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청년들 ‘작업대출’ 먹잇감으로… 직접 금융사기 가담도

장윤정 기자 , 김형민 기자

입력 2019-05-09 03:00:00 수정 2019-05-09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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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에 갇힌 ‘적자 청춘’]‘불법금융 덫’에 내몰리는 청년들

#1. 대학생 A 씨(22)는 이른바 ‘내구제 대출’에 손댔던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내구제 대출은 휴대전화를 할부로 개통한 뒤 휴대전화 기기를 브로커에게 넘겨 현금을 챙기고 그 현금을 생계비로 쓰는 것이다. 학자금 대출 2900만 원, 청년·대학생 햇살론 700만 원 등 이미 가능한 대출은 다 당겨 쓴 터라 인터넷에 ‘대학생 대출’ 등을 검색해 본 것이 화근이었다. 휴대전화 5대 등을 개통해 브로커에게 넘기고 700만 원을 조달했지만 매달 날아오는 휴대전화 할부금과 요금고지서가 문제다. 이미 두 달이나 할부금과 요금을 연체한 A 씨는 이러다 신용불량자가 될까 봐 조마조마하다.

#2. 군 제대 후 식당에서 일하던 B 씨(27). 언젠간 ‘내 가게’를 차리겠다는 생각에 식당에 들어갔지만 수입이 너무 적었다. 생활고로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은 탓에 매달 70만 원의 이자를 갚느라 지칠 대로 지쳤을 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상대는 자신을 ○○저축은행 ‘대환대출’ 담당자라고 소개하며 “저리 대출로 갈아타라”고 했다. 이어 “단, 현재 통장 거래 금액이 너무 적어 대출한도가 나오지 않는데 내가 소개해 주는 업체에 연락하면 부족한 통장 거래 내역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권유했다. B 씨는 그가 소개해준 ‘솔루션’이란 업체에 체크카드와 비밀번호 등을 맡겼다. 하지만 돈이 들어오기로 한 날, 해당 업체들은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경찰서에 달려간 B 씨는 계좌가 금융사기에 연루됐다며 “피의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좌절했다.

학자금 대출, 생활비, 월세 등으로 자금난에 빠진 절박한 청년들은 불법 대출이나 각종 금융사기에 노출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20, 30대 대출빙자형 사기 피해액은 544억 원으로 2017년(391억 원)보다 39.1% 늘었다. 고령층인 60대 이상(453억 원)보다 오히려 20, 30대의 피해액이 컸다. 불법 대출이나 금융사기의 유혹에 빠져든 결과는 참혹하다. 최악의 경우 범죄에 연루돼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하기까지 한다.



○ 금융사기, 불법금융 먹잇감 된 청년들

금융거래 이력이 부족한 20대 청년층의 상당수는 급전이 필요하면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을 거쳐 결국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최근 대부업체도 법정 최고금리 인하의 영향으로 심사를 강화하는 등 문턱을 높이다 보니 불법 사금융 시장에 흘러 들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서민금융연구원의 대부업체 이용자 조사에 따르면 대출 거절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20대는 2018년 50.4%로 전년(26.9%)에 비해 2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게다가 대출을 거절당한 뒤 자금을 조달한 경로로 20대의 8.8%가 ‘불법 사금융’을 꼽았다.

청년들이 가장 쉽게 빠져드는 불법 대출 형태로는 ‘작업 대출’과 ‘내구제 대출’이 꼽힌다. ‘작업 대출’이란 신용등급, 소득 등을 조작해 대출을 받는 것이다. 내구제 대출은 ‘내가 나를 구제한다’는 뜻도 있다. 취약계층 자립 지원 단체인 더불어사는사람들 이창호 대표는 “이미 대출 연체가 발생한 청년들의 경우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를 가 봐도 돈 빌릴 곳이 없다”며 “그렇다 보니 결국 인터넷을 뒤지다가 작업 대출, 3050 대출 등 각종 불법 대출에 노출된다”고 했다.

한계 상황에 몰린 일부 청년은 현금 몇 푼을 쥐기 위해 스스로 금융사기에 가담하기도 한다. C 씨(25)는 작년 12월 지인으로부터 ‘대행 알바’라는 카카오톡 대화명을 쓰는 아르바이트 주선자를 소개받았다. C 씨는 “계좌로 100만 원씩 입금되면 10만 원짜리 상품권을 10장씩 구매한 뒤 상품권 핀 번호를 알려 달라. 그러면 아르바이트비 3만 원을 주겠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고는 자신의 계좌번호를 알려줬고 세 차례에 걸쳐 상품권 구매 심부름을 했다. 계좌가 나쁜 일에 악용될 것이란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아르바이트비에 혹했다. 계좌는 보이스피싱에 쓰였고 C 씨는 피해자로부터 형사 고발을 당해 사기방조 혐의로 경찰에서 수사를 받아야 했다.

이런 불법 대출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청년층을 파고들고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에 ‘급전’ ‘작업 대출’ 등의 단어를 입력하면 수많은 불법 금융 광고가 검색된다. 8일 현재 인스타그램의 경우 ‘작업 대출 전문’이라는 태그가 달린 게시물은 16만6000여 개, ‘작업 대출 안전한 곳’ 태그가 달린 게시물은 14만3000여 개에 이른다.


○ 금융 알지 못하는 ‘금알못’ 청년들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부족한 금융지식도 사기 피해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조사한 우리나라 청년(18∼29세)들의 금융 이해력 점수는 61.8점이었다. 이는 60대 이상인 고령층(59.6점)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점수는 64.9점이다.

금감원이 지난해 대학생 13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5%가 ‘검찰과 금감원이 돈을 안전하게 보관해준다’고 잘못 알고 있었다. ‘고수익 아르바이트라고 속아 현금(보이스피싱 피해금)을 단순히 인출 및 전달한 경우에는 실형을 살지 않는다’고 잘못 알고 있는 비율도 17%나 됐다. 2017년 적발된 대포통장도 소유주의 47.2%가 20, 30대 청년이었다.

금융당국도 금융교육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다. 지난해 금감원을 포함한 13개 금융 유관기관이 청년을 포함한 금융소비자 93만 명에게 금융교육을 했다. 하지만 교육 내용이나 방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보니 단순한 용돈 교육, 금융상품 안내, 재무교육에 그치고 있다. 중구난방식 금융교육을 체계화하기 위해 금융위원회 주도로 2007년 설립된 금융교육협의회는 최근 3년간 단 두 차례 열렸다. 금융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금융교육협의회를 법제화하는 내용을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담았지만 해당 법안은 9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금융교육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특정 기관이 주도해 일관된 교육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 자립 지원 단체 빚쟁이유니온의 한영섭 대표는 “재테크나 재무설계 같은 교육도 중요하지만 돈 없는 청년들에게는 금융사기 피해를 예방하는 실질적인 금융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장윤정 yunjung@donga.com·김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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