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반도체 인해전술’ 펼치는 中… 한국은 수도권大 정원규제 족쇄

황태호 기자 , 허동준 기자 , 조유라 기자

입력 2019-06-28 03:00:00 수정 2019-06-28 05:28:07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한국 추격하는 中 ‘반도체 굴기’]中, 대학 손잡고 반도체 인재 육성




반도체 인재 대규모 육성에 나선 중국을 두고 한국 반도체 업계에선 “중국의 ‘진짜 추격’이 시작됐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중국은 해외 유학생 등 자국 인재를 데려오거나 한국과 미국, 일본 기업의 우수 인력을 높은 연봉을 주고 스카우트하는 방식으로 반도체산업 노하우를 쌓아 왔다. 하지만 이제는 1년에 최대 8000여 명의 반도체 인재를 자국에서 직접 키우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반도체 인재 부족에 시달리고 있지만 인재 육성 통로는 꽉 막혀 있다. 수도권 내 대학들은 사회적 필요에 따라 입학 정원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길이 법으로 봉쇄돼 있어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특정 학과의 정원을 늘리면 다른 학과 정원이 줄기 때문에 학과 이기주의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차세대 먹거리로 키우려는 시스템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정원외로 선발하는 반도체 계약학과도 추진하지만 이마저도 일부 대학에서는 반발이 심하다. 정부와 산업계의 의지는 크지만 종합적인 해결책을 못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 중국, “내년 필요 인력 72만 명…직접 키우겠다”


중국의 정보통신 및 전기전자산업 관련 부처인 공업정보화부가 올해 초 발표한 ‘중국 반도체 산업인재백서’에 따르면 중국의 내년 반도체 관련 인재 수요는 72만 명이지만 현재 보유한 인력은 40만 명이다. 중국 정부와 대학들은 ‘국가 반도체산업·교육 통합 혁신 플랫폼’을 통해 부족한 30만 명을 직접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한국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고급 인력뿐만 아니라 제조기술자까지 포함한 수치겠지만, 규모 자체가 어마어마하다”며 “자국 기업을 그 정도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중국반도체산업협회와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베이징대, 칭화대, 푸단대, 샤먼대 등 4개 대학의 인재 배출 목표는 각각 연간 1000∼2000명이다. 푸단대는 4억7000만 위안(약 799억 원)을 투자해 매년 2000명의 반도체 고급 인력을 배출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중국 최고 명문대로 꼽히는 베이징대도 3억 위안(약 510억 원)을 투자해 연간 1000명 이상을 배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길러진 인재는 중국 반도체 기업의 연구개발(R&D)과 제조공정 전문 인력으로 채용된다. 중국 당국은 화웨이의 자회사인 하이실리콘 등 시스템반도체 기업뿐만 아니라 양쯔메모리(YMTC) 등 메모리반도체 기업도 적극 육성 중이다. 특히 한국이 2030년까지 1등으로 육성하겠다고 선언한 시스템반도체는 중국이 13%의 점유율로 미국(68%)과 대만(16%)에 이어 세계 3위 대국이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인력 빼가기에 대해 한국과 미국의 경계심이 높아진 데다 최근 미국과의 무역 분쟁까지 겹치면서 중국 내에서 ‘반도체 독립’의 필요성이 높아졌다”며 “대규모 인재 양성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 한국, 대학 무관심에 수도권 규제 겹쳐


한국 정부도 반도체 인재 확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특히 시스템반도체 분야는 창의적인 R&D, 설계 인재 확보가 시급하다. 올해 4월 정부가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2030년까지 전문인력 1만7000명을 양성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순탄치 않다. 주요 대학들에 반도체 계약학과 개설을 추진한다고 발표하자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및 국립대학들이 “왜 수도권 학교에만 관련 학과를 만드느냐”며 반발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KAIST 등 4개로 추렸지만 이번에는 서울대가 학내 반대 여론을 못 이겨 백지화를 선언했고, KAIST 역시 타 학과의 반발에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반도체 인력 육성에 나서기도 어렵다. 수도권 소재 대학은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정원을 마음대로 늘릴 수 없다. 대학 내 다른 학과의 정원을 가져올 수밖에 없어 학내의 반발이 극심하다. 대학원 역시 반도체 전문 교수를 확충하면 전공자를 늘릴 수 있지만, 대학의 핵심 성과지표인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을 쓰기 어렵기 때문에 채용에 소극적이다.

중소 반도체 기업들은 인재 모시기가 더 어렵다. 지난해 매출 500억 원을 낸 한 중소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 사장 김모 씨는 “아는 교수에게 사정해 인재를 소개받거나, 갈등을 무릅쓰고 동종업계에서 인재를 데려오는 수밖에 없다”며 “어떤 형식이든 전공자를 대폭 늘리기 위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도 “국내 대학과 산학협력 방식으로 지원을 하고 해외 인재를 데려오기 위해 연간 수백억 원을 쏟아붓지만 항상 사람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이병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대학들이 사회 수요에 맞게 정원을 조정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과감히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황태호 taeho@donga.com·허동준·조유라 기자

관련기사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