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일자리 땜질자금’ 쏟아져도… 일을 잃었다

세종=최혜령 기자

입력 2019-03-14 03:00 수정 2019-03-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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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해고 않는 기업에 지원하는 정부 일자리안정자금
문턱 낮춰 해고 사업장에도 무차별 지원해 세금 ‘줄줄’
땜질 처방에 2월 3040 취업자 줄고 노인만 반짝 증가


새벽 인력시장, 봄은 언제쯤… 12일 오전 5시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으로 하루 일자리를 찾으러 온 수백 명의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건설경기 둔화로 일용직 시장까지 말라버린 데다 불법체류 중국인까지 몰려들면서 이곳을 찾은 사람 대다수가 일감을 찾지 못하고 돌아섰다. 한 노동자는 “여기 온 사람 중 10분의 1밖에 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영세기업인 A사는 최저임금을 받는 직원 10명에 대해 정부로부터 일자리 안정자금을 지원받다가 지난해 상반기에 이 중 2명을 해고하자 지원금을 한 푼도 못 받게 됐다. 일자리 안정자금이 고용 안정용인 만큼 해고가 발생한 기업에는 지원이 중단된다. 하지만 A사는 ‘고용 조정이 불가피했다’는 간단한 서류만으로 다시 지원금을 받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부담이 커진 사업주에게 직원을 자르지 말라는 취지로 1인당 15만 원 한도로 임금인상분을 지원하는 일자리 안정자금이 해고 사업장에도 대거 지원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직원 해고로 안정자금 지원이 중단된 사례는 근로자 수 기준으로 2만1155명이었다. 하지만 12월에는 이 지원 중단 근로자가 6188명으로 줄었다. 지원이 중단됐다가 재개된 근로자 수가 3개월 동안 1만5000명에 이른다는 뜻이다.

이는 사업주가 직원을 해고하기 직전 한 달간의 생산량이나 매출이 석 달 평균보다 10% 이상 줄었다는 증빙만 내면 지원을 재개토록 한 예외 조항 때문이다. 작년 하반기에는 그나마 이런 증빙을 안 내도 직원을 해고한 사업장에 대해 무조건 지원금을 줬다. 그럼에도 작년 말 기준 안정자금(3조 원) 집행률이 80%대에 그쳤다.

고용노동부는 올 1월부터는 해고 기업 지원 재개를 위한 증빙 조항을 되살렸다. 다만 종전보다 문턱을 더 낮춰 생산량 등이 5%만 감소해도 안정자금을 주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자리 안정자금이 ‘고용 유지’가 아닌 ‘최저임금 보전용’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도 시행 초기부터 고용 유지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 우려가 많았는데 결국 세금 누수라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했다. 고용부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추진단은 “직원을 해고한 사업장을 더 어렵게 하지는 말자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이처럼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밀어붙인 뒤 고용 부진과 양극화 심화 등 후과(後果)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땜질 처방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청년 고용률은 ‘초단기 알바’나 다름없는 공공기관 체험형 인턴 자리가 공급될 때만 반짝 상승하다 다시 하락했다. 실제로 지난해 11, 12월 공공행정 임시직 취업자는 체험형 인턴 때문에 평소보다 2, 3배 늘었다. 올해는 8219억 원을 들여 노인용 일자리를 지난해보다 10만 개 많은 61만 개를 만들기로 했다. 지난달 취업자 수가 26만3000명 늘어 13개월 만에 20만 명대를 회복한 것도 60대 이상 취업자가 39만7000명 늘어난 때문이다. 한창 일할 30, 40대 취업자는 24만3000명 줄었다.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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