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의 마음의 지도]의사와 환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9-03-15 03:00 수정 2019-03-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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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분석가 수련을 불가피하게 미국에서 받았습니다. 당시 국내에는 국제정신분석학회가 인증하는 프로그램이 없었습니다. 수련 3대 과제 중에는 수련생 자신이 직접 받아야 하는 분석이 있습니다. 교육 분석가 다섯 분을 찾아가 만났습니다. 한 분은 서부영화에 나오는 악역 같은 인상으로 너무 엄격해 포기했습니다. 다른 분은 어떤 이야기도 다 들어줄 것 같은 모습으로 웃었으나 빈자리가 없어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한 분은 너무 멀리 사셨습니다. 다른 또 한 분은 안 떠오릅니다. 제가 선택한 분은 부드러운 첫인상으로 외국 생활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듯 보였습니다. 우리가 하는 선택이란 이렇듯 객관적(?) 자료보다는 첫인상에 좌지우지됩니다.

그렇다면 분석을 받는 사람(피분석자)의 나이와 분석가 나이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환자들은 의사의 나이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사가 너무 젊으면 경험이 부족할 것 같아서, 너무 나이가 많아도 새로운 지식과 담쌓고 지낼 것 같아서 불안해합니다. 분석가도 비슷합니다. 젊으면 젊은 대로, 나이가 들었으면 나이가 든 대로 피분석자는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지난날 겪은 일들이 촉발하는 이런저런 일들을 분석 현장으로 옮겨 다시 경험하기 마련입니다. 이를 ‘전이(轉移)’라고 하는데, 전이는 분석 받는 사람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주인공의 상대역은 분석가로 바뀌지만 이미 방영된 연속극을 다시 돌려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전이, 아버지에 대한 전이가 대표적인데 흥미롭게도 분석가의 성별과는 무관합니다. 남성 분석가에게도 어머니 전이가 나타나고 여성 분석가에게도 아버지 전이가 나타납니다. 분석가의 나이와도 크게 상관이 없어 젊은 분석가에게도 나이 든 부모와 관련된 전이가 생깁니다.

인간은 누구나 매일 조금씩 죽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분석가와 피분석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분석가의 노화 현상은 당연하나 병에 걸려서 아프면 피분석자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분석가들의 평균 연령이나 분석가 역할을 접는 나이도 자연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제학회에 가면 저는 아직 어린 편입니다. 그러니 분석을 시작하기 전에는 분석 도중 분석가가 앓아누울 확률도 고려해야 합니다. 치매처럼 숨어서 진행되는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피분석자의 평균 연령도 높아지고 있어 문제들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대부분 분석가보다는 젊은 편입니다.

분석가가 아프면 환자는 불안합니다.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을 것 같았던 환상이 확 올라오면서 본능적으로 위기로 느낍니다. 지나친 불안은 분석의 방해꾼입니다. 현명한 분석가라면 숨기지 말고 다루어서 극복해야 합니다. 몇몇 사례에서는 아픈 분석가의 분석이 오히려 진전을 보이는 수도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긴박감과 어려운 상황에 빠진 분석가를 돕겠다는 마음의 결과일 겁니다. 위기에 빠진 분석가를 안타깝게 여긴 피분석자가 금전적인 도움을 포함해 구체적인 도움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분석가가 받아들인다면 두 사람 사이의 경계를 벗어난 행위입니다.

입원한 피분석자를 분석가가 찾아가 위로한다면 바람직할까요. 프로이트 이래 정신분석에서는 ‘분석적 태도’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오랫동안 분석 시간과 장소를 벗어난 별도의 행위는 옳지 않게 여겼습니다. 이제는 전통적인 원칙도 서서히 변해 병문안이 오히려 궁극적으로는 치료적 관계를 튼튼하게 할 수 있다고 보는 쪽이 꽤 많습니다. 임신했던 피분석자가 아기를 낳고 오면 분석가가 축하의 말과 함께 작은 선물을 하는 경우도 눈에 띕니다. 하지만 분석가가 지나친 정도의 선물을 주면 경계를 벗어나는 행위이며 의미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간 분석가들은 “익명성과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프로이트의 ‘말씀’에 매달려 너무 경직된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정작 프로이트 자신은 배가 고프다는 피분석자에게 먹을 것을 제공한 적도 있는데 말입니다.

피분석자가 병으로 고통 받으면 분석가의 마음이 아픕니다. 이때 자칫 잘못 판단하면, 치료 과정에 분석가가 개입하려고 나섭니다. 미국에서 수련 중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습니다. 등뼈가 너무 아파 ‘척추 전문의’에게 간 적이 있습니다. 현지 의사인 제 분석가에게 판단을 물었습니다.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한참 뒤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 척추는 한 개밖에 없잖아요.” 분석은 분석가의 의견을 피분석자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판단하도록 도울 뿐입니다.

피분석자와 분석가 사이의 만남은 나이 차이, 사회 문화적 경험 차이의 만남이자 충돌입니다. 그리고 분석은 서로 대면해서 탐색하고 이해하고 해결하는 작업입니다. “선생님은 저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아서 젊은 저를 과연 이해하실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떠오르는 생각을 자세히 말씀해 보시겠어요?”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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