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를 망하게 할 1호 아이디어가 기저귀?”…얼마나 혁신적이길래

뉴스1

입력 2019-06-07 07:07 수정 2019-06-07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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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사내벤처 1호…대디포베베 “서서 입히는 기저귀”
육아하면서 기존 기저귀 단점 발견…직장다니며 특허 출원도


디디포베베 전영석 대표가 28일 경기도 고양시 디디포베베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5.28/뉴스1 © News1

“롯데를 망하게 할 아이디어를 찾아라”

3년 전 롯데홈쇼핑을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전영석 차장은 우연히 모집공고와 마주했다. 그는 모집공고를 봤을 때 ‘이건 내꺼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고 회고했다.

집에서 잠자던 특허증이 마침내 빛을 본 순간이었다. 자본금 3억원이 없어 포기했던 창업의 꿈이 두둥실 떠올랐다. 그는 아기가 서 있는 상태로 기저귀를 채울 수 있도록 ‘홀딩밴드’를 부착한 기저귀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롯데는 ‘롯데를 망하게 할 아이디어’ 1호로 전 차장의 ‘홀딩밴드형 기저귀’를 뽑았다.

지난달 28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사무실에서 전영석 대디포베베 대표이사를 만났다. 그를 포함해 직원 3명이 일하는 단출한 공간이다. 전 대표는 “창사 이래로 가장 많은 손님이 방문한 날”이라며 웃었다.

이곳에서 평범했던 ‘전 차장’이 ‘전 대표’로 변신하게 된 과정과 롯데그룹이 다른 경쟁사가 먼저 실행했을 경우 ‘롯데를 망하게 할 아이디어’로 하필 ‘기저귀’를 택한 이유를 들었다.

◇평범한 ‘아빠’가 ‘기저귀 벤처’를 창립하기까지

결혼한 지 7년 만에 첫째 아이가 태어났다. 늦게 얻은 소중한 아이였다. 아내는 고민 끝에 일을 관두고 엄마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쉽지 않은 삶이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육아에 참여했다.

매일 아이와 ‘기저귀 전쟁’을 했다. 눕혀서 기저귀를 채우려고 하면 아이는 몸을 뒤집거나 일어서려고 한다. 눕혀서 기저귀를 채우는 일은 아이의 ‘목표 행동’을 방해하는 행위였다. 아이의 목표 행동을 방해하지 않고 기저귀를 채우는 방법을 고민하고 전 대표는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며 특허까지 냈다.

특허 출원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자칫 ‘빛나는 아이디어’가 세상으로 나오지 못할 뻔 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분유부터 시작해서 기저귀 가는 것도 많이 도왔다. 어느 순간 기저귀를 가는 게 불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하다보니 새로운 형태에 대한 그림이 그려졌다. 집에 가서 스케치를 했다. 그걸 가지고 다이소에 가서 찍찍이를 사다가 아이 기저귀를 오리고 붙여서 프로토 타입을 만들었다. 아내가 실제로 사용해보고 편하다고 했다. 특허료가 400만원 정도 였는데 설날에 회사에서 마침 그만큼 인센티브가 나왔다. 그 돈으로 특허를 냈다.”

그가 특허에 이어 창업까지 결심한 것은 ‘불편함’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그는 “저도 40년을 그렇게 살다가(웃음) 이건 한번 해봐야겠다 하고 추진하게 됐다. 맘 카페를 많이 살펴봤는데 기존 기저귀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글이 많았다. 그런데 쇼핑몰을 아무리 검색해봐도 제가 만든 홀딩밴드형 기저귀 형태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대디포베베의 홀딩밴드형 기저귀. © 뉴스1(대디포베베 제공)

두 번째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다. 전 대표는 “오래 살 거고, 직장은 한계가 있고 60세 이후에는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면 결국 창업을 해야 한다. 그때 등 떠밀려서 할 거냐, 지금 아이템이 생각났을 때 할거냐의 문제였다”며 “롯데의 ‘사내벤처’ 제도가 좋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전 대표는 사실 특허를 낸 후 회사에 다니면서 사업화를 해보려고 기저귀 제조사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 들었던 말이 ‘아이디어는 좋은데 출시하려면 최소 3억원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저희집 전세값이 3억이 안된다. 모아둔 돈도 없었다. ‘괜히특허비만 날렸네’ 하고 생각했다”며 “창업은 잊고 직장생활에 충실하던 찰나 회사에서 공고를 보게 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창업 과정에서 아내의 반대는 없었을까. 그는 “아내가 써보고 굉장한 반응을 보였다. ‘이거 (상품으로) 나오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며 “당시에는 특허를 내면 당연히 대박나는 줄 알았다”고 웃었다.

전 대표는 인터뷰 내내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을 표했다. 그는 “엄마들이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하려는 건데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창업 후 육아에 참여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면서 ‘우리집 엄마’를 힘들게 하고 있다”며 “아이에게서 ‘아빠 또 (집에) 놀러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아내는 그를 가장 적극적으로 응원해 줄 뿐만 아니라 제품 테스트에도 가장 먼저 참여하는 조력자다. 대디포베베에서 기저귀를 론칭하자 직접 발로 뛰면서 동네 엄마들에게 상품을 홍보하며 팔았던 것도 아내였다. 초기 판매 대부분은 아내가 이뤄낸 것들이었다.

◇4차산업 기술기업 대신 뽑힌 ‘대디포베베’…“기저귀 시장 변화 이끌 것”

롯데가 사내 벤처 1호로 ‘기저귀’를 선택한 것 자체가 다소 의외다. 벤처라고 하면 IT나 빅데이터, 인공지능(AI)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전 대표 역시 ‘어떻게 롯데에서 기저귀가 사내벤처 1호로 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롯데 액셀러레이터는 AI, 비트코인 등 큰 혁신을 불러올 신흥 기술 분야의 유망 스타트업을 투자 대상으로 삼고 있다. 전 대표의 대디포베베 이후에 롯데그룹의 투자를 받은 사내벤처 2기 기업 2곳은 지능형 경비 시스템과 건강식품 플랫폼 등 4차 산업 분야를 주제로 했다.

전 대표는 “생각해보면 천 기저귀 시대를 거쳐 밴드형 기저귀가, 밴드형 시대를 거쳐 팬티형 기저귀가 나왔다. 기저귀 시장의 변화는 ‘기능’이 아니라 ‘형태’가 이끌었다. 형태의 변화는 ‘편리함’을 위한 것이었다”며 “저희가 제안한 또 다른 기저귀 형태는 새로운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아이디어다. 우리는 다른 기저귀 회사와 경쟁하지 않는다. 카테고리와 경쟁한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밴드형 기저귀, 팬티형 기저귀다”라고 강조했다.

롯데는 사내 벤처 활성화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기본 1년은 기존 급여와 인센티브까지 똑같이 지원해 준다. 실패해도 3년 안에 재입사가 가능하다. 전 대표의 경우 창업 2년 만에 첫 제품을 출시했다. 만약 사내벤처 제도가 없었다면 창업은 꿈도 꾸기 어려웠고 생계 걱정에 집중을 못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일이 잘 풀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우리 만의 상상에 갇혀 있었다. 특허가 있고 특허로 제품을 만들면 잘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고객 검증을 다시 해봤는데 엄마(고객)들이 여러가지 문제점을 쏟아냈다. 편한 건 맞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이 부분이 불편해, 저 부분이 불편해 하면서…. 그래서 제품을 보완해 다시 특허를 냈다”고 설명했다.

전 대표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일단은 대디포베베의 브랜드 ‘로맘스’가 엄마들에게 정말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맘충’이라는 단어를 없애는 것‘이다. 맘충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없애냐고 되묻자 “없애지 못한다면 맘충이라는 단어를 안들을 수 있는, 엄마들이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되죠”라고 답했다.

그는 육아를 하는 보면서 엄마들의 고충을 많이 깨달았다고 했다.

“육아를 하면서 엄마들의 생활을 조금씩 알아가니까 엄마의 삶이 얼마나 외로운지 엄마들이 얼마나 사랑받고 싶어 하는지 알게 됐다. 지금은 집에 늦게 들어가지만 언젠가는 아내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미소를 안겨줄 것입니다”

전 대표는 마지막으로 창업을 꿈꾸는 직장인들에게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다니는 회사에 사내벤처 제도가 있다면 꼭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또 창업할 아이템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구체화해서 먼저 진행해라. 내가 가진 아이디어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내 아이디어가 시장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봐야 한다. 요즘은 온라인 카페 같은 곳에 들어가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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