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의 대상 된 베이비시터들…“이런 대접 섭섭해”

김은지 기자 , 이소연 기자

입력 2019-04-09 18:46 수정 2019-04-0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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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출산한 김모 씨(38)는 이달 초 서울의 자택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다. 김 씨는 수유 때문에 새벽에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피곤한 날이 많지만 틈틈이 CCTV 영상을 돌려본다. 아이를 봐주는 산후조리사가 혹시 아이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서다.

충남 홍성군에서 출장 산후조리사로 일하는 임모 씨(58·여)는 3일 산모의 집 안 곳곳에 CCTV가 설치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집에서 일한 지 한 달가량 되는 임 씨가 처음 왔을 땐 CCTV가 없었다. CCTV는 부엌과 거실 방안에 설치돼 있었다. 임 씨는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 CCTV를 설치해 놓은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고용이 된 입장이라 따지지는 못했다.

14개월 된 남아를 폭행하는 영상이 1일 공개된 정부 아이돌보미 김모 씨(59·여)가 8일 구속됐다. 이른바 ‘금천구 아이돌보미 폭행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 이후 베이비시터를 믿지 못 하겠다는 부모들이 집 안 곳곳에 CCTV를 설치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감시의 대상이 된 베이비시터들은 섭섭함과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인천에 거주하는 이모 씨(31·여)는 금천구 사건 이후 불안한 마음에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이 씨는 28개월 된 남자 아이의 엄마다. 이 씨는 집 안에 CCTV를 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일한 지 1년이 넘은 베이비시터가 기분 나빠할까 봐 신경이 쓰인다. 이 씨는 “이제 와서 CCTV를 달겠다고 말하려니 미안하고 그렇다고 몰래 설치할 수도 없어 고민”이라며 “일단은 아이 몸에 상처나 이상 징후가 없는지 매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20개월 된 아이를 둔 이모 씨(32·여)는 금천구 사건이 알려진 이틀 뒤인 3일 집 안에 CCTV를 설치했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부터 돌봐준 베이비시터와는 각별한 사이지만 말 못하는 아이가 혹시라도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불안해서다. 이 씨는 “(베이비시터) 얼굴을 보고는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아 CCTV를 달았다는 말을 못 했다.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고 했다.

감시와 의심의 대상이 된 베이비시터들은 몸도 마음도 모두 불편하다. 서울 강남구의 한 가정에서 입주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최모 씨(62·여)는 최근 일을 그만둬야 할 지를 고민 중이다. 아이 부모가 집 안 곳곳에 CCTV를 설치하면서 최 씨의 침실에도 카메라를 단 것이다. 최 씨는 “방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도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갈아입는다”며 “‘내가 이 나이에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짐 싸들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출장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이모 씨(53·여)는 5일 퇴근 후 귀가한 아이 어머니한테서 핀잔을 들었다. 낮잠 자는 아이 옆에서 1시간 동안 눈을 부쳤다는 게 이유다. 이 씨는 “1년간 일하면서 이런 적이 없었는데 ‘CCTV를 통해 감시하고 있다’는 걸 나한테 알리려고 그런 것 같다”며 “죄송하다고 사과하기는 했지만 서운해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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