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섬, 우리가 만든다“ 청년들 도시생활 접고 속속 둥지

박희제 기자

입력 2019-04-04 03:00:00 수정 2019-04-04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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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정착한 청년 사업가 3인

1930년대 지은 방직공장을 카페로 변신시킨 강화군 강화읍내 조양방직이 강화도 핫플레이스로 뜨고 있다. 강화도를 찾거나 정착하려는 젊은층이 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인천 강화도에 청년들이 몰려온다. ‘헬조선’ 탈출 행렬인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의 영향인지 강화도가 젊어지고 있다. 곳곳에서 청년 창업자가 생겨난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와 펜션은 젊은이로 만원이다.

강화읍 향나무길 ‘조양방직’이 그 중심에 있다. 일제강점기 1933년 민족자본이 세운 방직공장을 카페로 단장했다. 1958년 폐업한 뒤 60년가량 제대로 활용되지 않던 건물이 이제는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하루 3000∼5000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주차공간이 부족해 주변 도로가 몸살을 앓을 정도다.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건물골조를 그대로 둔 채 추억 어린 옛 생필품과 예술품을 진열한 빈티지미술관 느낌이어서 도시재생시설의 성공 사례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런 핫플레이스가 속속 들어서면서 2세들이 떠나고 노인들만 지키던 섬에 ‘청년수혈’이 이뤄지고 있다. 도시생활을 접고 강화도에 정착한 청년 3명의 일상을 엿보았다.


▼ 특산품 강화화문석 가업 이어받아 수출 꿈꿔 ▼

공예벤처가 박윤환

부모가 40년간 강화도 특산품 화문석을 제조하다 판매상을 한 박윤환 씨(39)는 가업을 이어받으러 2014년 농업법인 강화도령화문석㈜을 설립했다. 강화도 출신이지만 서울에서 외국계 회사를 다니다 고향으로 내려온 것이다. 명맥이 끊길 처지인 화문석을 지키기 위해 ‘강화도령’을 자처한 것이다.

강화도령화문석은 공예벤처기업이다. 강화도 최초로 화문석 장인 13명을 고용해 명품 화문석을 생산하고 있다. 박 씨는 “창업 당시만 해도 강화도 화문석 제작 농가가 100개에 달했으나 지금은 약 20개에 불과하다”며 “왕골 재배와 화문석 제작이 고되고 힘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초본식물인 왕골을 소재로 자리에 꽃무늬를 수놓는 화문석은 고려 때부터 강화도에서 생산한 것으로 전해진다. 화문석 돗자리 1장을 짜려면 2인 1조로 2주간 60만 번 손을 놀려야 한다. 힘든 수공예 작업을 거치기 때문에 11자(가로 240cm, 세로 330cm) 기준으로 화문석 1장당 75만∼200만 원을 받는다. 고가 예술품에 속하지만 이윤은 그리 크지 않다.

인건비가 오르면서 기계화 생산이 불가피해지자 박 씨는 2년 전부터 각종 지원금과 융자를 받아 반자동 돗자리 제조설비를 개발하고 있다. 각 공정마다 수천만 원씩 투입하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완성도 100% 단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연애 6년 만인 지난해 1월 결혼한 아내도 디자이너회사를 퇴직하고 남편을 돕고 있다. 박 씨 부부는 왕골 재배를 위한 2000m² 농장을 마련했다. 화문석 짜는 기계를 개발하는 연구 공간과 직조장도 운영한다. 전시판매장에서는 화문석 체험 및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박 씨는 “세계에서 유일한 화문석 베틀 기계를 완성하면 예술성이 뛰어난 강화 토산품을 ‘착한’ 가격으로 수출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행자숙소 겸 커뮤니티 공간 공동 창업-운영

청년상인 유명상

유명상 씨(35)의 사업적 정체성을 하나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자영업자, 공연예술인, 문화기획자, 요리사, 숙박업자 등 어느 하나 어색하지 않다.

2년 전 강화읍에서 농기구를 제조, 판매하던 3층짜리 건물을 빌려 여행자숙소 겸 커뮤니티를 표방하는 ‘스트롱파이어’로 꾸몄다. 이름은 강화의 ‘강’을 영어로 ‘강하다’인 ‘스트롱’으로 옮겼고, ‘화’는 불이라는 ‘파이어’로 옮겨 합성한 말이다. 생뚱맞긴 하다. 2, 3층은 6인실 게스트하우스이고 1층은 맥주와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여행자 공간이다. 유 씨와 20·30대 5명이 동업했다. 인천 원도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유 씨는 1999년 50여 명이 숨진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사건 때 여러 친구들이 숨지고 심한 화상을 입었다. 이 사건 이후 스스로 변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동네 친구들과 여행사를 차리고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때는 문화행사 기획도 했다. 그러나 도심에서는 돈 버는 일이 쉽지 않았다. 고민을 하다 7년 전 강화풍물시장 쓰레기만 쌓여 있던 점포를 얻어 화덕피자집을 차렸다. 강화의 맛을 살린 ‘밴뎅이파이’ ‘속노랑고구마파이’ 등을 선보여 TV에 소개되기도 했다. 유 씨는 “피자집을 처음 열었을 때 10년, 20년을 보고 장사한 건 아니었다. 일주일, 한 달만 버텨도 만족했고 동료, 주민, 주변 상인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잘 버텼다”고 말했다.

여전히 막막하지만 강화에서의 미래는 밝다고 여긴다. 그는 스트롱파이어에서 여행객들에게 강화특산 순무차와 소창수건을 내준다. 강화지역 청소년, 노인들과 독립영화를 제작하고 파티와 축제도 연다. 제작한 독립영화 여러 편을 지난해 7월 강화도 작은 영화관에서 상영했다. 사진작가와 공동 작업해 강화 특산품인 소창을 주제로 사진첩도 펴냈다. 인스타그램 등에서 ‘아삭아삭 순무민박’을 검색하면 그의 활동상을 볼 수 있다.


고구마만 年1억원 넘게 판매 ’강소 농부’

청년농부 김주빈

김주빈 씨(35)는 강화도 ‘강소(强小)농부’로 통한다. 트랙터 2대, 미니 굴삭기 1대, 트럭 2대와 대토기, 비닐피복기, 고구마순 제거기, 고구마 수확기 등을 활용해 고구마만 연간 1억 원 넘게 판매한다. 서울의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도 아닌 강화도로 귀농한 지 5년 만에 기반을 확실히 닦아 놓았다.

주 수입원은 고구마와 순무다. 과학영농법으로 직접 재배한 뒤 포털사이트 네이버나 옥션 등을 통해 판매한다. 하루 주문량이 50만∼100만 원이다. 지난해 생산한 강화도 특산 속 노랑고구마는 재고가 거의 남지 않았다.

그의 농지는 후계농자금을 얻어 산 4000m²에 불과하다. 임대한 밭 20곳을 포함하면 지난해 경작면적은 3만3000m²에 이른다. 올해 경작지를 2배로 늘릴 계획이다. 자두나무 체리나무를 500주 심어 2, 3년 뒤부터 수확할 수 있다. 수확기에 체험농장을 운영할 뜻도 있다.

일이 점점 커지고 있어 올해 농업법인을 설립하고 직원 1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영농에 대한 열정과 함께 경영 마인드가 있는 젊은 친구를 물색한다. 아내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 살림집은 서울 은평구에 있다. 대개 강화도에 머물며 일주일에 한 번꼴로 서울 집을 찾는다. 아내의 이해에 힘입어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김 씨는 “이달 중순 돌잔치 하는 아기를 키우는 일이 큰 걱정”이라면서도 “농부로서의 꿈이 차근차근 달성되고 있으니 더욱 열심히 농사를 짓겠다”고 다짐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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