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초기 홀로 힘든 싸움… 주류가 품어줘야 오래 생존”

곽도영 기자

입력 2019-05-29 03:00 수정 2019-05-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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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스타트업]취임 1년 김홍일 디캠프 센터장

27일 서울 강남구 디캠프에서 만난 김홍일 센터장은 “한국 스타트업 투자자가 좀 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미국처럼 15년 장기 투자할 수 있는 벤처캐피털 펀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고은 인턴기자

지금은 기업 가치 1조 원을 넘긴 유니콘 기업 ‘우아한 형제들(배달의 민족)’과 ‘비바리퍼블리카(토스)’는 모두 ‘디캠프’의 장학생이다. 배달의 민족은 서비스 초기 디캠프가 간접 투자했고 토스는 디캠프의 스타트업 경연대회인 디데이에 2014년 출전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디캠프는 2012년 KDB산업은행과 신한은행, 국민은행 등 20개 금융관계사가 만든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을 모태로 한다. 총 출자 금액 8450억 원(약정액 포함)으로 주로 벤처투자사가 진입하기 전 단계인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27일 서울 강남구 디캠프에서 3대 센터장으로 취임한 지 1년을 맞은 김홍일 센터장(53)을 만났다. 김 센터장은 산업은행과 리먼브러더스, 노무라증권 등 투자업계를 두루 거친 금융맨이다.

김 센터장은 최근 이재웅 쏘카 대표와 최종구 금융위원장 간 대립으로 시작해 확대되고 있는 모빌리티 신산업을 둘러싼 설전에 대해 “신산업계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스타트업이 혁신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존 산업, 기성 사회와 대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혁신과 신산업의 가치에만 몰입하기 쉬운데 신산업의 등장으로 발생하는 기존 산업과의 갈등과 불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충고였다.

그는 한국 스타트업 투자자들의 인내심 없는 투자 관행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실리콘밸리처럼 창업 초기부터 전략적인 투자 파트너가 함께하기보다 회수 가능성이 있는 단계에서야 비로소 돈이 몰린다는 것이다. 뒤늦게 들어와 너무 빨리 빠져나가는 것도 문제다. “창업 기업이 최초 흑자를 내기까지 보통 4년이 걸리는데 국내 채권 시장의 평균 만기가 3년이다 보니 벤처캐피털(VC) 자금도 이에 맞춰 자금을 회수한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결국 창업 초기 어려움은 홀로 견뎌야 하고 정작 필요한 투자는 수익이 나기 시작하는 4년 차 때부터 들어오는 셈”이라며 “VC 펀드가 미국처럼 15년 장기 투자를 할 수 있다면 초기 창업 기업의 생존율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 기업들이 모두 유니콘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불안감을 달래며 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디캠프 입주사 중 하나였던 반려동물 건강검사 키트 스타트업 대표는 지난해 스트레스로 안면 마비가 오기도 했다. 이 밖에도 투자 지연이나 임금 지불 걱정 등으로 불면증을 겪는 스타트업 대표들이 많다. 김 센터장은 “입주사 대표 중엔 창업 과정 2년간 친구 한 명 만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며 화려해 보이는 스타트업계의 이면을 소개하기도 했다.

김 센터장은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30초 허들’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늘 입주사 대표에게 “30초 안에 사업 설명을 해달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는데, 30초 안에 설명하지 못하면 스스로 사업 비전을 정리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디캠프는 최근 3년간 총 739명의 스타트업 일자리를 만들었다. 김 센터장은 “기성세대, 기존 산업의 시각에서 혁신가들을 바라보면 어설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도 예전에는 어설펐다는 걸 잊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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