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서는 곳… 시간이 웅크린 곳

파주=김동욱 기자 , 철원=이설 기자

입력 2019-03-16 03:00 수정 2019-03-1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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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라산 & 철원|

DMZ트레인은 통일호 객차 3량을 연결해 아기자기하게 개조했다. 안에는 생수 커피 맥주와 간단한 스낵을 판매한다.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이후 관광명소로 떠오른 곳이 바로 비무장지대(DMZ).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자주 찾는 코스가 됐다. 생생한 역사 공부의 현장이어서 자녀를 동반한 부모 등 국내 여행객의 방문도 늘어나는 추세다. 코레일관광개발이 운영하는 ‘평화열차 DMZ트레인’은 가장 손쉽게 DMZ를 방문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당일치기 세 가지 코스 중 두 가지를 골라 타봤다. 》

○ 도라산 평화관광

서울역에서 통일호를 개조한 ‘DMZ트레인’에 몸을 실었다. 3개 객차로 이뤄진 열차는 120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주중에는 50명 정도가 타고 주말에는 객차가 거의 꽉 찬다. 승차하면 승무원이 도라산역 출입 신청서를 나눠준다. 신분증 지참은 필수. 내국인과 외국인 관광객 비율은 6 대 4 정도다. 몇 년 전만 해도 8 대 2 비율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 높아진 외국인의 관심을 실감할 수 있다. 열차에서는 맥주, 생수, 커피와 간단한 스낵도 판다.

옛 조선노동당 당사 건물인 노동당사는 철원이 북한 땅이었을 때 세워졌다.
임진각역에 잠시 내려 신분 확인을 거친다. 서울역부터 1시간 40분이 걸려 도라산역에 내리면 연계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도라산역부터는 민간인통제구역이다. 가이드는 “버스 이동 중 사진촬영을 할 수 없다”고 당부했다. 곧 남북출입사무소와 개성으로 가는 요금소가 보였다. 개성공단 폐쇄 전까지 6차로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텅 빈 도로만 마주할 뿐이다.

첫 번째 방문지는 도라산평화공원. 2002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도라산역을 방문했을 때 구상되기 시작해 2008년 문을 열었다. 11만5700m²(약 3만5000평) 규모에 생태연못과 전시관 등이 있다. “연못에는 오리 조형물들이 있는데 예전에는 실제 오리들이 연못에서 놀았어요. 하지만 솔개 같은 맹금류가 오리를 잡아가는 바람에 조형물로 대체하고 있어요.” 투어 가이드의 설명이다.

왼쪽부터 DMZ트레인에 걸려 있는 엽서들. 도라산평화공원에는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다.
도라전망대는 남방한계선 안에 위치한 DMZ 내 시설로 해발 156m 도라산 정상에 있다. 도라산이라는 이름은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한 뒤 생겼다. 경순왕은 고려에 투항한 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 왕씨와 결혼했다. 나라를 잃은 슬픔에 시름하는 경순왕을 본 낙랑공주는 산 중턱에 암자를 짓고 그 산에 도읍을 의미하는 도(都)자와 신라의 라(羅)를 합쳐 도라산(都羅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도라전망대 3층에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개성공단은 물론 개성시도 볼 수 있다.
도라전망대 주차장에 내리면 이제는 폐쇄된 전망대가 관광객을 맞이한다. 이곳은 관측소로 사용되다 1987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된 뒤 지난해 10월 새 전망대에 자리를 물려줬다.

3층에서 바라보니 개성공단은 물론이고 개성 시내와 송악산이 보였다. 투어 가이드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늘은 운이 좋습니다. 365일 중 개성 시내와 송악산을 볼 수 있는 날은 50여 일에 불과합니다. 눈이 오면 통제가 되고, 미세먼지가 많으면 개성공단도 보이지 않는 날이 많습니다.” 자동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멀리서만 봐야 한다는 사실이 분단의 현실을 깨닫게 만들었다.

마지막 방문지인 제3땅굴은 1978년 북측이 남침용으로 판 땅굴로 외국인들에게 인기 높은 관광명소다. 약 70m 깊이의 땅굴까지 모노레일을 타거나 걸어서 내려갈 수 있다. 휴대전화나 사진기는 가져갈 수 없다. 땅굴은 높이 2m, 너비 2m로 약 200m 길이까지 걸어갈 수 있다. 생각보다 높이가 낮은 부분이 많아 안전모는 꼭 써야 한다. 모든 일정을 마친 뒤 도라산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역 안의 표지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타는 곳 평양방면.’ 언제쯤 평양방면의 열차를 탈 수 있을까.


○ 철원 평화투어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백마고지 전적지 입구의 백마상. 백마상을 지나면 태극기와 자작나무가 도열한 길이 나온다. 남쪽한계선에가장가까이위치한기차역인월정리역.
안보(安保). 익숙한 듯 낯선 주제다. 평화열차 ‘DMZ트레인’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바람개비, 연꽃무늬로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있었다. 열차 가장자리에는 DMZ 관련 미니 사진전이 띠를 두르고 있다. 전쟁의 아픔이 짙게 밴 사진을 보다 보니 서서히 역사 감수성이 달아오른다.

잿빛이 풀빛으로 색을 갈아입고 ‘모텔 한탄강’ ‘압록강면옥’ 같은 간판을 거쳐 백마고지역에 닿았다. 금강산도 식후경. 점심 장소로 향했다. 강원 철원 산지 농산물로 차린 소박한 시골밥상이 나왔다. 배를 두드리며 백마고지 전적지로 이동한다. 6·25전쟁 당시 열흘간 24번, 하루에 무려 4번이나 남북이 번갈아 점령했다는 전설의 격전지다. 포탄 27만 발을 맞은 산이 흰 말이 누운 형상으로 변했다 하여 ‘백마’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재 남쪽 DMZ 안에 있다.

옛 조선노동당 당사 건물인 노동당사는 철원이 북한 땅이었을 때 세워졌다
전적지는 고지전에서 희생된 영혼을 기리는 곳이다. 위령비가 자리한 ‘회고의 장’, 기념관인 ‘기념의 장’, 전망대 격인 ‘다짐의 장’으로 나뉜다. 먼저 자작나무와 태극기가 높이 도열한 언덕에 오르면 위령비가 나온다. “우리 큰오빠도 여서 죽었는데. 대부분 열일곱 내외 학도병이었다지….” 전사자 844명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거친 손으로 어루만지며 한 어르신이 흐느꼈다. 기념관에는 당시 백마부대장이었던 김종오 장군의 유품 등 관련 자료가 전시돼 있다. 옛 조선노동당사는 철원이 북한 땅이었던 1946년 완공됐다. 콘크리트로만 지어진 이 3층 러시아식 건물만 포화 속에서 살아남았다. 고초로 사람이 줄줄이 죽어 나가던 이곳에서는 이제 문화 공연이 열리곤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도 여기서 촬영됐다.

군 사정으로 멸공OP(Observation Post) 대신 금강산 전기철도교량으로 갔다. 일제강점기에는 자원 수탈과 금강산 관광 목적으로, 광복 이후에는 군 물자 수송용으로 쓰였다. 민간인통제구역에 위치해 군인의 인솔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철원평화전망대는 꼭대기까지 모노레일로 3분, 도보로 9분 정도 걸린다. 발아래로 백마고지, 낙타봉, 국군과 북한국의 OP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철원은 지형적으로 이념이 치열하게 맞부딪친 곳이에요. 낮과 밤 정체성을 달리하며 험한 시대를 견뎠죠.” 해설사가 말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마주한 월정리역. 뼈대만 앙상한 기관차는 70년 넘게 철로를 지키고 있다. 어스름이 깔릴 무렵 돌아온 백마고지역. 역 앞 부동산에는 ‘땅 투자’ 현수막이 펄럭인다. 명물 꽈배기를 사들고 열차에 올랐다. 6·25전쟁의 역사를 엿보고 돌아가는 길, 주황빛 석양은 눈부신데 마음은 개운치 않다. 철로 공사로 인해 경원선 열차는 다음 달 1일 이후 당분간 운행이 중단된다.



● 여행 정보


상품: △코레일관광개발 ‘평화열차DMZ-도라산평화관광’. 오전 10시 8분 용산역, 오전 10시 15분 서울역을 출발해 도라산 일대를 돌고 오후 4시 27분 도라산역을 출발해 서울역(오후 5시 47분)과 용산역(오후 5시 54분)에 도착. 가격은 성인 기준 3만6000원(모노레일 이용 시 3만9000원). 중식은 한식 뷔페로 7000원. 코스는 평화공원∼도라전망대∼제3땅굴∼통일플랫폼. △코레일관광개발 ‘평화열차DMZ-철원평화투어’. 오전 9시 반 서울역에서 출발해 철원 일대를 둘러본 뒤 오후 7시 20분 서울역 도착. 가격은 성인 기준 중식 포함 4만5000원. 코스는 백마고지 전적비∼노동당사∼멸공OP. 군 사정에 따라 멸공OP 대신 철원 평화전망대, 월정리역 등으로 대체될 수 있음.

예약 방법: △코레일관광개발 홈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에서 예약할 수 있다. 최소 일주일 전에는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반에 노동당사에서 철원 농특산물을 판매하는 ‘철원 DMZ 마켓’이 열린다. △도라산 평화관광 이용 시 식당 바로 앞에 장단콩이 들어간 카페라테와 삼백차를 판다. 장단콩 향기가 은은하다.

감성+: △책: 생존자(이창래 지음·나중길 옮김). 6·25전쟁로 엮인 세 명의 남녀를 통해 드러나는 전쟁의 비극 △영화: ‘고지전’ 백마고지 전투를 다뤘다. ‘웰컴 투 동막골’ 시골마을을배경으로 한 전쟁의 아픔을 코믹하게 전한다.(추천: 이상 동아일보 문화부) △음악: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 중 3악장 ‘아다지오 몰토 에 칸타빌레’. 인류의 화해와 화합을 부르짖은 합창 교향곡의 느린 악장은 아름다운 미래를 향한 동경과 갈망을 환기한다. (추천: 황장원 음악 칼럼니스트)
 
파주=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철원=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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