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뚝에 쓱… 피임약, 바르기만 하면 끝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19-01-21 03:00 수정 2019-01-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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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남성용 ‘피임 젤’ 임상시험… 몸에 스며들어 정자 생산 막아
여성용 ‘부착형 피임제’도 개발


한 남자가 팔뚝에 젤을 바른다. 피부를 위한 화장품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새롭게 개발 중인 ‘바르는 남성용 피임약’이다.

피임 기술이 변하고 있다. 보다 간편하게, 보다 오래 지속되는 피임법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바르거나 붙이는 다양한 형태의 새 피임약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국립아동보건인간발달연구소(NICHD)는 부부 420쌍을 대상으로 바르는 남성용 피임 젤 ‘NES/T’의 임상시험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피임 젤이지만 특정 부위에 젤을 바를 필요가 없다. 어깨나 등처럼 몸 아무 곳에나 바르면 성분(프로게스틴 혼합물)이 체내에 스며들며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생산을 막는다. 테스토스테론은 고환에서 정자를 생산하게 하는데, 프로게스틴 혼합물이 이 과정을 중단시켜 정자가 만들어지지 못하게 한다. 약효는 3일 정도 지속된다.

여성을 위한 피부 부착형 피임제도 개발되고 있다. 마크 프라우스니츠 미국 조지아공대 화학및분자생물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14일 피부에 5초만 붙였다 떼면 한 달 내내 약효가 지속되는 여성용 피임 패치를 개발해 ‘네이처 의공학’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100원짜리 동전만 한 패치에 몸속에서 천천히 분해되는 고분자 미세바늘을 달았다. 패치를 피부에 붙였다 떼면 바늘이 부러지면서 피부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바늘 안에 들어 있던 호르몬 약물이 천천히 나와 한 달간 임신을 막는다. 연구팀은 약효 지속 기간을 6개월로 늘리고 생산 비용을 100달러(약 11만 원) 미만으로 낮춰 피임 패치를 상용화할 계획이다.

호르몬 제제 피임약은 자칫 신체 활동을 교란하거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이에 따라 호르몬을 쓰지 않고도 오래가는 피임제가 개발되고 있다. 주로 정자가 난자까지 도달하지 못하도록 경로를 차단하는 원리를 쓴다.

미국 비영리의료연구재단인 파시머스재단이 개발 중인 ‘바살젤’은 정자가 나갈 ‘문’을 막는 방식이다. 주사로 정관에 젤을 주입해 굳혀 정관수술 효과를 낸다. 언제든 원할 때 젤을 녹여 뺄 수 있어 신체 부담이 적은 게 장점이다. 미국 벤처기업 에핀파마는 정자에 달라붙어, 이동성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피임을 하는 EP055라는 약물을 개발해 지난해 4월 학술지 ‘플로스원’에 발표했다. 원숭이를 대상으로 시험했더니 18일 후에야 생식 능력을 회복했다. 스웨덴 벤처기업 서클바이오메디컬은 하루 종일 약효가 지속되는 키토산 성분의 질 좌약을 개발하고 있다. 자궁경부의 점막에 키토산이 달라붙어 정자가 통과하지 못하게 하는 원리다.

새로운 피임 기술의 등장은 피임제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 인식을 개선해주며 피임시장을 성장시킬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코히런트마켓인사이트는 세계 피임시장이 연평균 7.8% 성장해 2024년 약 40조 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피임약을 꺼리는 한국 등 일부 국가의 피임약 사용률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2015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구피임약 복용률은 2%로, 20∼40% 선인 유럽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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