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일웅 수사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고선 종교의 미래는 없습니다”

조종엽 기자

입력 2019-06-17 03:00:00 수정 2019-06-17 03:00: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聖 프란치스코-술탄 알 카밀 만남 800주년 기념행사 준비 석일웅 수사

가톨릭 수사가 불교를 접해 보라고 권해도 되는 걸까.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인 석일웅 수사를 13일 서울 종로구 성 안토니오 수도원에서 만났다. 기자가 아직 종교가 없다고 하자 그는 “천주교는 (처음 종교를 접하는 이에게는) 조금 딱딱할 수도 있고, 절이 분위기가 편안하니 한번 다녀보라”며 웃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219년 이집트 카이로 북쪽 항구도시 다미에타는 점령하려는 십자군과 지키려는 이슬람 아이유브 왕조의 병사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나일강이 보호하는 요새 다미에타를 둘러싼 전투는 처절했고, 질병마저 군인과 백성을 집어삼켰다. 휴전 중이던 그해 9월 해진 수도복을 입은 한 가톨릭 수사가 술탄을 만나기 위해 이슬람 진영으로 향한다. 눈에 뜨이자마자 목이 베여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 그러나 술탄은 그 수사를 환대했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의 성지를 순례하고 설교하는 것까지 허락해줬다고 한다. 현실감 없이 들리는 이 일화의 주인공은 성 프란치스코와 살라흐 알 딘의 조카인 술탄 알 카밀이다.》
 
“‘평화의 사람’들끼리 서로를 알아봤던 거지요. 프란치스코 전기에는 그가 무슬림을 회개시키려 했다고 나오지만 사실은 마음속에 이슬람은 적이 아니라 한 하느님을 모시는 형제자매라는 인식이 있었을 거예요. 어떻게 함께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가 그의 진짜 고민이었던 거지요.”

가톨릭 수도회인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의 석일웅 수사(58)는 13일 서울 종로구의 성 안토니오 수도원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성 프란치스코와 술탄의 만남은 이후 가톨릭 역사에 이교도 배척과는 또 다른 유산을 남겼다. 작은형제회는 성 프란치스코와 술탄 알 카밀의 만남 800주년을 기념해 특별강좌와 함께 기념 음악회(9월 중)를 연다. 터키문화원과 공동 학술 세미나를 개최하는 방안도 협의하고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인 석 수사에게 유일신 믿음을 가진 종교가 근본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물었다. 석 수사는 “교리를 갖고 부딪치기 시작하면 내가 옳다는 걸 밝히기 위해서 상대가 틀리다는 걸 증명할 수밖에 없다. 그럼 서로 죽일 일만 남는다”며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고는 종교가 미래를 맞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6년 세계의 각 종교 지도자를 프란치스코회의 고향인 이탈리아 아시시로 초대해서 평화를 위해서 함께 기도한 것 역시 그런 노력의 하나다. 작은형제회는 ‘아시시 정신’을 탐구하기 위해 재속(在俗) 프란치스코회 회원들과 함께 2013년부터 평화, 생태, 영성 등을 주제로 공부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석 수사는 최근 예멘 난민 수용을 두고 일었던 사회적 논란에 대해 “논쟁만 쳇바퀴 돌듯 되풀이될 때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며 “종교가 난민 포용 비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태적 가치를 강조하며 발표한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성 프란치스코가 지은 ‘태양의 찬가’의 후렴구에서 제목을 따왔다. 석 수사는 생태적 영성에도 성 프란치스코가 일찍이 인식의 전환을 이뤘다고 했다. “그는 새와 소통하고, 인간과 늑대가 행복하게 공존할 가능성을 찾기도 하고, 해를 형님으로, 달과 죽음을 자매로 불렀어요. 수직적 관점이 지탱하던 중세에 이미 만인과 만물의 수평적인 관계로의 전환을 인식한 거지요. 사람은 하느님이 창조한 세상을 ‘보시기에 좋은’ 상태로 잘 보존하고 관리할 책임이 있어요.”

석 수사는 성 프란치스코가 강조한 가난은 물질적 가난뿐 아니라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존재론적 반성을 뜻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에 비해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을 누리지만 행복을 모르지요. 경쟁에서 이겨야 비로소 존재의 가치가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받아들여지고요. 그러나 성 프란치스코의 삶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는 사실에 눈을 뜨게 해줍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