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임 플레이어인가, 전장의 병사인가”

조종엽 기자 , 김기윤 기자

입력 2019-06-10 03:00 수정 2019-06-10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컬처 까talk]VR 타고 귀환하는 올드 게임들

게임 ‘모탈 블리츠’의 가상현실 화면에서 우주 괴물을 총으로 조준해 쏘는 장면. 작은 사진은 위치 인식용 장비, VR기구를 착용한 뒤 총을 들고 게임 ‘모탈 블리츠’를 체험하는 모습. 게임 진행 상황에 따라 반경 5m가량을 움직여야 한다. 스코넥엔터테인먼트 제공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이달 5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VR스퀘어’ 홍대점. 이곳을 찾은 기자는 누덕도사의 도술로 평정심을 훈련받는 애니메이션 ‘머털도사’ 속 머털이가 된 느낌이었다. 버려진 우주선 내부는 위험천만했고, 한 발 잘못 디디면 아찔한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참이었다. 끊임없이 출몰하는 우주 괴물 앞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손에 들린 레이저 총뿐.

물론 이성은 평평하고 안전한 ‘VR(가상현실)’ 카페에서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감각은 끊임없이 자신이 전장(戰場)의 외로운 병사라고 인지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게임 속 구출 헬리콥터를 향해 평균대처럼 좁은 다리를 건너다 휘청…. 넘어질 뻔까지 했다. 이 모습을 밖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얼마나 웃었을까.

이날 체험한 건 스코넥엔터테인먼트가 2017년 발매한 건 슈팅 게임 ‘모탈 블리츠 워킹 어트랙션’. 한국과 중국, 일본의 여러 테마파크에 공급돼 있다. ‘워킹 어트랙션’은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공간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행동할 수 있는 VR 콘텐츠를 이른다. 게임장에 설치된 카메라와 손에 낀 장갑의 센서가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감지하면 머리에 착용한 ‘HMD(Head Mounted Display)’가 이를 가상현실 속에 구현한다. 몰입도가 상당하다. 이날 회사 동료들과 단합 대회차 VR스퀘어를 찾은 권승완 씨(48)는 “옛날 오락실 게임과 달리 조마조마할 정도로 사실적이어서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VR 카페는 2년여 전부터 서울 홍익대 인근과 강남역 중심으로 등장하기 시작해 각지로 확산됐다. 갈수록 VR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엔 과거 인기를 모았던 콘텐츠가 VR 게임으로 재탄생하는 사례가 많다. VR가 젊은층뿐만 아니라 윗세대들까지 타깃을 확장하고 있단 뜻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VR 게임으로 꼽히는 ‘비트 세이버’ 역시 과거 ‘펌프’나 ‘DDR’와 같은 리듬 게임의 일종이다. 음악에 맞춰 광선검으로 날아오는 작은 큐브를 쪼개야 한다. 손님 오예린 씨(24)는 “몸을 써서 광선검을 휘두르는 점이 재미”라고 했다. 최근에는 레이싱게임 ‘마리오 카트’가 VR 게임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모탈 블리츠’ 역시 오락실에 있던 1인칭 슈팅(FPS) 게임의 VR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방탈출 VR게임에서 플레이어가 가상현실 속에 등장한 서류 한 장을 집어 들기 위해 손을 뻗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게임 ‘비트 세이버’에서 플레이어가 음악에 따라 날아오는 물체를 가상의 칼로 깨는 장면. 스코넥엔터테인먼트 제공
‘방 탈출 카페’를 VR 버전으로 내놓기도 했다. 이날 체험한 ‘VR 방 탈출’ ‘파라오의 저주’는 2인이 협력해 여러 단서를 활용함으로써 피라미드를 탈출하는 설정이었다. 기존 방 탈출 카페가 정해진 현실 공간에서 실제 물건을 가지고 플레이하는 데 비해, VR 방 탈출은 판타지적 요소가 강해 마치 영화 속 인디아나 존스가 된 듯한 느낌을 줬다.

전용 VR 장비와 고사양의 컴퓨터를 마련하면 집에서 할 수 있는 VR 게임도 있지만, 아직 워킹 어트랙션 같은 장르는 VR 카페, 테마파크에서나 체험할 수 있다. 과거 오락실과 비교하면 플레이에 넓은 공간이 필요하기에 게임 비용이 만만치 않은 건 단점(VR스퀘어 홍대점의 경우 2인 4시간 자유이용권이 8만 원)이다.

이런 VR 카페의 인기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최근 공저한 ‘게임의 이론’(문화과학사)에서 “미국에서 한때 인기를 얻은 게임 ‘세컨드 라이프’처럼 가상공간에서 잠시 허구의 삶을 체험하는 단계를 넘어, 앞으로는 가상현실이 실제 현실이 되는 삶을 가능케 하는 ‘서드(third) 라이프’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사이버 세계’와 우리를 잇는 고리는 대체로 화면과 손가락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VR는 그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음을 알려준다. 기술 고도화로 전면적인 감각이 인간과 가상세계를 연결할 때 인류의 인지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때 ‘바츠 해방 전쟁’(‘리니지2’ 게임 속에서 2004∼2008년 다수의 저레벨 플레이어가 연합해 서버를 장악한 거대 혈맹에 맞선 일)과 같은 사건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게임 연구자 이경혁 씨는 “VR 게임이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밝게만 전망되지는 않는다. 당장은 거추장스럽지 않은 무선 VR 기기의 보급과 최적화된 콘텐츠의 등장이 관건”이라면서도 “게임이 현실로 들어오고, 현실은 게임화하는 경향은 날로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jjj@donga.com·김기윤 기자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