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국외반출 금지 품목이었다

노트펫

입력 2019-05-30 10:06 수정 2019-05-3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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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사람들 덕분에 세계화에 성공한 고양이

[노트펫] 고양잇과동물들은 종에 관계없이 뛰어난 사냥능력을 가진 포식자(predator)들이다. 들고양이(wild cat)는 그런 고양잇과동물 중에서 체구가 작은 편에 속해서 주로 쥐를 포함한 작은 설치류(Rodents)를 주식으로 삼는다.

수천 년 전 일부 들고양이들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 맛있는 쥐가 많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다. 쥐가 노린 대상은 사람들의 주식인 곡식이었다. 하지만 곡식은 들고양이에게는 필요 없는 존재였다. 들고양이가 좋아하는 것은 식량을 노리는 쥐였기 때문이다.

식량창고는 들고양이에게는 좋은 어장(漁場)이었다. 인근에 매복하여 쥐를 잡아도 얼마 후 다른 쥐가 곡식 냄새를 맡고 왔기 때문이었다.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들고양이의 쥐 사냥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닌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한 사냥이었다. 하지만 들고양이의 그런 행동은 인간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시작된 인간과 고양이의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인간과 고양이의 동거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동거의 출발장소는 이집트가 확실해 보인다. 고대 이집트는 현대의 이집트와는 달리 농경이 발달하고 농산물이 풍부했다. 이집트의 풍요로움은 이집트가 로마제국의 속주가 되면서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로마제국의 첫 황제가 되는 옥타비아누스(Octavianus)는 악티움해전(Battle of Actium)에서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Cleopatra)와 그녀의 남편이며 정치적 라이벌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의 연합군을 격파한다. 이후 이집트는 황제 직속령이 된다.

그런데 당시 이집트에서 생산된 밀의 양은 로마제국 시민들을 먹여 살릴 정도였다. 이는 식량안보에 대한 관심, 특히 로마의 주식인 밀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옥타비아누스의 고민을 덜어주게 된다.

이집트의 식량창고를 지키던 고양이가 전 세계로 보급되게 된 것은 당시 뱃사람들의 생명을 건 공헌에 힘입은 것이다. 이집트에서 고양이는 신성한 동물이었다. 바스트(Bast) 혹은 바스테트(Bastet)라고 불리며 대지, 다산, 농업의 상징이었던 여신은 사람의 형상이 아닌 고양이 혹은 암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이렇게 이집트에서 종교적, 실용적으로 중요한 존재여서 무역제한 품목이었다. 국외 반출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그런데 하지 말라고 하면 더욱 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다.

고대에도 무역선이 존재했다. 그런데 그 배에는 돈을 벌기 위해 싣는 상품도 있지만, 뱃사람들의 식사를 위해 싣고 다닌 식량도 있었다. 육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쥐는 바다에서도 성가신 존재였다. 항구의 쥐들이 배에서 나는 식량 냄새에 이끌려 배에 옮겨 탔기 때문이다.

배에 탄 쥐는 여러 해악을 끼쳤다. 뱃사람들의 귀한 식량을 없애기도 하고, 특유의 갉는 습성 때문에 배의 이곳저곳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뱃사람들은 배의 안전과 굶주림을 예방하기 위해 대책이 필요하였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집트의 고양이를 배에 싣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궁즉통(窮則通),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이집트와 교역을 하던 뱃사람들은 몰래 이집트의 고양이들을 배에 싣고 떠난다.

이렇게 뱃사람들의 품에 안겨 배에 올라탄 이집트의 고양이들은 정박지 곳곳에 내리게 된다. 이후 유럽과 아시아 전역으로 퍼진다. 그리고 그곳의 들고양이들과 교배를 통해 다양한 종류의 고양이로 거듭나게 된다. 현대인들이 키우고 있는 고양이들에게는 이런 역사가 숨어 있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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