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변종국]“김현미 장관님 제재를 풀어주세요”

변종국 산업1부 기자

입력 2019-05-01 03:00 수정 2019-05-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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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진에어 마곡사옥에 걸린 가로 10m, 세로 12m 크기의 대형 현수막.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변종국 산업1부 기자
서울 강서구 마곡동 진에어 사옥에는 “김현미 장관님, 제재를 풀어주십시오”라고 쓴 대형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다. 지난달 19일 진에어 임직원들이 단 현수막이다.

직원들이 현수막을 내건 이유는 지난해 8월 국토교통부가 신규 노선 확장과 신규 항공기 등록을 못 하도록 한 제재를 풀어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다. 당시 국토부는 진에어가 미국 국적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를 등기이사에 올린 데 대해 면허 취소를 검토하다가 제재로 결정했다.

면허 취소는 면했지만 신규 노선 취항 금지는 진에어에 큰 부담이 됐다. 제재 10개월 동안 진에어의 경영상황은 악화됐고,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5%가 줄었다. 지난해 신규 항공기 4대를 들여올 것으로 보고 뽑았던 400여 명의 직원은 상당수 유휴인력으로 남았다. 올해 채용 계획은 미지수다. 제재 이후 진에어는 호주 케언스와 미국 사이판 등 노선을 폐지했다. 영업목표가 미달되고 미래 수익을 예상할 수 없어 직원들은 성과급을 못 받고 있다.

이 시점쯤 진에어에 대한 처분이 정당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면허 취소 논란이 나왔던 당시로 돌아가 보자. 항공사업법은 외국인 임원 채용을 금지했지만 항공안전법은 허용하는 등 법령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게다가 외국인 임원 규정도 ‘당국 판단으로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반드시 면허를 취소한다’ 등으로 20년간 4번이나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아시아나항공과 에어인천에서도 외국인 임원 채용이 드러나기도 했다.

진에어에 내려진 제재도 현행법에서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불법 등기이사 재직으로 인한 처벌 조항에는 영업 정지 조치가 없다. 당시 국토부는 “면허취소 말고 과징금이나 영업정지를 할 수 없지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에 따른 특단의 조치로 제재를 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물컵 폭행’과 ‘갑질’ 논란으로 오너 일가가 비난을 받자 기업에 일종의 ‘징벌적 제재’를 내렸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국토부는 진에어에 경영문화를 개선하면 제재를 해제해 주겠다고 했다. 진에어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신설해 사외이사 비중을 늘렸다. 진에어는 국토부를 6번 찾아가 경영문화 개선 조치를 보고했다. 최정호 진에어 대표는 고 조양호 회장 발인 날인 지난달 16일 국토부를 찾아가 임직원과 항공업계 관계자 수천 명이 작성한 6000장 분량의 탄원서도 제출했다. 노조도 “진에어 노사는 그동안 뼈를 깎는 노력으로 제재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고 국토부에 서한을 보냈다.

이 정도면 충분한지, 아니면 앞으로 뭘 더 어떻게 하라는지 국토부는 구체적 답변을 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가 바라는 게 한 기업이 경쟁력을 잃고 손발이 묶인 채 서서히 침몰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변종국 산업1부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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