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원 과태료의 힘? 한강공원 ‘밀실텐트’ 사라져

홍석호 기자

입력 2019-07-02 03:00 수정 2019-07-0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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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불법텐트 단속 두달
텐트 65개중 2개만 규정 위반, 허용구역 외 설치는 한건도 없어
이용자들 오후7시 되자 일제히 정리… 일부 민망한 애정행각은 여전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 설치된 텐트. 텐트 양쪽 입구를 개방했다. 서울시는 4월 한강공원 청소 개선 대책을 발표하며 그늘막 텐트 설치 허용 구간, 텐트 4개 면 중 2개 면 이상 개방, 설치 시간 지정 등을 규정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지난달 30일 오후 6시 반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공원은 휴일을 맞아 더위를 피해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공원 곳곳에는 직사광선을 피해 쉴 수 있는 그늘막 텐트가 65개에 달했다. 63개 텐트가 출입구 2개 면 이상을 개방했다. 다만 모두 설치 허용구역에만 쳐져 있었다. 10분 정도 지나자 텐트 안에서 쉬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왔다. 이들은 텐트 핀을 뽑은 뒤 정리하기 시작했다. 각종 음식물 쓰레기도 미리 준비한 비닐봉지에 담았다. 이날 오후 7시 10분경에는 수십 동에 달하던 텐트가 사라졌다. 오은주 씨(24·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밤늦도록 텐트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당국이 단속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며 “공원에 자주 나오는데, 오후 6시 반 정도엔 텐트를 접는다”고 말했다.

고성방가, 쓰레기 방치 등으로 이웃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던 한강공원이 달라졌다. 서울시가 4월 한강공원 청소 개선 대책을 발표하며 그늘막 텐트 설치 허용 구간을 지정했다. 아무 데나 텐트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막는 조치다. 외부에서 들여다볼 수 있도록 텐트 4개 면 중 2개 면 이상은 개방하도록 했다. 안에서 과도한 애정행각이 벌어진다는 지적이 많아 생겨난 규정이다. 텐트를 설치할 수 있는 시간대도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로 제한했다. 밤늦도록 고성방가와 음주가무를 못 하게 차단한 것이다. 이를 어기면 관련법에 따라 과태료 100만 원을 내야 한다. 시는 한강공원 입주업체를 대상으로 규격봉투 실명제를 실시하고 전단 무단배포를 금지했다. 단속반도 투입했다. 4월부터 237명이 11개 한강공원을 하루 4∼8차례 찾는다.

시의 조치는 불과 2개월여 만에 상당 부분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이날 여의도 한강공원에선 단속반이 보이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텐트를 정리하는 모습이 다수였다. 비슷한 시간 반포 한강공원 등 다른 공원에서도 늦은 시간까지 남은 텐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악취를 내뿜었던 쓰레기 더미도 발견하기 힘들었다. 사람들은 텐트를 접은 뒤 쓰레기를 챙겨 공원 곳곳에 마련된 분리수거장에 버렸다.

과거 배달업체들이 난립하며 무분별하게 배포됐던 배달음식 광고 전단도 보이지 않았다. 게시판 외에는 광고 전단을 보기 어려웠다. 단속 2개월 만에 성숙한 시민문화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한강공원 이용자는 2008년 4000만 명에서 2017년 7500만 명으로 약 10년 만에 두 배 가깝게 늘었다. 과거 한강공원에는 텐트 설치를 금지했으나 2013년 4월 ‘한강에서 태양을 피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민원이 이어지면서 이용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허가했다. 그 대신 텐트 설치에 따른 문제점이 누적되자 시가 해법을 마련한 것이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아직까지 과태료 처분을 받은 사례는 없다”며 “대다수 시민이 달라진 규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한강공원을 이용하는 문화 자체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물론 시의 조치와 새로운 이용 규정만으로 한강공원이 남녀노소가 즐기는 쾌적한 공간으로 되돌아온 것은 아니다. 텐트 2개 면은 개방됐지만 여전히 외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낯 뜨거운 애정행각을 보이는 사람도 많았다. 이날 7세 아들과 함께 공원을 찾은 이모 씨(37)는 “아들과 배드민턴을 치다 셔틀콕이 날아간 방향으로 가봤더니 텐트 안에서 남녀가 진한 스킨십을 하고 있었다”며 “아들을 급하게 불러 다른 방향을 보게 했다”고 말했다. 한강공원이 쾌적한 휴식공간으로 바뀌려면 성숙한 시민의식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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