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 아리랑 - 재즈 옷 입고… 뮤지컬 유쾌한 ‘틀 깨기’

김기윤 기자

입력 2019-03-12 03:00 수정 2019-03-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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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무대 하이브리드 장르 실험
힙합 비트에 맞춰 랩 선보이고 사물놀이패와 정선아리랑 불러
성악-가요로 만들던 뮤지컬 곡, 다양한 장르와 결합 시도 많아져


무대 위 두 남자가 서로를 노려본다. 아버지가 위독해 119 구급 신고를 했던 한 래퍼는 “잠깐만!”이라며 구급대원을 멈춰 세운다. “주말에 입원하면 병원비가 비싸니 3분만 지나고 월요일 오전 12시가 되면 응급실에 아버지를 들여보내 달라”는 부탁. 아버지가 고비를 넘기자 구급대원은 “넌 미쳤다”며 래퍼에게 화를 낸다. 감정이 격해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넌 날 이해할 수 없다”며 힙합 비트에 맞춰 랩을 쏟아낸다.

이 공연은 홍익대 앞에 있는 힙합 공연장에서 펼쳐진 게 아니다. 엄연히 짜인 대본과 서사에 맞춰 곡을 입힌 뮤지컬 ‘무선 페이징’이다. 최근 이처럼 뮤지컬 무대는 ‘혼합(하이브리드) 장르’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주로 성악이나 가요 멜로디를 토대로 주요 넘버를 제작하던 틀을 깨고 힙합이나 민요, 재즈, 시조, 시 낭송 등과 결합하며 새로운 옷을 입고 있다.

6월 두산아트센터에서 정식 공연을 앞둔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은 조선시대 시조를 기반으로 힙합 비트를 입혔다.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 등이 과거 어떻게 불렸을지 상상해 ‘랩 배틀’ 무대로 꾸민다. 뮤지컬과 랩을 결합한 라이브 엔터테인먼트의 ‘무선 페이징’은 해외 쇼케이스와 정기 공연까지 앞두고 있다.

22일부터 막을 올리는 뮤지컬 ‘아리 아라리’는 독특하게도 정선아리랑과 뮤지컬을 결합한 퍼포먼스 공연이다. 평생 뗏목꾼으로 살던 기목은 경복궁으로 정선의 목재를 싣고 떠난다. 그의 딸 아리는 한양으로 떠나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 소식을 15년 만에 듣는다. 성인이 된 아리가 아버지를 만난 순간 “아리랑 고개, 고개로 넘어간다”라는 정선아리랑 곡조가 등장한다. 그 외에도 창작 아리랑, 나무꾼들의 목도 소리, 지게 춤 노래 등 다양한 전통 가락이 펼쳐진다. 특수 제작된 북과 꽹과리, 장구, 북을 든 사물놀이패가 무대를 메운다.

이 밖에도 살인 추리극 내용을 담고 있는 뮤지컬 ‘아서 새빌의 범죄’는 재즈를 뮤지컬에 녹인 사례. 쇼케이스를 실제 재즈 바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요소요소마다 삽입된 재즈 뮤지션들의 연주가 극의 전개와 오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색다른 매력을 낸다. 대학로에서 흥행 중인 뮤지컬 ‘아랑가’ 역시 뮤지컬과 창극의 경계를 허문 장르 혼합 뮤지컬이다.

뮤지컬의 장르 혼합 실험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뮤지컬 본고장인 브로드웨이에선 철저히 힙합과 랩으로 구현한 뮤지컬 ‘인 더 하이츠’가 대중의 큰 호응을 받고 있으며, 세계 전통음악과 종교적 소재를 혼합한 뮤지컬 등 끊임없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대중문화 트렌드를 따라 가요, 성악을 기반으로 했던 뮤지컬이 점차 다양한 장르로 확장할 것”이라며 “음악 장르뿐만 아니라 관객 참여형, 실험형 뮤지컬 등 형식도 다양하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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