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끝내 숨겼던 고 조양호 회장 “아버지 마음으로 버텼나”

뉴스1

입력 2019-04-09 15:23 수정 2019-04-0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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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참전 후 수송보국 꿈 키우고 대한항공 일궜지만…
지난해 압수수색만 18번, 병세에도 자리 지켜


1979년 제주 제동목장에서 아버지인 고 조중훈 창업회장과 사진 촬영에 나선 고 조양호 회장 © 뉴스1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2014년 12월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머리를 숙였다. 땅콩회항으로 물의를 빚은 큰 딸(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경질을 결정한 조 회장 얼굴은 어두웠다. 사건발생 일주일 만이다.

조 전 부사장이 남긴 생채기가 아물기 전에 지난해에는 막내 딸(조현민 전 진에어 전무)의 물벼락 갑질이 터져 나왔다.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논란까지 온 가족은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세간의 분노는 이해할만했다. 지위를 악용한 갑질은 병폐다. 그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 데다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부터 계속됐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지 않더라도 비판은 당연했다.

조 전 전무 사건 때도 공식사과를 내놓은 조 회장 마음이 편하진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잡아먹을 듯 달려들었다.

지난해 사법·사정기관 압수수색만 18번 이뤄졌다. 가족을 향한 화살을 몸으로 받은 영향인지 수술 직전 조 회장과 식사를 같이한 경제계 관계자는 “기력이 많이 쇠한 듯 보였다”고 술회했다.

비판과 비난은 다른데 가족의 과오여서 운신할 여지가 없었다. “제 탓입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항공산업 도약을 이뤄낸 경영인이 아닌 아버지의 마음이다.

이같은 마음은 세상을 등지기 전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안팎의 압박과 스트레스에 폐질환이 악화된 조 회장은 지난해 말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건너가 수술을 받았다.

세간의 비난을 돌리고자 병을 알리고 휠체어에 몸을 실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대신 수술과 질병을 드러내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불법 가사도우미 고용과 탈세 혐의 등 재판을 놓고 본인이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가족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마음 때문으로 짐작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모펀드 KCGI가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경영권을 위협했고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경영권을 이어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아픈 내색 없이 묵묵히 버티고 있었을지 모른다.

한 측근은 조 회장이 수술 후에도 별 다른 티를 내지 않아 오는 6월 열리는 IATA(국제항공운송협회)때 의장직을 맡을 것으로 봤다고 한다. 그만큼 주변에 내색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지난달 말 대한항공 정기주총 전까지도 안건을 챙겼고 미주 노선 확대를 위한 델타항공과의 사업협업도 고민했다.

그랬던 조 회장이지만 대한항공 주총을 통해 사내이사에서 내려오게 되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수송보국을 꿈꾼 아버지 조중훈 창업회장 뒤를 이어 항공산업에 족적을 남겼지만 모든 성과가 갑질에 가려졌다.

2001년 파리에어쇼 에어브서관을 참관하고 있는 고 조중훈, 조양호 회장 부자 © 뉴스1
술, 담배, 골프를 멀리하고 워커홀릭으로 불리며 항공업 도약의 축을 담당했지만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갔다고 느꼈을 수 있다. 조 회장은 미국유학 중 귀국해 군복무 기간 사병으로 베트남전에 참여하며 힘없는 나라의 설움을 느꼈다고 한다.

국력을 키우려면 산업·경제가 뒤를 받쳐줘야 하고 조 회장은 아버지 뜻을 이어 수송보국을 택했다. 하지만 안팎의 집중포화는 조 회장을 대한항공에서 밀어냈고 견뎌내던 병세는 악화됐다. 가족을 겨냥한 화살을 받아내고자 마지막까지 병을 감췄으나 끝내 이겨내진 못했다.

조 회장 측근은 “마지막까지 아버지로서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홀연히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내색조차 못했다는 게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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