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공론 vs 가야할 길’…소셜믹스 임대주택 실험 ‘갑론을박’

뉴시스

입력 2019-03-24 08:16:00 수정 2019-03-24 08: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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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감을 결여한 탁상공론에 가깝다”

임대주택을 관리하는 공기업 직원 김형오(가명)씨는 국토교통부가 지난 7일 발표한 ‘소셜믹스(social mix) 임대주택 시범단지’ 구상에 고개부터 가로저었다. 시범단지는 영구임대주택, 국민임대, 행복주택을 비롯한 여러 유형의 임대주택을 아파트 단지 한 동에 배치한 새로운 유형의 통합단지다. 김씨는 이 구상에 대해 “현실감각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그는 얼마 전 자신이 겪은 ‘맥주병 소음 사건’을 사례로 제시했다. 이웃집이 둔탁한 물건으로 바닥과 벽을 두드려 잠을 잘 수 없다는 민원이 꼬리를 물자 김 씨는 문제의 입주민을 만나 “이웃들이 힘들어한다”며 그 이유를 물었다. 이 60대 주민은 “옆집에서 벽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유해 가스를 흘려보내고 있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설득이 불가능하다고 본 김 씨가 “경찰에 신고해보지 그러냐”고 떠보자 이 입주민은 “경찰도 한통속”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영구임대주택 단지에서는) 기상천외한 사건들이 꼬리를 문다”고 토로했다. 같은 동 주민들이 견디기 힘들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도로 하나를 경계로 마주한 서울 시내 임대아파트 단지 주민 간 반목과 갈등의 사례도 그는 소개했다. 맞은 편 국민임대단지의 건강관리 시설을 평소 부러워하던 단지 주민들이 회비를 낼 테니 시설 사용을 허락해달라는 바람을 단지 소유주인 이 공기업을 통해 전달하자 맞은 편 단지 주민들이 손사래를 친 것. 주민들은 한술 더 떠 “그쪽 주민들이 단 한 명도 이쪽으로 오는 일이 없게 해 달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이러한 사례를 소개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임대 단지 주민들 조차 스스로를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구임대, 국민임대, 행복주택 등 여러 임대주택 주민들을 섞어 놓으면, 단지가 활력을 얻고 주민 간 교류와 협력이 증가할 것으로 보는 발상부터가 현실감각이 떨어진다고 그는 지적했다.

영구임대, 국민임대, 행복주택 등 유형별 임대주택을 아파트 단지 같은 동에 섞어 놓는 ‘소셜믹스 임대단지’의 실효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임대주택 단지의 팍팍한 현실을 모르는 관료들이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하는 격’이라며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라고 폄하하는 쪽과, ”현실을 모르지 않지만, 우리 공동체가 가야할 길“이라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선다.

이번 논란의 발단은 지난 7일 국토교통부의 올해 업무계획 발표. 국토부는 영구임대주택, 국민임대, 행복주택 등 임대주택을 통합해 짓는 이른바 ‘소셜믹스 임대단지’ 시범단지 2~3곳을 올해 중 선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우선 올해중 면적별 공급비율, 임대료 기준 등을 마련하고 오는 2020년 사업승인이 가능한 시범단지를 선정할 계획이다. 김흥진 주택정책관은 “행복주택과 영구주택 입주요건을 갖춘 사람들을 입주대상자로 선정하되 임대료는 임대주택 유형에 맞게 선정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소셜믹스 임대주택 시범단지를 추진하기로 한 데는 영구임대주택 단지의 열악한 상황이 한몫을 했다. 임대주택은 신혼부부, 한부모 가정 등 주거 약자들이 주거비 부담을 상당 부분 덜 수 있도록 도와 추후 더 나은 주거형태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다리형 주거복지의 핵심이다. 하지만 영구임대주택은 단지 주민들의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높고 소득도 적다 보니, 이동은 정체되고, 시간이 지나며 단지가 활력을 상실하는 등 슬럼화되는 문제가 있었다는 게 국토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영구임대주택 단지에서는 노인 입주민들이 고독사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소셜믹스 임대단지는 이에 따라 아파트 단지 같은 동에 소득 기준과 임대료 수준이 다른 영구임대, 국민임대, 행복주택의 주민을 배치한다. 오스트리아 등 공공주택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커뮤니티 활동 등 교류와 협력의 물꼬를 터 주민이 화합하고 공생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풀이된다. 정부는 지금까지 이 3가지 유형의 임대주택을 구분해 공급했다.

문제는 조화로운 공동체를 복원해 임대주택을 향한 사회적 편견을 덜겠다는 구상이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임대주택 관리를 담당하는 공기업 담당자들은 영구임대주택 단지에서 꼬리를 무는 사건사고를 언급하며 현실의 민낯을 볼 것을 주문한다. 같은 동에 배치된 임대단지 유형을 기술적으로 감출 수는 있어도, 주민간 갈등이 분출되는 상황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 이러한 갈등이 기존의 ‘임대주택과 비임대주택’ 주민간 대립 구도에서 ’임대주택 내부의 다툼으로 비화되며 자칫 임대주택을 향한 사회적 통념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도 제기한다. 한 전문가는 “여러 유형을 하나로 모아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지 모르겠다”며 “같은 동에 여러 유형을 배치하는 데 따른 기술적 어려움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셜믹스 임대주택 실험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이른바 ‘오스트리아 구상’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스트리아는 수도인 빈의 공공주택 보급률이 70%를 넘고, 주택 유형도 다양한 이 분야 선진국이다. 김 장관은 앞서 지난달 9일 공개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오스트리아 빈의 공공주택 보급률이 70%가 넘는다. 우리 목표는 집이 없는 분이 수월하게 집을 살 수 있게 만들고 집 없는 서민, 청년들은 좋은 임대주택에서 살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와 우리나라는 임대주택을 바라보는 국민 정서부터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임대주택 전문가는 “오스트리아와 스웨덴 등은 우리와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며 “시민들이 임대주택을 사회적 약자들이 모여사는 주거형태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임대주택을 부끄럽게 여기는 우리와는 풍토부터가 다르다. 아직은 국민의식 수준에서 양국은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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