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문자 톡톡]양치기 소년인가, 안전 지킴이인가

신무경 기자 , 정혜리 인턴기자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졸업

입력 2019-03-22 03:00 수정 2019-03-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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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스마트폰에 벨소리와는 다른 알림이 울리는 날이 잦아졌습니다. 각종 재난이 발생하면 신속히 대피하라고 국민안전처에서 보내는 ‘긴급재난문자방송서비스(CBS)’입니다. 위급한 정보를 모든 국민의 휴대전화에 전달해줘 유용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너무 자주 울리거나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땐 성가시고 허탈하다는 불만도 많습니다.》
 
“정부가 재난 통제해 안심”

“처음 지진을 느꼈을 때 무방비 상태여서 무서웠어요. 뒤늦게 재난문자를 받고선 실망이 컸죠. 그런데 다음번 문자는 지진 발생 불과 몇 초 전에 왔어요. 처음 겪었던 두려움은 줄어들고, 정부에서 재난을 통제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됐습니다.”―김모 씨(26·대학생·포항 거주)

“알림 소리가 크긴 해도 개인마다 문자로 재난 정보를 알려주니 고마울 때가 많아요. 미세먼지가 많은 요즘, 외출 전에 마스크를 깜빡하고 두고 올 때가 많은데 문자를 받으면 꼭 챙겨 가게 됩니다.”―한진경 씨(20·대학생)

“컴퓨터보다 사람을 대하는 일을 많이 하거나, 실외 활동이 잦은 사람들은 사고나 재해 소식을 빨리 알 수 없어요. 그럴 때 재난문자 알림 소리가 들리면 재난이 발생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 유용합니다.”―정모 씨(25·카페 아르바이트)

“2017년 포항 지진 당시의 긴급재난문자는 긍정적 사례입니다. 2016년 경주 지진의 학습 효과로 이듬해 포항 지진이 일어나자 재난문자가 27초 만에 전국으로 발송돼 경각심을 높일 수 있었어요. 재난문자가 향후 국민 안전의식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정부 주도로 보완 대책을 세우고, 관련 부처와 민간 통신회사 등과의 협업을 통해 더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이동경 우송대 소방안전학부 교수

新양치기 소년?

“재난문자는 솔직히 못 믿겠어요. 지난해 비바람 몰아칠 거라는 문자가 연달아 오기에 별 걱정을 다했는데 실제와 달라서 허무했거든요. 그런데 하루는 아무 준비 없이 나갔는데 비바람이 몰아치고 난리더라고요. 물에 빠진 생쥐 꼴로 편의점에 들어가 우산을 샀더니 그때서야 재난문자가 와서 황당했어요.”―권민정 씨(25·대학생)

“강의 시간에 재난문자로 휴대전화 여러 대가 동시에 울려 수업 분위기를 깨는 일이 다반사예요. 미세먼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심각한데 해결책이나 대처방안은 없고 마스크를 쓰라는 메시지뿐이니, 사실상 별 의미가 없죠.”―이채연 씨(19·대학생)

“재난문자보다는 스마트폰 앱과 인터넷 검색을 이용해 미세먼지 등 재난 상황을 팔로업해요. 젊은 사람들 대부분은 인터넷 정보를 통해 재난 상황을 이미 알고 있어 재난 알림은 뒷북을 친다는 생각이에요. 재난문자 기능이 ‘예방’보다는 사고·재해 사실을 인지시켜 주는 ‘알림’ 정도에 불과한 거죠.”―송모 씨(30대·주부)

“어르신들이 대리점에 와서 재난문자 알림이 시끄럽다며 꺼달라고 하세요. 최근 관련 문의가 부쩍 늘었죠. 건강에 안 좋은 미세먼지나 위험한 재난을 알려주는 거라고 말씀드려도 막무가내예요. ‘어차피 살 날 얼마 안 남았으니 건강이고 뭐고 그냥 꺼줘!’ 하는 분도 계셨어요. 아이폰은 ‘설정-알림’에 들어가서, 안드로이드폰은 ‘문자-설정-더보기’에서 수신 여부를 설정할 수 있어요.”―이모 씨(30·휴대전화 대리점 직원)

웃고 울리는 재난문자

“하루는 만원 버스에서 재난문자가 울리자 다들 마치 짠 것처럼 짜증을 내며 알림을 끄기 시작했어요. 그런 와중에 제 앞사람이 졸다가 놀라서 벌떡 일어나더라고요. 그러고는 저랑 눈이 마주쳤는데, 민망해하더니 바로 다음 정류장에서 헐레벌떡 내렸어요. 물론 창피해서가 아니라 원래 내려야 할 곳이었겠죠? 저는 덕분에 웃음 참느라 혼났네요.”―김민정 씨(25·대학생)

“재작년 수능 전날, 재수학원에서 막판 스퍼트를 올리던 중에 포항 지진 재난문자를 받았어요. 다들 수능 취소되는 거 아니냐며 실없는 소리를 했는데, 그게 운명을 바꿀 문자일 줄이야…. 정말 저녁에 수능 연기 소식이 들렸고, 사실상 포기했던 사탐(사회탐구영역)에 집중했어요. ‘7일의 기적’(수능이 일주일 연기된 것)인지 최저등급을 맞춰 원하는 대학에도 합격했죠.”―김모 씨(24·대학생)

“‘사립유치원 개학 연기 재난 문자’ 논란 당시 주변이 시끌시끌했어요. 저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사로서 문자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고요. 여러 비판 의견에 충분히 공감해요. 학부모도 국민인데, 이들이 자녀를 교육기관에 보내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 또한 재난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자칫 일이 장기화되거나 학부모가 맞벌이 부부라면 더 심각하고요.”―김모 씨(24·공립유치원 교사)

“대학생 때 강의 중에 지진 알림 재난문자가 울렸는데 교수님께서 ‘집에 보내줄 줄 알았지? 지진 나도 수업은 해야 돼’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아쉬워하는 학생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실제로 위험한 상황이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었어요. 사람들이 이렇게 재해, 재난을 안일하게 생각할 때가 많은데 이런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 과제 같아요.”―김정은 씨(24·회사원)

재난, 제대로 대비하려면

“아직은 재난문자가 가진 한계가 있어요. 기술적으로는 2세대(G), 4G 단말기는 발신 글자 수 한계(한글 60자)가 있고, 3G 단말기는 ‘안전디딤돌’ 앱이 있어야만 수신이 가능한 점입니다. 또 제도적으로는 ‘언제 보내야 할지’ 규정이 없어 오남용 사례가 많고, 최소발송단위가 시군구여서 읍면동 단위 발송이 어렵죠. 발신 글자 수를 늘려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할지 ‘행동요령’을 정리하는 한편 오남용 사례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또 재난마다 정해진 표준문안의 문구를 상황에 맞게 개선하면 국민들이 재난 문자를 보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아요.”―김윤희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

“올해부터 지상파 초고화질(UHD)방송을 활용한 재난 알림을 시범적으로 진행합니다. UHD 지상파 방송망에 데이터를 추가로 실어 보내 멀티미디어 재난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죠. 특수학교 등 재난약자시설이나 공공시설에 마련된 스피커, 옥외 전광판, 디지털 사이니지 등 공공미디어를 활용해 재난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 관계자

“재난문자가 너무 잦아 제대로 보지 않고 꺼버릴 때가 많았는데, 재난교육을 받은 후부터 신중히 살펴보게 됐어요. 바닥이 흔들리는 시설물에서 지진 대피 교육을 받았는데 가상 상황이었지만 당황하고, 넘어지고 그랬어요. 정부가 재난문자만 보낼 것이 아니라 이 같은 재난교육을 병행해 국민들에게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준다면 알람 자체를 시끄럽고 번거로운 것으로만 여기지는 않을 것 같아요.”―류모 씨(24·취업준비생)

“긴급재난문자 알림 서비스는 빠르게 전달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정보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진을 예로 들면 우리나라 지진관측소는 200개 정도인데, (지진 빈도가 잦은) 일본은 1000개 넘게 보유하고 있죠. 일본의 긴급재난문자 알림은 보다 정확한 상황을 국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죠.”―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부교수·국가위기관리학회 부회장

신무경 기자 yes@donga.com·정혜리 인턴기자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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