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신기루… 거위는 황금알을 낳지 못했다

강승현 기자

입력 2019-05-01 03:00 수정 2019-05-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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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3년만에 63빌딩 면세점 철수, 왜?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한화그룹에는 끝내 황금 알을 낳아주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이사회를 열고 면세점 사업 시작 3년 9개월 만에 사업을 접는다고 밝혔다(본보 30일자 A14면 참조). 2015년 면세점 허가를 받은 서울 시내 면세점 가운데 영업을 중단하는 건 한화가 처음이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있는 ‘갤러리아면세점63’의 영업은 9월에 종료될 계획이다. 한화갤러리아는 “3년간 누적 적자가 1000억 원 이상 발생한 면세사업을 더 이상 이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사업 철수 배경을 밝혔다. 지난해 제주공항 면세점 철수에 이어 시내 면세점까지 접으면서 한화는 면세사업을 완전히 접게 됐다. 한화는 앞으로 백화점 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2015년 당시 신세계면세점(신세계DF), HDC신라면세점, 두타면세점(두산), SM면세점 등이 한화와 함께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는 중국인 관광객이 서울 시내 면세점에 한창 몰려오던 때로 유치 경쟁이 치열했다. 소위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지만 지난 3년여 동안 한화의 면세사업 실적은 초라하다. 한화갤러리아에 따르면 면세사업 부문은 2016년 439억 원 손실에 이어 이듬해에도 439억 원 적자였다. 지난해마저 239억 원의 영업손실이 나면서 한화갤러리아의 3년간 누적 손실액은 1000억 원을 넘었다.

면세점 업계는 한화의 면세사업 실패에는 제대로 된 시장 분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뛰어든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갤러리아 면세점은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자리 잡았다. 매출 상위 면세점 대부분이 중국인 관광객이 모이는 서울 명동 일대인 것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초기부터 받았다.

2017년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면세점의 입지는 더욱 중요해졌다. 개별 관광객이 떠난 자리를 다이궁(代工·중국인 보따리상)들이 채웠는데, 이들은 접근성이 좋은 서울 시내 2, 3개 면세점을 집중 공략하기 때문이다. 명동 등 도심에서 먼 여의도에 위치해 상대적으로 다이궁들의 발길이 뜸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여행사 등에 지불하는 송객 수수료가 늘어난 것도 실적이 악화된 요인 중 하나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대형 면세점은 10% 남짓한 수수료를 내지만 모객이 덜 되는 중소 면세점들은 20, 30%의 수수료를 지불한다”면서 “고객 수는 늘었을지 모르지만 수수료가 크게 늘면서 적자폭이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이후 시내 면세점 수가 6개에서 13개(2018년 기준)로 늘어나면서 치열해진 경쟁을 극복하지 못한 셈이다.

면세점 업계에서는 면세사업을 접는 사업자가 한화에 이어 추가로 더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 신라, 신세계 등 빅3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실적이 좋지 않아서다. 업계에 따르면 SM, 동화 등이 적자를 내고 있고, 두타면세점은 지난해 가까스로 흑자 전환했지만 누적 적자의 부담이 큰 상태다. 부진한 실적이 이어지면서 SM면세점은 영업장을 6개 층에서 2개 층으로 대폭 축소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호황을 누릴 때 면세점의 문턱을 너무 낮춘 게 지금의 결과를 가져왔다”면서 “중국인 개별 관광객들이 증가하는 등 호재가 없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출혈 경쟁이 계속되면 앞으로 사업에서 손을 떼는 면세점들이 잇달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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