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현의 Man Is]‘신사가 되고 싶은 욕망’ 아버지를 닮은 구두

남동현 롯데백화점 남성패션담당 치프바이어

입력 2019-03-22 03:00 수정 2019-03-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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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든 아이든 남성의 구두엔 신사가 되고 싶은 욕망이 투영돼 있다. 꼬르떼코리아(유) 제공
내 인생에 첫 번째 구두는 내 것이 아닌 아버지의 구두였다. 그것은 허락이나 양도가 아니었다. 일종의 일탈이었다. 부쩍 자란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늘 신발장에 놓여 있던 아버지의 몇 켤레 구두 중 눈길이 가는 검정 구두가 있었다. 아버지가 출근을 하신 어느 날, 어머니의 눈을 피해 그 검정 구두를 신고 학교에 갔다. 그날은 학교에서 절로 우쭐해졌다. 나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첫 번째 구두에 얽힌 스토리다.

가죽 구두는 새것이면 새것인 대로, 적당히 길이 들면 든 대로 그 나름의 멋이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구두가 ‘남자’의 하루를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꽃아 보관해 둔 클래식 구두들. ㈜금강 제공
남성 구두의 시초는 인디언의 모카신

어른이건 아니면 적당히 자란 아이들까지도 ‘남성성’의 멋을 상상할 때 일종의 로망이 되는 아이템인 남성 구두의 시초는 모카신이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지금도 신고 있는 그 신발에서 유례를 찾을 수 있다. 모카신은 밑창과 갑피의 구분이 없다. 한 장의 가죽으로 발을 감싼 후, 그 발등 부분에 구멍을 뚫어 신발끈으로 고정한다. 동양에서는 이러한 신발의 소재로 주로 가죽보다는 섬유재질이 많이 활용됐다. 유럽에는 나무 소재가 쓰이기도 했다.

이러한 기원을 거쳐 현재의 형태로 진화한 현대 남성 구두 제작 과정을 상상해 보면, 단순한 수공업 작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예술 활동으로 볼 수 있을 만큼 그 과정이 절도 있으면서도 아름답다.

우선 가죽을 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가죽은 소가죽부터 양가죽, 악어가죽, 타조가죽, 에나멜, 스웨이드 등으로 나뉜다. 소가죽은 가장 일반적인 소재로 질기고 변형이 적어 널리 사용된다. 소가죽 중에서도 어미소 뱃속의 송아지 가죽인 송치 소재는 그털이 아주 곱고 균일하게 털이 누워 있어 최고급으로 친다. 양가죽은 부드럽고 통풍이 잘되며 땀 흡수력 또한 훌륭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소가죽에 비해서 내구성은 떨어진다. 악어가죽은 원피의 희소성과 개별 가죽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는 무늬, 가공의 어려움 등의 특수성으로 가장 최고급의 가죽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개별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가죽을 골랐다면, 완성될 구두에 대한 상상력이 보다 구체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정성껏 고른 가죽을 구두로 만들려면 무두질을 거쳐야 한다. 무두질 과정 중에 생가죽을 부패할 수 있게 할 만한 요소들인 가죽의 단백질 성분과 기름, 잔털 등이 제거되어 나간다. 부드러운 가죽질감을 위해 두드리는 과정을 겪기도 하면서 가죽은 비로소 구두로 변모할 준비가 끝나게 된다.

이후 가죽 위창을 만든 뒤 이를 깔창 부분과 결합한다. 이때 넓은 끈인 ‘웰트(Welt·가장자리에 붙이는 가는 천)’가 활용된다. 코르크 등의 소재를 채운 후 다시 웰트와 밑창을 꿰메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러한 공법을 ‘핸드 손 웰트(Hand Sawn Welt·한 땀 한 땀 꿰매는 방식)’라고 한다. 이 공정 중 일부를 기계로 대체하는 공법을 ‘굿이어 웰트(Good Year Welt·기계화, 대량생산)’라고 일컬었다. 이들 공법으로 제작된 구두는 대체로 가격이 비싼 편이다.


화려한 디테일의 ‘윙 팁’ 구두. ㈜금강 제공
럭셔리 구두의 상징 ‘파티나’

그중에서도 럭셔리 구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파티나(Patina·자연스러움을 배가 시키는 염색 기법)’ 염색가공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아티스트의 예술 작업처럼 마스터 컬러리스트의 손에 의해 가죽의 색이 탈색된다. 이후 왁싱 작업을 거쳐서 캔버스로서의 구두가 준비된다. 이제 손과 붓이 필요한 작업만 남았다. 새로운 색채와 음영, 패턴의 효과의 마법이 컬러리스트의 손과 붓을 통해 입혀지면 구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남성 구두의 부드러운 밑창은 본래 딱딱한 아스팔트보다는 매끈한 카펫을 걸어다니기 적합하게 디자인된 것이 일반적이다. 다양한 활동에 적합한 구두는 보강작업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신은 뒤엔 우드 소재로 된 목각 신발 모형을 넣어 두어 땀으로 배출된 수분과 냄새를 자연스럽게 흡수해야 한다. 과도한 주름이 가지 않도록 원형에 가깝게 관리하며 보관하는 것이 좋다. 잘 관리된 구두는 지속적인 파티나 작업을 통하여 완전히 새로운 구두로 재탄생될 수도 있으므로, 디테일한 관리는 구두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면서 동시에 지속적인 세대간의 유산으로 전승될 수 있다.

앞코가 매끈한 ‘플레인 토’, 화려한 날개 모양의 펀칭 디테일의 ‘윙 팁’, 스트랩과 버클로 발등의 화려함까지 책임지는 ‘몽크 스트랩’같은 스타일들은 시대가 변해도 아름답다. 이들 구두가 고전과 현대가 맞닿는 지점에서 계속해 남성 스타일을 책임지는 이유다. 장인의 손에 의해 정석적인 과정으로 탄생된 견고하고 아름다운 구두는 그것이 프랑스 아르티장의 구두이건 성수동 수제화 장인의 구두이건 그 가치는 다르지 않다. 오랜 세월과 경험의 스타일이 입혀진 남성 구두가 남자의 스타일을 완성해 줄 단순한 패션 아이템이 아닌 ‘아트 오브제’의 의미를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랑스 정부에 의하여 구두 마스터로 선정된 ’꼬르떼’의 아트 디렉터 피에르꼬르떼와 그의 작품들. 꼬르떼코리아(유) 제공
어쩌면 모든 남자들의 내면에 크든 작든 자리잡고 있는 ‘신사가 되고 싶은 욕망’이 구두에 투영돼 있을지도 모른다. 시선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하지만 가장 높이 보이는 것보다 먼저 보이는 것. 스타일의 욕망, 이것이 바로 남성 구두이다.

남동현 롯데백화점 남성패션담당 치프바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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