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탁구를 사랑했던 조양호 회장…평창올림픽 기틀의 밑거름

뉴스1

입력 2019-04-08 12:11:00 수정 2019-04-08 13:29:03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새벽(한국시각) 미국 현지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대한항공이 밝혔다. 항년70세이다. (뉴스1 DB) 2019.4.8/뉴스1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7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병원에서 폐질환이 악화돼 별세했다. 향년 70세.

조 회장은 1949년 3월 8일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한 조 회장은 인하대 공과대학 학사, 미국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석사, 인하대 경영학 박사 학위 등을 취득했다.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했으며 조중훈 창업주 뒤를 이어 1992년부터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에 올랐다.

조 회장은 스포츠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기업인으로 기억된다. 형식적 보여주기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물심양면으로 크게 기여했다. 특히 2008년부터 대한탁구협회 회장을 맡아 지금껏 한국탁구 발전을 위해 노력한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2009년부터는 아시아탁구연맹 부회장도 맡아 국제무대 위상 증진에도 기여했다.

부산이 2020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유치할 수 있었던 배후에도 조양호 회장의 지원이 있었다. 조 회장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한국을 찾은 ITTF 토마스 바이케르트(독일) 회장을 만나 2020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의 한국 유치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국제탁구연맹의 협조를 요청한 바 있다.

국가적 이벤트였던 평창 동계올림픽이 기틀을 잡는데도 적잖은 공을 세웠다. 유치를 준비할 때부터 그의 손과 발이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조양호 회장은 2009년 9월 김진선 당시 강원지사와 함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안팎으로 뛰었고, 결국 평창이 2번의 실패를 딛고 개최지로 선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유치 확정 후에도 인연을 떼지 않았다.

조양호 회장은 2014년 7월부터 대회 조직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뒤 2016년 5월 사퇴할 때까지 1년 10개월 동안 대회 준비를 위해 헌신했다.

전임 김진선 위원장이 갑자기 위원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뒤숭숭했던 조직위가 빠르게 안정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조양호 회장의 공이 컸다는 평가다. 조양호 회장은 위원장직에 있던 22개월 동안 경기장 건설 지연 논란, 올림픽 개·폐막식장과 경기장 이전 논란, 대회 분산 개최 논란 등 엉킨 실타래들을 무난하게 풀어냈다.

특히 2016년 2월 정선과 보광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테스트이벤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것은 조양호 위원장의 주요 업적으로 꼽힌다. 경기장들이 워낙 늦게 완공돼 테스트이벤트 개최가 불투명하다는 우려가 나왔으나 뚝심 있게 추진해 성공적으로 마쳤다.

조 회장은 2014년 12월에 발발한 ‘땅콩 회항’ 논란 때문에 좋지 않은 여론에도 묵묵히 조직위원장 역할을 수행했고 특히 개최지를 나눠서 대회를 열 수도 있다는 소문이 나돌 때도 “천재지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올림픽 분산 개최는 없다”며 정면 돌파하는 등 강한 책임감으로 업무를 수행해 평창 동계올림픽을 안정 궤도에 올린 주역이다.

조 회장은 2009년 대한체육회 이사에 이어 2010년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대한항공 남자 배구단, 여자 탁구단,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남자팀 등 인기와 비인기 종목을 가리지 않고 팀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스포츠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서울=뉴스1)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