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경의 연극과 삶]‘돌쟁이’ 아기도 당당한 연극 관객

황승경 연극평론가

입력 2019-04-26 03:00 수정 2019-04-2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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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민들레의 베이비 드라마 ‘잼잼’. 극단 민들레 제공
황승경 연극평론가
매주 토요일 오전 이탈리아 볼로냐 테스토니 극장 소공연장에는 라바라카 극단의 공연을 보기 위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돌쟁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로 성황을 이룬다. 이 공연은 육아에 지친 부모들을 위한 공연이 아니다. 한창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주변 환경에 반응을 시작하는 돌쟁이들을 위한 ‘베이비 드라마’ 공연이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기들도 기꺼이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돌쟁이들이 무슨 연극을 보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베이비 드라마는 연극을 통해 아이들이 자존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극적인 긴장감이나 기승전결 서사 줄거리보다는 오감이 자극되는 이미지와 부드러운 은유가 중심이라 아이들은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집중한다. 공연 내내 배우는 명도, 채도, 리듬, 질감이 느껴질 수 있도록 빛, 색, 소리, 촉감을 다양하게 변화시킨다. 배우는 공연 중에 객석으로 들어가서 아이들과 함께 감각을 소통한다. 공연 후에는 아이들이 무대에서 환상을 안겨준 장치들과 직접 오감으로 체험하는 놀이시간도 빠지지 않는다.

베이비 드라마는 개월 수에 따라 12개월, 24개월, 36개월 등으로 권장연령을 구분해 제작된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이탈리아 극작가 다리오 포는 “아무리 고가의 롤렉스 시계일지라도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무겁고 번거로운 팔찌밖에 안 된다”고 관객 눈높이에 맞춘 공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극단 민들레’와 ‘극단 즐거운사람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베이비 드라마가 공연되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감각을 공유하는 아기 관객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은 휴대전화나 브라운관에서 나오는 영상에 집중하는 모습과는 반응이 다르다. 어린이 연극에는 성인극보다 훨씬 더 넓은 환상, 공상, 상상의 세계가 허락되기 때문이다. 무대를 통해 배우는 ‘연극적 상상력’은 아이들의 지적 감성적 발달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데, 암기 학습처럼 단기간에 체득할 수 없다. 베이비 드라마는 그 밑거름이라 할 수 있다.

황승경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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