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눈을 가진 진돗개

노트펫

입력 2019-05-30 12:09 수정 2019-05-3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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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펫] 안녕하세요. 저는 하키예요. 올해 4살이 되어가고 있죠.

저는 제주도에서 갑자기 도민이 된 주인 누나 가족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는 참 평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누나는 무슨 소리냐고 특별하다면서 인터뷰에 반강제로 떠밀었답니다.^^

제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지금 주인들과 만나기 전에 제주의 동물보호소에 있었습니다. 대강 4개월에서 5개월 쯤 됐을 때니 개춘기가 시작될랑말랑하던 시절이었죠. 그게 벌써 4년이 다되어가네요.

주인 누나 가족은 2015년 9월 마지막날 제주도로 이주해 왔습니다. 뭍의 도시에 살다가 '평화의 섬' 제주로 옮겨 오게 된 것이죠.

누나가 제주에 이사오고 두 달이 좀 안 되었을 때 저는 보호소에 들어왔습니다.

보통 제주에 이주해 오시는 분들은 마당을 가진 집을 선호하고, 마당이 생기면 개도 키워야 한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십니다.

누나도 그런 생각이 있었던 모양인데, 제가 딱 걸린 것이죠.

다들 유기동물 찾아주기 앱 포인핸드 아시죠? 포인핸드는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올라온 유기동물 공고도 제공하는데요. 거기에 올려져 있는 제 프로필을 누나가 보게 됐던 것이죠.

"우연히 눈이 파란 백구를 보게 됐어요. 눈이 파란 이 녀석 모습에 한눈에 반해 버렸지 뭐예요." 누나가 종종 주위 사람들 앞에서 하는 말입니다.

아마 제 아빠와 엄마 중 한 쪽은 제주도에 흔한 백구였을 터이고, 한쪽은 시베리안 허스키에 가까웠던 것같아요. 파란 눈을 가진데다 표정부자였던 어린 시절의 저. 누나는 지금 다시 본다해도 저에게 반할 것같네요.

첫눈에 반했지만 그날 바로 저를 데려올 수는 없었답니다. 유기동물은 공고기한이라는게 있습니다. 사실 이 기간은 원주인이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죠.

10일의 공고기간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소유권은 지자체로 넘어가고, 그 다음부터는 입양을 갈 수 있게 되죠.

공고기간이 지날 때까지는 입양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나는 매일 누가 데려갈까봐 조마조마했다고 해요. 그렇게 안절부절하다 12월1일 딱 입양 가능한 날이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와서는 서류를 작성하고, 저를 보쌈하듯 데려오게 됩니다.

저는 사람한테 애교가 참 많다고 자부합니다. 게다가 누나가 다른 개를 만져주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가만히 있기가 힘듭니다. 떼놓고 싶어 누나와 다른 개 사이를 마구마구 파고들 수밖에 없죠.

빼놓을 수 없는 특기도 한가지 갖고 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땐 이렇게 엉덩이 춤이 절로 나온 답니다. 누나는 무척이나 재밌어 하는 눈치이고요.

사람들은 제 눈 때문에 종종 오해를 하는 것같아요.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나는데요.

저의 눈 색깔 때문에 무섭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고, 한편에서는 눈 색깔이 너무 특이하다고 더 예뻐해주세요. 다른 백구들과 살짝 다를 뿐 성격까지 그런 것은 아니니 기본 에티켓만 지켜주시면 아무런 문제가 없답니다.

눈 때문에 좋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제 자식들이 한눈에 표가 난다는 점인데요.

저는 2016년 말에 중성화수술을 받았습니다.

누나는 제가 바깥에 나가지 않고 마당에 있기 때문에 자식을 가질 것이라곤 미처 생각을 못했답니다. 그런데 그해 무려 14마리의 새끼가 태어나는 것을 보곤 바로 동물병원으로 보내 버렸죠.

사실 14마리의 새끼의 아빠라는 게 바로 파란 눈 때문에 들통이 났답니다. 첫째 부인은 주인 누나의 어머니 친구분집 강아지였는데요. 저는 매일 찾아오더니 배가 불러 어느날 새끼들을 낳았습니다.

누나는 처음엔 그럴 리 없다고 주장했으나 새끼들 가운데 두 마리가 눈을 뜨자 파란 눈을 가지고 있었더랬죠.

두번째 부인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친구였는데 어느날부터 우리집에 쳐들어와서는 제 밥도 뺏어먹고 아예 눌러 앉으려 들더군요.

역시나 새끼들이 태어났는데 눈 파란 녀석이 두 마리 있었던 것이죠. 두번째 부인은 지금 옆집 아저씨와 아줌마의 사랑을 받으며 잘 살고 있고 있으니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이러다 온동네를 제 새끼들로 채울 판이라 누나는 서둘러 저를 수술시킨 셈이죠.

저는 요새 애견카페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놀기 바쁘답니다. 누나가 애견카페의 알바로 들어가게 됐는데 저를 항상 데려가고 있습니다. 카페에 출근해서도 말썽이 없으니 제 사회성은 충분히 아시겠죠?

제가 진돗개이니 덩치는 그렇게 작지는 않은 셈이죠. 큰 친구들은 물론이고, 가끔 카페에 놀러오는 작은 친구들과 노는 것도 재밌답니다. 종종 진돗개가 작은 개들을 무는 사고를 냈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옵니다. 더불어 수의사 선생님들도 저와 같은 진돗개에 질색팔색한다는 것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왜 그런 이야기가 들려오는지 살짝 이해가 덜가긴 합니다. 어릴 때부터 가정견으로서 사회성 교육을 받고 큰다면 그런 끔찍한 사고는 줄어들지 않을까 해요. 물론 '우리개는 안물어요'라고 하시면서 처음보는 강아지나 사람들에게는 다가가라고 떼미는 것은 절대하시면 안되고요.

주인 누나는 제게 바라는것이 별로 없다면서 아프지 말고 이렇게 밝은 성격으로 건강하게 오래 지내줬으면 한다고 합니다. 중성화수술 때문에 살짝 가운데가 허전하기는 하지만 저도 이렇게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고, 예뻐해주는 주인이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주인 누나는 물론 가족들도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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