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경 러프, 도박 해저드, 부상 벙커 헤치고… 황제의 ‘인생샷’

김종석 기자

입력 2019-04-16 03:00 수정 2019-04-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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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타이거 우즈]44세 우즈 11년만에 메이저대회 우승

추락한 영웅, 산산이 부서진 별이었다. 무엇보다 도덕적으로도 파멸했다는 지탄을 받던 아버지였다.

“우∼!!”

마지막 18번홀을 빠져나오면서 그는 괴물 같은 비명을 질렀다. 하늘을 뚫을 듯한 격렬한 주먹 세리머니. 관객들의 함성 속에서 그는 웃고 있었다. 제일 먼저 자신과 똑같은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던 열 살 된 아들 찰리를 번쩍 안아 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와 열두 살짜리 딸 샘을 차례로 꼭 안았다.

“아빠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꼭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이 평생 이날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족은 모두 붉은색 셔츠나 바지를 입고 있었다. 마지막 라운드 때면 늘 꺼내 입던 붉은색 티셔츠. 멀고 먼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타이거 우즈(44·미국) 가족이었다.

우즈는 15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골프클럽(파72)에서 끝난 시즌 첫 메이저 골프대회이자 가장 명예로운 대회로 꼽히는 ‘명인열전’ 마스터스에서 최종 합계 13언더파로 역전 우승했다. 4라운드를 공동 2위로 출발했으나 2타를 줄여 더스틴 존슨(미국) 등 공동 2위 3명을 1타 차로 제쳤다. 개인 통산 5번째, 2005년 이후 14년 만에 마스터스 우승을 차지했다. 2008년 US오픈 이후 11년 만의 메이저 대회 우승이다.

22년 전 22세의 그는 최소타, 최다 타수 차, 최연소, 최초 흑인 챔피언 기록으로 이 대회 정상에 올랐다.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을 안은 뒤 우즈는 아버지 얼 우즈(2006년 작고)와 기쁨을 나눴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우즈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 가장 감동적인 샷은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샷(포옹)이었다”고 했다.

1975년 미군 아버지와 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우즈는 아버지의 골프 스윙을 보며 자랐다. 베트남 전우의 이름을 따 아들에게 ‘타이거’라는 이름을 지어줬던 아버지는 마흔 살이 넘어 골프에 입문했다. 우즈는 생후 6개월 때 유모차에서 골프채를 보고 기어 나와 집었다고 했다. 우즈는 2세 때 ‘마이크 더글러스 쇼’에 출연해 샷을 날렸던 신동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이 물려줄 수 있는 더 큰 유산은 정신적 강인함이라고 여겼다. 집중력을 위해 스윙 연습 때면 동전 소리를 내는 등 일부러 방해했고 실수를 인정하며 항상 생애 마지막 경기처럼 임하라고 했다. 우즈가 집념 어린 승부근성을 발휘한 건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1996년 프로에 뛰어든 우즈는 2000년 US오픈을 시작으로 2001년 마스터스까지 두 해 만에 4대 메이저 타이틀을 따내 ‘타이거슬램’을 완성했다. 2004년 스웨덴 출신 모델 엘린 노르데그렌과 결혼해 딸과 아들을 낳아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 파멸했다. 매주 80km 이상 달리고 가혹한 체력훈련으로 스스로를 몰아쳤던 그는 이런 힘들었던 노력의 대가를 즐기려 했다. 섹스 중독과 도박에 빠져들었다. 2009년 추수감사절 집 근처 소화전을 들이받는 의문의 심야 교통사고를 낸 뒤 은밀했던 일들이 터져 나왔다. 불륜 관계 여성 10여 명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2010년 이혼했다. 스폰서 기업들도 줄줄이 끊어졌다.

호쾌한 장타가 특기였지만 스윙 시 무리를 주는 그 장타 때문에 허리도 망가졌다. 허리 통증으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네 차례 수술대에 올랐다. “통증 때문에 걷지도 눕지도 잠들지도 못했다”던 때였다. 온갖 진통제로 버티던 그는 2017년 자동차 운전석에서 약물에 취해 잠들어 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세계 랭킹은 1199위까지 곤두박질쳤다. “끝났다”고들 했다.

하지만 허리에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간결하게 스윙을 변경해 나갔고, 몸에 맞는 클럽 샤프트를 여러 차례 교체해 가며 재기를 노렸다.

그가 우승하자 그의 이름이 새겨진 나이키 관련 상품이 웹사이트에서 매진됐다.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등 전·현직 미국 대통령이 잇달아 트위터로 축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은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했다.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컴백’이라는 찬사 속에서도 우즈는 “아버지다운 모습을 보인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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