건물 계단을 한꺼번에 다 없앴다는 것이다. 건물이 차로 쪽으로 무너진 데 대해 전문가들은 붕괴된 방향 반대편에 쌓여 있던 철거 잔재물들이 건물을 받치는 지지대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4일 발생한 잠원동 ‘철거 건물 붕괴’ 사고로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구특교 kootg@donga.com·박상준·홍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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