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염철현 고려사이버대 교수 / 사이버대에서 학생들과 소통하기

동아일보

입력 2019-02-07 08:00:00 수정 2019-02-07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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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철현 고려사이버대 평생·직업교육학과 교수

사이버대학의 교수는 사이버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과 소통한다. 소통 방식은 교수의 철학과 과목의 성격, 그리고 학생의 특성 등에 따라 가지각색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학생과의 소통에 관한 한 하버드대 헨리 로조브스키(Henry Rosovsky) 교수의 신념을 따르려고 한다.

“교육과정은 앙상한 뼈대에 불과하다. 교육과정에 피를 돌게 하고 살을 만드는 것은 교수와 학생 간에 예측할 수 없는 상호작용이다.”

우리 신체에 비유하면 교수와 학생 사이의 상호작용은 신체에 피를 공급하는 심장의 펌프작동에 비유할 수 있겠다. 심장의 펌프작동이 멈추면 생명이 정지하는 것처럼 교수와 학생의 상호작용이 없다면 죽은 교육이라고 할 것이다.


필자는 사이버대학 부임 초기 학생에게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소통을 했다. 과목 수강생에게 전화를 걸어갔다. 대화의 내용은 학생의 환경에 따라 달라졌다. ‘공부는 재미있는가? 강의는 들을 만한가? 학습설계는 어떻게 짜고 있는가? 인터넷을 다루는 데 어려움은 없는가? 시험공부는 어떻게 준비하는가? 학습이 업무에 도움이 되는가? 졸업 후의 계획은 무엇인가?’ 등.

그러나 전화를 통한 상호작용은 노력에 비해 비효율적이었다. 낯선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받지 않은 학생이 있는가 하면, 무엇보다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일초가 아까운 학생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학생은 시간 많은 교수의 한가한(?) 이야기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전화를 통한 상호작용은 학생수가 소규모일 때는 가능할 수 있지만, 적정 숫자를 넘어섰을 때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전화 소통의 현실적인 한계를 알고 다른 소통과 상호작용의 방식을 고민하였다. 사이버대는 학생과 소통할 수 있는 이메일, 게시판, 학과 카페, SNS를 통한 문자 송부 등 다양한 방식의 학습툴이 있다. 필자는 문자 송부 방식을 채택했다. 차가운 디지털에 따뜻한 감성의 아날로그를 융합하는 디지로그 방식이다. 정확하게는 2000바이트 문자로 작성된 편지다. 이 방식은 교수 개인 핸드폰 번호로 발송할 수 있어 쌍방이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교수의 문자 메시지를 원치 않은 학생의 입장에서는 심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교수가 교육적인 선의를 가지고 학업에 동기부여하고, 학습으로 더 행복한 삶을 추구하도록 격려하는 내용을 보낸다면 스팸 처리는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필자는 개강 1주차부터 매주 월요일 오전에 정기적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보내지 않은 날도 있다. 예를 들어 공휴일과 겹친 월요일이나 시험 기간에는 메시지 송부를 피했다.

초기에 문자를 보냈을 때 학생들은 반신반의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교수라는 사람이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공개하면서 이상한(?) 문자를 보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필자가 보낸 문자말고도 하루에 수십 통의 문자로 머리가 무거운 데 잘 알지도 못하는 교수가 장문의 편지로 괴롭히나 했을 수도 있다. 문자 편지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시사철 변함없이 배달되었을 때에 비로소 학생들도 신뢰를 보이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아마도 유별난(?) 교수의 진정성을 지켜보고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처음에 필자에게 피드백을 보낸 대부분의 학생들은 필자와 친밀감이 형성된 학과 소속의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필자가 어떤 사람인 줄 잘 알고 있었기에 비교적 쉽게 피드백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를 잘 모르는 학생들은 학기 말에 예의를 갖춰 늦게 답장을 드려 송구하다는 말과 함께 매주 받은 편지가 학업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에 대해 쓴 장문의 피드백을 주었다.

학생들이 열린 마음으로 쓴 글을 읽게 되면 울컥할 때가 많다. 늦깎이 공부를 시작하게 된 사연과 또 어려운 환경에서 배움의 끈을 붙잡고 학업을 하게 된 사연 등 각양각색이다. 아직 필자도 내 자신을 잘 모르는데 마치 모든 연령대 학생들의 인생상담사 역할을 하기에 역부족을 느낄 때도 많다. 이럴 때 “가르치는 선생은 학생의 영혼에 불을 지르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맞다. 필자가 학생들의 영혼에 그들의 삶의 의미에 불을 지르고 마중물을 부어 준 것이다.

2000바이트 문자 편지의 효과는 놀랍다. 로조브스키 교수의 말대로 ‘예측할 수 없는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우선 학습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피드백을 주는 학생수가 늘어난다. 소통과 공감을 통한 상호작용은 쌍방에게 필요한 에너지원이 된다. 교육의 마당에서 격려와 관심을 필요로 하는 대상은 학생뿐이 아니다.

교수 역시 격려가 필요하다. 필자는 학생과의 상호작용으로 많은 격려와 사랑을 받는다. 슬픔을 나누면 줄어들고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는 법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아주 소박하다. 컴퓨터와 혼자 씨름하면서 공부하는 그들에 대한 관심이다. 누군가 자신을 챙겨주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힘이 날 것이다. 아주 평범한 인간적인 욕구다.

둘째는 관심과 격려를 받은 학생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할 가능성은 줄어들고 학업을 지속할 가능성은 커진다. 예컨대, 시험을 잘 보지 못해 다음 학기 휴학하거나 아예 자퇴할 생각을 하고 있는 학생은 소통과 공감의 진정성을 알게 되면 마음을 바꿔먹는다. 학업보다 직장을 우선시하여 지금 당장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꽤 있다. 그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경청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면 직장과 학업을 성공적으로 병행하게 된다.

셋째는 대학생활의 경험과 학습효과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학생은 교수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스스로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 자신이 다니는 대학을 널리 알리고 다른 사람도 입학시키려고 애를 쓴다. 자신이 받은 감동과 경험을 친구, 지인, 친인척을 입학시켜 공유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대학 홍보대사가 된다. 실제 우리 대학에는 6, 70쌍의 부부대학생이 있다. 아내가 먼저 입학하고 남편을 입학시키든지 반대의 경우도 많다. 아예 부모와 자녀가 함께 공부하는 경우도 있다.

필자는 매주 월요일에 보낼 2000바이트 편지를 쓰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 받는 학생들은 쉽게 쓰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앞 주에 보낸 내용이 겹치지 않아야 하고 매주 성인학생들이 처한 환경을 반영한 글을 쓰려고 한다. 학기 초에는 낯선 사이버대의 특수성에 대해 말하면서 대학생활 적응과 관련된 글을 쓴다. 시험을 본 다음에는 좌절감을 많이 느낀다는 점을 고려하여 그들을 어떻게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다시 회복하도록 돕는 내용으로 쓴다. 학생들의 피드백도 다양하다. 어떤 학생은 감사 인사와 함께 성실하게 학습하겠다는 다짐을 보내는가 하면, 또 다른 학생은 졸업 후의 장래 계획을 담은 장문의 글을 보내온다. 필자 역시 그런 문자에 다시 피드백을 보내 상호작용의 끈이 지속되도록 한다.

필자는 문자에 대한 학생들의 피드백을 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의 교육철학과 신념을 묵묵히 실천할 뿐이다. 학생들이 교수가 보낸 문자 편지를 보면서 혼자 외롭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학업을 끝까지 해내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런 필자에게 소통과 공감이 얼마다 위력을 나타내는가를 확인시켜주는 사례가 많다. 한정된 지면에 일일이 소개할 수 없지만, 졸업식 날 지방에서 올라오신 60이 넘은 어느 만학도가 필자의 손을 꼭 잡고서 말했다.

“교수님의 문자가 아니었다면 오늘 졸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필자가 보낸 문자 편지에 피드백을 하지 않을 뿐이지 그들 가슴의 한 구석에는 감동과 울림을 가지고 공부한다. 또 다른 사연 역시 감동이 크다. 여수에 거주하는 청각장애학생이 있었다. 필자는 학생의 형편을 모른 채 전화를 했는데 그 학생의 자녀가 대신 전화를 받고 그 내용을 엄마에게 전했다고 한다. 그 엄마도 졸업식장에서 필자의 손을 잡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언젠가는 외부 출장이 겹쳐 월요일 오전에 문자 편지를 보내지 못했다. 일부 학생들은 필자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난 줄 걱정했다고 한다. 어디 그뿐이랴! 어떤 학생은 아예 전화나 문자를 보내 재촉을 한다. 시간이 지났는데 문자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다고... 이쯤 되면 도대체 어떤 문자를 보내는지에 대해 궁금할 것이다.

아래는 5주차시에 과목 수강생들에게 보낸 글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다윗 왕은 보석 세공인에게 반지를 주문하면서 “반지에 내가 기쁨에 겨울 때든 절망에 빠질 때든 잊지 말아야 할 말을 새겨 넣어라.”고 했습니다. 난해한 주문임에 틀림없습니다. 세공인은 며칠 밤낮을 고민하다 솔로몬 왕자를 찾아갔다. 지혜와 총명을 갖췄다는 솔로몬은 어떤 말을 해주었을까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개인적으로 힘들고 슬픈 일이 있을 때는 “고까짓, 곧 지나가겠지”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는 버릇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항상 좋은 일만 생기거나 아니면 나쁜 일만 생길 수는 없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어쩌다 나쁜 일도 생길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래서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도 생겨났겠죠.

여러분 중에는 강의를 듣거나 책을 본 다음 기억이 나지 않아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렴움과 좌절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또 쉽게 생각하고 사이버 대학에 입학했는데 학습과정이 이렇게 엄격한 줄 몰랐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새로운 학습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솔로몬의 지혜처럼 세상의 일이란 시간에 노력을 더하면 어려움은 금세 지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공부 후에 머리가 하얘진다고 하지만 지식은 잃어버려도 적어도 그 그림자는 남아서 여러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동력이 되고 그릇된 신념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될 것입니다. 봄날 햇볕처럼 따스한 한 주가 되기 바랍니다.

염철현 고려사이버대 평생·직업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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