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벽보다 더 두꺼운 교실 안 마음의 벽

김기윤 기자

입력 2019-04-15 03:00 수정 2019-04-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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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철가방추적작전’

학생과 교사들이 쌓아올린 마음의 벽은 아파트 콘크리트 벽보다 두껍다. 두꺼운 벽을 없애려는 노력에도 이들의 외로움은 더 커져만 간다.

연극 ‘철가방추적작전’은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중학교가 배경. 학교를 벗어나려는 청소년들과 이들을 학교로 데려오려 고군분투하는 교사가 중심인물이다. 학생이 학교 안팎에서 겪는 차별을 통해 계급화된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김윤영 작가의 동명 단편소설을 각색했으며 올해 두산아트센터가 선보인 ‘아파트’ 시리즈 가운데 첫 작품이다.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이 학교는 ‘아파트’라는 큰 가상의 벽으로 나뉘어 있다. 공공임대 아파트와 민간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은 한 교실에 지내면서도 알게 모르게 서로를 ‘○○ 아파트 출신’으로 규정한다.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학생의 계급도 결정된다. 누군가는 교실에서 잘 가르치는 학원을 고를 때, 다른 누군가는 돈을 잘 주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고민한다. 배달 오토바이를 모는 학생이 “가게 사장님은 내가 어디 사는지 묻지 않고 똑같이 대해준다”고 말하는 장면이 아픈 여운을 남긴다. 역설적으로 관객은 교실 안에 묘하게 흐르는 이질감 속에서도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한 익숙함과 마주한다.

무거운 주제와 달리 작품은 ‘활극’을 연상시킬 정도로 역동적이다. 학생을 뒤쫓는 교사의 추격 장면은 박진감이 넘친다. 세련된 무대 연출과 배우들의 실감나는 중학생 연기는 2019년 한 중학교 교실을 가져다 놓은 듯 현장감이 뛰어나다. 때론 여느 학원, 청춘물처럼 유쾌한 웃음도 던진다.

극의 소재와 줄거리 자체는 상투적이지만 원작 소설이 탄생한 약 20년 전과 오늘날 교실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씁쓸함은 커진다. 특히 어느 학생이든 동등하게 가르쳐 왔다고 자부한 교사 ‘봉순자’는 본인도 모르게 졸업앨범비 도난 사건의 범인을 임대 아파트 출신 ‘정훈’으로 생각한 장면에서 고개를 떨어뜨린다. 현실 사회의 폐부를 묵직하게 찌른 작품. 강지은 김효숙 이철희 전수지 등 출연. 다음 달 4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전석 3만5000원. 14세 관람가. ★★★(★5개 만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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