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겠지?”…‘남들 못 가본 곳’ 험지로 끌리는 여행객들

한성희 기자

입력 2019-05-15 16:59 수정 2019-05-1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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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김나연 씨(24·여)가 2017년 1월 아프리카 중서부에 있는 나미비아를 여행하던 중 겪은 일이다. 대낮 도로변을 걷는데 현지 남성 5, 6명에게 둘러싸였다. 이들은 김 씨의 목에 군용 나이프를 들이댔다. 이들은 김 씨로부터 여권과 지갑, 여행경비 150만 원이 든 가방을 빼앗은 뒤에야 풀어줬다. 김 씨는 “여행 떠나기 전부터 동양인 여행객이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녀 강도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말을 종종 들었지만 내가 표적이 될 줄을 몰랐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김이삭 씨(27)는 2017년 10월 페루의 수도 리마에 있는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에 입국한 직후 차량 납치를 당할 뻔했다. 김 씨가 공항 인근 도로에서 택시를 잡고 있는데 택시기사 차림을 한 남성들이 ‘싼 값에 태워주겠다’며 말을 걸어왔다. 김 씨는 별 의심 없이 차 트렁크에 짐을 실고 뒷좌석에 타려 차 문을 열었다.

그 때였다. 김 씨 옆을 지나던 한 차량이 갑자기 멈춰 섰다. 한 남성이 차창을 내리며 김 씨에게 영어로 “빨리 내 차에 타라”며 다급히 외쳤다. 그러자 택시기사 차림의 남성들이 이 차량으로 몰려가 발로 차며 운전자를 위협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김 씨는 잠시 다툼이 잠잠해진 틈을 타 그 차량에 옮겨 탔다. 김 씨는 차량 운전자로부터 “저 사람들은 택시기사가 아니다. 여행자를 납치하려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남들 못 가본 곳’ 험지로 끌리는 여행객들

험난한 여행지에서는 범죄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위험이 늘 도사린다. 그럼에도 험지(險地) 여행에 나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페루에서 납치 피해를 당할 뻔한 김 씨는 “남들이 다 가는 곳보다 아무나 못 가본 곳에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씨가 지난 7년여 간 여행한 93개국 중에는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 등 정부의 여행자제 또는 철수권고 경보가 내려진 국가들이 포함돼있다. 2015년부터 1년간 세계 여행을 했던 강모 씨(26·여)는 자연풍경과 동물을 좋아해 아프리카 등지를 주로 다녔다. 강 씨는 “아프리카의 하늘은 다른 곳과 다르다는 말을 듣고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생과 취업준비생들은 ‘취업 스펙’을 갖추기 위해 일부러 험지 여행을 택하기도 한다. 직장인 이모 씨(29·여)는 “키가 150cm가 안 되고 체구가 작아 연약해 보인다는 말을 듣는 편”이라며 “취업 시 이미지가 약점이 될까 우려 돼 강단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험지 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했다. 다른 한 취업준비생은 “오지 여행 경력이 있으면 인생 스토리를 만드는 데도 유용하다”고 전했다.

직장인 박모 씨(34)는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여행꾼’들 사이에서 경쟁 심리도 작동한다고 말한다. 박 씨는 “여행 관련 소모임에서 어디까지 가봤는지를 따져 ‘고수’를 판가름한다. 지도 앱에 그동안 갔던 국가를 하나씩 표시할 때마다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 “나는 괜찮겠지” 안전은 운에 맡겨


주부 박모 씨(36·여)는 2016년 7월 남편과 함께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남부와 인접한 베냉의 펜자리 국립공원을 여행했다. 40대 한국인 관광객 장모 씨(여)는 1일 이 곳 주변을 여행하다 현지 무장 세력에 피랍돼 8일 만에 구출됐다. 박 씨는 “인터넷 블로그에 펜자리 국립공원의 자연경관에 감탄하는 내용의 여행기를 보고 여행을 결심했다. 안전에 대해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거기서 한국인이 피랍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놀랐다”고 말했다.

현재 아프리카 일대를 장기 여행 중인 직장인 조모 씨(32)는 “어느 국가를 불문하고 어디든 위험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여행지에서의 안전은 운에 맡기는 부분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 씨(27·여)는 터키에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던 2016년 7월 수도 앙카라를 여행 중이었다. 김 씨는 비상사태의 여파로 외출을 하지 못하고 나흘 간 숙소에 머물렀다. 김 씨는 “막상 현지인들이 생활하는 현장에 있다보면 뉴스에서 강조하는 위험성이 와 닿지 않는다”며 “눈앞에 폭탄이 떨어지지 않는 한 위험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지 정보 접근성 문제가 커

관광객들의 발길이 드문 험지의 경우 현지 치안 상태 등 관련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험지 여행을 앞둔 여행객들은 해당 지역 여행 경험자들이 삼삼오오 모인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등에서 정보를 얻는다. 이런 정보로는 시시각각 변하는 현지 상황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정보 역시 제한적이다. 여행사가 운영하는 커뮤니티 등에는 피상적인 관광 정보나 아름다운 경관 사진만 올라와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전문가들은 여행 국가의 정치, 치안 상황 등을 사전에 충분히 알아보고 현지에 도착해서도 지속적으로 관련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장용규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장은 “아프리카 대륙 내 국가들은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상황이 다른 경우가 많다”며 “아프리카 국가들의 내부 상황은 외교부조차 제때 인지하지 못 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 여행 시 현지 정보를 계속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특히 테러단체가 활동하는 이슬람 국가나 반군이 활동하는 콩고민주공화국, 케냐 북부 등 국경지역을 여행할 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성희 기자 che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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