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미국 법인 내는 게 더 유리” 한국 창업의 현실은…
권기범 기자
입력 2019-01-21 18:37 수정 2019-01-21 20:15
8∼1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에 마련된 레티널 부스에서 업체 관계자들이 레티널의 증강현실(AR) 광학 솔루션 제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우리(레티널)는 증강현실(AR) 광학 렌즈를 개발하는 회사다. 최근까지도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다. 지난해 12월 20억 원의 투자를 추가로 유치했다. 2016년 설립 이래 총 68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적어도 올해에는 자금 걱정 없이 기술 개발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 8~11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에도 다녀왔다. 스타트업 전시관인 유레카 파크에서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최신 AR 광학 렌즈인 ‘핀 미러(PinMR)’를 선보였다. 시야각을 80도 이상으로 확보한 데모도 공개했다. 올해로 세 번째 참가하는 만큼 현장의 관심은 더욱 뜨거웠다. 행사 중 기자간담회도 처음 열었다.
잠재력이 있는 스타트업이라고 해도 매출이 없으면 투자를 받기 어렵다. 특히 국내에서 한 투자자로부터 10억 원 이상을 유치하는 일은 흔치 않다. 우리 같은 스타트업이 초청을 받아 CES에서 기자간담회를 여는 일도 드물다.
나(김재혁·레티널 대표·29)와 우리 동료들은 그 원동력이 ‘기술력’이라고 생각한다. 간이침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열정으로 이뤄낸 결과다. 좋은 기술 앞에 자존심 같은 건 없는 걸까. 지난해 CES와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이후 해외 유수 기업 관계자들이 “레티널 제품을 보고 싶다”며 한국으로 찾아왔다. 기술적인 세부 내용을 물어보거나 수천 장의 사진을 찍어갔다. 그중 일부는 나중에 우리 제품을 베낀 제품을 가져와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기업도 제대로 동작하는 제품을 만들지 못했다.
우리 기술은 내부적인 역량과 경험이 없이 단시간에 베끼기 어렵다. 안일하게 생각했다면 해외 유명 기업에 기술을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기술력이 핵심 경쟁력인 테크 스타트업이라면 적절한 시점에 특허를 출원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국내에 10여 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이 중 5건이 등록됐다. 해외에서도 출원 중이다. 제대로 된 특허를 출원하려면 전문가와 손을 잡는 게 좋다.
8∼1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에 마련된 레티널 부스에서 업체 관계자들이 레티널의 증강현실(AR) 광학 솔루션 제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쓴소리를 하려 한다. 사실 한국의 스타트업 창업 인프라는 대단하다. 창업을 마음먹으면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 ‘귀찮아서 지원 신청을 못할 정도’로 많다. 초기 운영비용의 절반 가까이를 지원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문제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다음 단계로 도약해야 하는 경우다. 이때부터는 규제가 스타트업의 발목을 잡는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려면 실리콘밸리식 투자 방식인 미국의 ‘SAFE(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미래지분계약)’가 필요하다. 투자자가 먼저 투자를 하고 난 뒤 미래에 지분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조건부 지분인수 계약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벤처투자 촉진 법률안이 지난해 11월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직 진전이 없다.
정리=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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