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인가 詩인가… 화선지 위에 짓이기듯 펼쳐낸 그리움

김기윤 기자

입력 2019-01-22 03:00:00 수정 2019-01-22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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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1인극 ‘새닙곳나거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픔을 달랜다. 한 무대에 펼쳐진 커다란 한지 위에서 집을 짓고 기괴한 몸짓으로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는 이가 있다. 온몸에 먹을 묻혀 종이에 글씨를 쓰고, 때론 나뭇가지를 휘두르는 등 온몸으로 연인을 부르짖는다. 그는 바로 기생 홍랑이다.

1인극 ‘새닙곳나거든’은 관기 홍랑과 조선 8대 문장가인 최경창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최경창의 죽음 이후에야 하나가 될 수 있었던 두 사람을 그렸다. 실제 역사 기록에 따르면, 최경창은 과거 급제 후 함경도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한 마을에서 홍랑을 만난다.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서로를 사랑했지만 양반과 기생이라는 신분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게다가 최경창은 이미 결혼해 아내가 있던 몸. 홍랑은 최경창이 병으로 죽고 나서야 그의 무덤 곁을 3년간 지키다 결국 자해와 죽음으로써 그의 뒤를 따른다.

극 중 홍랑과 최경창을 홀로 연기한 지현준 배우는 70분간 대사 한마디 없이 김시율 음악감독의 고적한 피리 연주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무대 옆 산수화 병풍에 새겨진 18수의 시 내용에 맞춰 둘의 마음속 목소리를 표현한다.

극을 이해하려면 어느 때보다 상상력이 필요하다. 배우의 서글픈 동작은 관객 상상에 따라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때론 이해하기 어렵다. 사각사각 화선지를 밟거나 무대 위에서 발을 구르는 소리가 유난히 관객 귀에 박힌다.

극의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던 홍랑은 먹물로 한지를 흠뻑 적셔 찢은 뒤 한지 아래로 몸을 구겨 넣는다. “텅 빈 최경창의 서재에서 알몸이 되어 그의 글을 어루만진다”는 구절에 따라 한지 아래를 굴러다니며 죽음을 표현한다. 죽어서야 비로소 하나가 된 둘의 기괴한 몸짓은 시의 구절처럼 ‘차라리 춤’이 된다. 27일까지. 서울 성동구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 전석 3만 원. ★★★☆(★ 5개 만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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